연중 제14주일

2011. 7. 18. 오전 11:24:13

글자
오늘은 연중 제14주일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스스로 안다는 사람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이들에게는 당신을 드러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어린이처럼 천진하고 순수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합시다.
 
 
주님께서는 의로우시고 승리하시는 분이시지만 겸손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의 세상을 선포하시고 온 민족들을 다스리러 오신다. 그분의 통치는 영원하다(제1독서). 우리가 육의 본성을 따라 살면 죽지만, 주님의 성령에 힘입어 육의 행실을 죽이면 구원을 얻는다.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시기 때문이다(제2독서). 주님께서는 어린이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당신을 드러내시고 일하신다. 우리 삶의 멍에가 불편하고 무거운 것은 마음이 복잡하고 세상 근심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주님께 내맡기면 우리의 등짐은 가볍고 멍에는 편해진다(복음).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시기 몇 해 전, ‘동성 중고교 개교 100주년 전’에 직접 그리신 자화상을 ‘바보야’라는 제목으로 출품하셨습니다. 동성 중고교는 추기경님의 모교입니다. 추기경님의 자화상은 어린이가 그린 듯한 그림이지만, ‘바보야’라는 글과 함께 추기경님의 모습만큼이나 천진난만해 보입니다. 추기경님은 적어도 한 시대 한 사회를 이끌었던 가장 아름다운 정신적 지도자이셨으면서도, 당신 한평생을 ‘바보’라고 결론 지으셨습니다.
‘바보’는 ‘밥보’에서 나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의견에 따르면, ‘밥’에 “그것을 특성으로 지닌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보’가 붙어 ‘밥보’였던 것이 동음 ‘ㅂ’이 탈락하여 바보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곧 밥이나 축내면서 어리석고 미련스럽게 사는 사람을 가리킬 때 바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추기경님이 자신의 얼굴을 그려 놓으시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더 잘살지 못했음을 스스로 꾸짖으시며 겸허한 마음으로 자신을 ‘바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영악하고 약삭빠른 사람이 잘나가는 시대가 되다 보니, ‘바보’라는 말이 오히려 그립습니다. 추기경님은 당신을 ‘밥보’처럼 겸손하게 표현하셨지만, 듣는 우리에게 바보는 시대에 영합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셨던 한 어른의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순수하고 천진한 철부지 같은 사람에게 드러나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추기경님의 겸손하고 천진하신 마음을 통하여 당신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 하느님께서는 세상 곳곳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못나고 바보스러운 사람들’을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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