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못보았습니다. / 송현 신부님
한 젊은이가 유명한 수도승 찾아가서 올바른 생활을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수도승은 큰 잔에 기름을 가득 붓더니 젊은이에게 건네며 말했습니다.
“젊은이! 이것을 들고 한 시간 안에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오게. 단 기름을 흘리거나 시간에 맞춰서 오지 못하면 더 이상의 가르침은 없네.” 젊은이는 기름을 흘리지 않으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서 왔습니다. 수도승이 물었습니다. “자네는 마을을 돌면서 무엇을 보았는가?”
젊은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수도승이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올바른 생활을 하는 비결도 바로 이런거라네. 자네에게 어두운 구석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려고 애써 노력할 필요는 없네. 하느님을 향해 자네 영혼이 깨어 있기만 하면 더 이상 어두운 삶으로 빠지지 않을걸세.”
결국 하느님 앞에 깨어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젊은이가 기름을 흘리지 않으려고 기름이 담긴 그릇만 바라보며 걸었듯이, 구원을 잃지 않으려고 기름이 담긴 그릇만을 바라보며 걸었듯이, 구원을 일하지 않으려고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일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헛된 세상에 한눈을 팔지도, 마음을 빼앗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진정 주님 앞에 깨어 있습니까? 하루를 시작하면서 아침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까? 잠자리에 들 전에 하루 만큼의 감사로 저녁기도를 바칩니까?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조금씩이나마 매일 접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죽음과 영성에 대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있습니까? 만일 이러한 기본적인 물음들에서조차 ‘아니오’로 답변을 한다면 그의 영혼은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학자 캄폴로(Campolo) 박사의 말대로,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 섰을 때 자신이 이루지 못한 일을 바라보며 후회하기보다는 단지 바르게 살지 못한 사실을 후회합니다. 곧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절대자의 심판을 본능적으로 예감하며 자기 삶을 되돌아본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느 누군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좋은 옷을 입고 싶지 않겠습니까. 누군들 넓은 집에 멋진 차를 갖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세상일에만 애태울 뿐 자기 영혼은 점점 병들어갑니다. 그 영혼은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고 땅속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결국에는 욕망의 좀벌레가 그의 영혼을 남김 없이 파먹고 말 것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왕 시작한 신앙생활, 후회 없이 멋들어지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은 생각이 아니고 실천입니다. 바로 시작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