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운명(運命)은 내 업보(業報)

2024. 11. 18. 오후 5: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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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운명(運命)은 내 업보(業報)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프랭크린은 천둥번개를 보고 어둠을 환하게 밝힐 전기를 생각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직장에서 정리 해고를 당한 후, 창고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며 지내는 동안 사람들이 기겁을 하는 쥐를 보고서 미키마우스란 캐릭터를 만들어 일약 세계적인 부호가 될 수 있었습니다.

로댕은 사람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바위를 다듬어 불후의 명작인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에게 능력을 공평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운동신경이 발달된 사람이 있는가하면,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도 있고, 또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잘 들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나 한 가지씩은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요. 다만 그 능력을 찾느냐 못 찾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해보겠다는 의지와 자신의 능력을 일찍 찾아내어 행동으로 옮긴 사람들일 것입니다. 성공해야겠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성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의 적은 경쟁자도 가난한 환경도 아닌 자기 자신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 17, 19 이하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는데 자기들은 마귀를 쫓아내려 해도 왜 쫓아 낼 수 없는지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가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를 즐겨 이야기 하는 것은 운명의 주인은 바로 자신임을 알았던 그들의 인내심과 열정, 그리고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보도록 합시다. 내가 주님께 끊임없이 기도를 바치면서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믿음)을 가지고 바친 기도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 기도에 분심 없이 혼을 담아 바쳤다면, 그리고 그 기도가 나의 부와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고 주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였다면 주님께서 분명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이웃을 위한 사랑이 담긴 기도를 더 잘 들어 허락하신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일이 발생하면 그 원인을 나 아닌 남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었습니다. 세 사람이 그를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제일 가까운 친구는 장례식장까지만 바래다주었습니다. 자기 배우자는 묘지 앞까지만 바래다주고 돌아갔습니다. 그를 주님대전에 까지 동행한 친구는 선행이라는 친구였다고 합니다. 선행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삶을 통해 행한 모든 일들이 하늘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일러주신 답입니다.

우리들 각자에겐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한다면 천둥번개를 보고 전기를 발명한 프랭크린보다, 쥐를 보고 미키마우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낸 월트 디즈니보다, 버려진 바위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어 불후의 명작에 등재한 로댕보다 더 값진 보물을 횡재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레지오 교본에 단원은 한 주간에 두 시간을 실제로 활동에 바쳐야 한다. -교본 289()-” 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멀리서 활동꺼리를 찾으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내가 생활하고 있는 주변에도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뿌려놓은 씨는 주님께서 거두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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