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관념(觀念)이 아니라 행동(行動)입니다
『스크루테이프 편지(Screwtape Letters』로 유명한 영국 작가 루이스(C,S. Lewis; 1898-1963). 그는 40여권의 책을 저술하면서 왕성한 집필 활동을 펼쳤습니다. 특별히 그의 작품은 대부분 그리스도교 변증론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이혼』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여기는 지옥이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 지옥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셨다. 시간마다 천국으로 떠나는 직행 버스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천국행 버스를 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버스 시간에 맞추어 정거장에 나온다. 요즘 공짜라서 누구나 탈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뜻 올라타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버스를 바라보며 생각만 할 뿐이다. 그들은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 번 꼴로 천국 정거장에 꼭 들른다. 매번 그들은 구경만 하면서 서성거리다가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이글을 통해서 내가 일상 하고 있는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신자답게 살겠다고 작심을 하고서도 대부분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으니 말입니다.
어제 꾸리아 월례회의 때 주임신부님께서 훈화에 들어오셔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어느 자매님이 신부님께 여자 화장실에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하소연을 하였다고 합니다. 자기 집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성당에 관리인이 공석이어서 냄새 나는 곳이 있으면 맨 먼저 그것을 보고 느낀 당사자가 치우고 청소를 하면 되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성당에 사람이 없는 시간에도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고 겨울인데도 2층 레지오 회합실에 에어컨이 켜져 있었다고 하시며 레지오 단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성당에 관심을 보여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오늘 새벽미사가 끝나고 문단속을 하기 위해 3층 대 성전에 올라갔는데, 신부님께서 유아방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을 하시는 것입니다. 코로나 이후 유아방은 거의 사용하는 신자가 없어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의 염려대로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켜져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신앙은 관념 (觀念)이 아니라 행동 (行動)입니다. 주님께서는 마태오 복음 21장에서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마태 21, 28-32)
내가 불편을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도 불편을 느낍니다. 내 눈에 더러운 것 또한 우리 형제들에게도 더러운 것입니다. 먼저 보고 느낀 사람이 치우고 청소하면 다음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성당 일은 공동체와 함께 할 때 주님께서 더 많이 축복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이렇게 사랑 타령을 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마르 12, 31)라고요.
박성철 지음 행복 비타민에 실린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제하의 글입니다.
“옛날 한 마을에 너무도 다른 성격을 가진 네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각각 ‘모두가’, ‘누군가’, ‘누구나’, ‘아무도’였습니다. 별다른 다툼 없이 서로 잘 지내던 사이였는데 갑자기 마을에 급한 일이 생겨 ‘모두가’ 그 일을 하도록 요청 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그 일을 하리라고 ‘모두다’ 확신했습니다. ‘누구나’ 그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해야 할 일이었기에 ‘누군가’가 이 일을 두고 성을 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모두’ 생각하지만, ‘모두가’ 하지 않으리라고는 ‘아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누군가’를 꾸짖었고 ‘누구나’ 앞장서서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은 것으로 끝났습니다.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해야 될 일이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음을 두고 이 네 사람이 아직도 다투고 있답니다."
사람들이 버려야 할 생각, ‘내가 아닌 누가 하겠지.‘ ’나 하나쯤이야.’ 세상 모든 것의 해답은 언제나 ‘나부터’, ‘내가 먼저’ 그것만이 병든 사회를 치료할 유일한 희망의 처방전입니다.
“믿음이 그의 실천과 함께 작용하였고,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야고 2,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