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悔改)와 통회(痛悔)

2021. 11. 14. 오전 10:51:58

글자

회개(悔改) -> 통회(痛悔)

 

교회력으로 오늘이 연중시기 마지막 주일이며, 다음 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 지나면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준비를 하는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대림시기에는 판공성사를 보게 되는데, 회개하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진실로 슬퍼하며 뉘우치고, 마음과 행동(실천)을 하느님께로 향한다면 하느님께 사랑 받는 자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기회에 우리들이 고해성사 전에 거처야야 할 회개(통회)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욕심에 빠져 살게 되면 삶의 독()을 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개 밥그릇에 담겨진 더러운 물과 같다면 누가 마시겠습니까? 더러운 그릇에 누가 음식을 담아서 먹겠습니까? 값싼 물건이 깨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회개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어 깨끗한 물과 음식을 담고, 깨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생각으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버리는 삶을 살 때가 진정으로 회개하는 때입니다. 결국 내 욕심에 의해서 형성된 더러운 것 들을 씻어내고 욕심의 껍데기를 부수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세 가지 여행/정규한 지음 중에서 발췌)

 

통회(痛悔)

<한국 교회사 연구소 발행 한국 가톨릭 대사전11권에서 발췌>

죄의 참회를 가리키는 신학 용어.

일반적인 의미에서 통회는 지은 죄에 대한 마음의 고통이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그 죄를 미워하는 덕()의 행위이다. (중략) 실제로 성서학이나 신학에서 회개(悔改)와 통회(痛悔)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통회는 고백성사의 구성 요소로서 참회하는 사람의 세 가지 행위(통회, 고백, 보속)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위이며, 상등통회(上等痛悔)와 하등통회(下等痛悔)로 구분될 수 있다.

일반적 의미참회 또는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음에 대한 진정한 후회는 일반적으로 과거의 범죄 행위를 기억하고 현재의 죄 상태를 자각하는 인식 요소와 죄의 현존을 슬퍼하고 죄를 끊겠다는 결심으로 죄를 미워하는 의지적 요소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죄의 참회를 뜻하는 통회란, 단순히 죄를 인식하고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라 지은 죄를 슬퍼하며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지은 죄를 인식하고 뉘우치는 행위는, 만약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였다면 범하지 않았을 과거의 죄를 이제는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연결된다.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는 이유는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이며, 이 마음의 고통은 반드시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 하려는 의미를 동반한다. <이하 생략>

 

<가톨릭 교리 용어집/최향락 신부/도서출판 작은 예수회>

회개(悔改)->통회(痛悔)

 

1. 이는 참회, 회개, 회심 동과 혼용하여 사용된다. 자기가 지은 죄를 마음 아프게 뉘우치며 행실을 고쳐 다시는 죄를 짓지 않기로 작정함을 말한다.

교회에서는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렸음을 뉘우치며 자기의 마음을 돌려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의미 회두(回頭)로 사용한다.

또한 통회는 고백성사를 보기 전에 깊고 진실하게 하도록 권고한다. 왜냐하면 이 뉘우침이 없이는 고백성사의 근본 의미를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2. 통회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하등통회(下等痛悔) 이다. 이는 뉘우침이 범죄로 인해 남에게 준 상처에 대해 전혀 관계없이 오직 자신의 그 죄로 말미암아 벌을 받을까 무서워하는 뉘우침이다. 다음에 상등통회(上等痛悔)가 있다. 이는 자신이 벌 받을 것보다 상대방을 위주로, 상대방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것에 대한 아픔에서 나오는 뉘우침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하느님 앞에서 지옥 불이나 연옥 불을 무서워하는 참회는 하등통회요, 하느님의 선성(善性)에 누를 끼친 것에 대해서 참회하는 것이 상등통회다.

 

3. 고백성사로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하등통회만 있어도 되나, 고백성사를 받을 수 없을 경우 상등통회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차후에 고백성사를 받도록 결심하고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언제 사함을 받을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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