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同伴者
페북 친구로부터 받은 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습관처럼 되어버린 무관심(無關心)이 얼마나 큰 좌절감(挫折感)을 느끼게 하고, 종국(終局)에는 되돌릴 수 없는 회한(悔恨)을 남기기도 합니다.
《유명한 여류 소설가 신달자씨가 어느 라디오 대담프로그램에 나와 대담을 나누던 중에 진행자가 남편에 대한 질문을 하자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9년 동안 시어머님의 병간호를 극진하게 해 드렸고, 20년을 넘게 남편의 병수발을 불평 없이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고맙다는 말,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제 곁을 떠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창밖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바라보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나! 여보 비 좀 봐요. 당신이 좋아하는 비가 오고 있네요.".라며 뒤를 돌아보았는데 남편이 없다는 것을 깨닫자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말없이 묵묵(黙黙)했던 남편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졌습니다.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채 우두커니 고독을 바라보며 남편이란 존재는 '아내에게 무엇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가 아닐까요?』 라는 고백으로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어느 가정에 무뚝뚝하고 무척 고집이 센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예쁘고 착하고 애교가 많았기 때문에 아내의 상냥스러운 말과 행동이 남편의 권위적인 고집불통과 무뚝뚝한 불친절을 가려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퇴근하는 길에 가게에 들러 두부 좀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이 "남자가 궁상맞게 그런 봉지를 들고 다니냐?"고 하면서 벌컥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아내가 직접 가게에 가서 두부를 사가지고 오다 음주운전 차량에 치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사고소식을 듣자마자 남편이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아내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유품을 바라보다 검은 봉지에 담겨진 으깨진 두부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아내의 죽음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미어질듯 아팠고 슬픔과 후회가 동시에 밀물처럼 몰려 왔습니다. 의사가 사망사실을 확인해 주며 덮여 있는 흰 천을 벗기자 아내의 예쁘고 하얀 얼굴이 드러났습니다.
남편이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는데, 뜨거운 눈물이 꺼억꺼억 소리를 내며 가슴에서 솟구쳐 오르다 보니 남편은 그만 아내를 부르며 울부짖고 말았습니다. 슬픔이 가라앉자 남편은 난생 처음으로 아내의 차디찬 손을 붙잡고 생전에 한 번도 해주지 않았던 말을 했습니다.
"여보!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당신을 먼저 가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우리 다시 만나면 당신 이 무뚝뚝한 아내가 되고 내가 상냥한 남편이 되어 그때는 내가 당신을 왕비처럼 잘 모실게요."
그날 이후 남편은 어느 식당을 가든지 두부 음식은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서로 마음이 안 맞거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그리고 가끔씩 잔소리를 하고 이따금씩 화를 내서 마음에 상처를 주고받더라도 남편과 아내가 서로 옆에만 있어 준다면 그것만이라도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 그 자체가 아닐까요? 아름다운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 위하여 누가 먼저가 아닌 서로서로 먼저 이 말을 꼭 전해 주십시오.
"당신이 옆에 있어 정말 고맙고 행복합니다."
지금 옆에 있을 때 잘 해 주십시오. 다음으로 미루면 때는 이미 늦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언제까지 내 곁에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지금 당장 사랑의 손을 굳게 잡고 다정하게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행복과 축복이 풍성히 넘치는 인생의 동반자와 날이 갈수록 사랑이 깊어지는 가정들이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망합니다.》
마태 5, 22-24 말씀에서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형제를 아내 또는 남편으로 바꿔 보세요)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아내, 남편)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아네, 남편)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아내, 남편)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 지난 월요일(10월 3일) 복음 말씀(루카 10, 26-28)에서,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라고.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해야 살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 1-4)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류 소설가 신달자씨는 시어머니와 남편을 29년을 넘게 불평 없이 병수발을 해왔으나 남편에게서 고맙다는 말,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채 남편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리움에 사무치며 ‘그냥 옆에 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라고 소회(所懷)를 밝힙니다.
두 번째 어느 무뚝뚝한 남편의 이야기에서 차가 정차했을 때는 바라만 보고 있다가 차가 떠난 다음에 후회(後悔)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는 성모님께 사랑을 받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입니다. 지금 당장 성모님께 받은 사랑을 우리 가정에서부터 실천합시다. 그렇게 하다보면 가정에 평화가 머무르고 이웃과 교화와 사회에 나비 효과를 만들어 냅니다.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꿉니다.
나비 효과란 브라질에 있는 나비가 날개를 한 번 퍼덕인 것이 대기에 영향을 주고 또 이 영향이 시간이 지날수록 증폭되어, 긴 시간이 흐른 후 미국을 강타하는 토네이도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예에 빗댄 표현입니다.
나태주의 ‘마당을 쓸었습니다’의 시가 나비의 효과를 잘 설명해주는 듯합니다.
“마당을 쓸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깨끗해졌습니다.
꽃 한 송이 피었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아름다워졌습니다.
마음속에 시 하나 싹 텄습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밝아졌습니다.
나는 지금 그대를 사랑합니다. 지구 한 모퉁이가 더욱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