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삶]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 복음 말씀이 제 가슴을 치게 만드는군요.
다급할 때만 ‘주님, 주님’하고 외쳐 불렀지, 상황이 조금만 완화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원상복귀하고 마는 제 지난 삶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매일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을 나름대로 연구하지만, 거기까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눈만 떴다하면 버려라, 낮아져라, 내려가라, 포기하라, 크게 마음먹어라... 별의 별 말을 다 떠들어대지만, 제가 선포하는 그 말씀의 내용, 그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부끄럽기만 합니다.
말로는 뭐든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말로는 뭐든 다 이루어낼 것 같습니다.
말도 자꾸 하다 보니 슬슬 늘고, 그에 따라 실속 없는 말, 거짓말, 속보이는 말도 점점 늘어만 갑니다.
고해성사 보기도 점점 부담스럽고 창피스럽습니다.
신자 여러분들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10년 전에 가슴 치며, 부끄러움에 치를 떨며 고백했던 똑같은 유형의 죄를 아직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이제 더 이상 똑같은 악습을 없다,
수천 번도 다짐하지만,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부끄럽게, 지지부진하게, 진보 없이 살아갈 것인가 두렵기도 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한 평생 후회하며, 가슴 치며 그렇게 살아가겠지요.
사도 바오로께서 체험하셨던 것처럼 한 순간의 급격한 변화, 어제와의 확연한 단절을 원하지만, 우리 인간의 본성상 그런 변화나 단절을 힘든가봅니다.
아마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리는 비참함에서 약간 덜 비참함,
하느님 앞에서 아주 부족함에서 약간 덜 부족함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다 이 세상을 하직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인생인가 봅니다.
비록 우리가 매일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인해 악습을 거듭하고 수시로 죄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래서 정말 괴롭다하더라도 희망까지 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캄캄해 보이지만, 지금은 비록 한심스러워 보이지만, 주님과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살아간다면, 세월이 흐르고 흐른 그 어느 날, 나이 어렸기 때문에, 부족했기 때문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던 지난날을 흐뭇한 미소와 함께 회상을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