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주회" 한상우바오로신부님피정..

2008. 6. 15. 오후 4: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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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말씀을 통하여 배웁니다. 인도하는 분들을 통하여 더 많이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벗이 많으면 배우는 것이 배가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자리를 반짝이는 별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언제나 가슴속에 간직하고, 빛나는 하나의 별자리 같은..

슬플 때도 아플 때도 언제나 다시 일으켜주는 밝은 빛 찬란한 빛입니다.

그 빛을 살리기 위하여 저는 오늘도 하느님의 자녀라는 선물을 받습니다.


예수 성심 성월은 우리들 마음을 서로 나누는 자리입니다. 서로의 어려움도 나누고 기쁨도 나누면서 지금 여기의 삶을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과거 지난날의 고통과 어려움의 삶들은 오늘 내가 하느님을 찾아가고 나서게 만든 역사이니, 아파했던 그 삶을 수용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사람은 죽을 때에 세 가지 '껄 '을 아쉬워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살아 있을 때 야박하게 굴지 말 걸

둘째는 살아 있을 때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해 볼걸

셋째는 살아 있을 때 단 한사람이라도 제대로 깊이 사랑해볼걸, 


우리의 마음을 나누는 성심 성월 마음에 대해 깊이 들여다봅니다.

우리 마음 안 에는 독하고 질긴 욕구가 있지요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욕구, 그리고 소유욕 돈과 쾌락, 집착, 애착, 욕심, 독점욕을 만들려는 것을 '사랑'이라 착각합니다.

우리는 잘못 된 '지도'를 갖고 살 때 가 많습니다. 무엇을 해 주어야 사랑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관념이지요. 온통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예수님 발치에서 말씀을 묵상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온데간데없고 마르타와 같은 분주함뿐입니다.

 

우리 모두는 가족사를 가지고 있고 부모 형제 때문에 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갖지 않은 이가 있을까요.부모로 인한 상처의 아픔... 그리고 이런 것들을 다룰 수 있는 치유의 방법,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피정지도 신부님께서는 부모와의 화해한 경험을 들려주십니다.

 

신부님의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였고 엄마에게도 폭력을 일삼았으며  그래서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았으며 그런 날들이 힘들어 신부님 스스로 병원에 보내시고.. 아버님께서는 그리 긴 세월을 사시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이 내적 상처로 남으셨다는, 그러한 환경 안에서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고 열등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벗어나고만 싶은 시간들이었기에 그런 삶이 싫어 하느님께로 투신했으나 도망 아닌 성소였음을 느꼈고

하느님은 그 고통의 삶을 새롭게 재창조해주셨습니다.

모든 역사가 지금의 하느님과 함께하는 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고 깨닫는 순간, 등에 업고있던 돌아가신 아버지를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하느님께 감사 해 하십니다.

상처를 주었던 아버지를 용서하기위해 하느님 안에서 자신을 먼저 용서하여야 했다고 하셨습니다.

내면을 만나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내게 묶여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에 가슴이 아파하는지 직면하고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내 마음을 만나는 시간 안에서 수치심이나 두려움 그리고 움켜잡고 있는 것들을 주님께 내어 드려야 하며 혹독하고 아픈 시련의 시간이 있었다면 그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느끼신 것이겠지요.

아픔은 사랑이라고, 그 아픔에는 꽃목걸이를 걸어준다고 하십니다.

 

산다는 것은 아픔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꾸어 나가는 것, 마음도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진실 된 사랑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길잡이가 되기 위해 세상에 중심엔 '십자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저앉았던 삶에 생기를 주십니다. 저도 내 안에 세상에 하나뿐인 예뿐  밭을만들어 그분과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 보아야겠습니다. 울타리는 만들지 않겠습니다.


이젠 자케오와 사마리아 여인 이야기를 묵상하며 옮겨봅니다.

 

 세리였던 자케오는 멸시와 미움을 받는 존재였지요. 키가 작아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라간 자케오, 키가 작다는 것은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우리역시도 키가 작은 자케오처럼 작은 사람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예리코우의 소경처럼 눈먼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시네요. 눈이 멀었다 해도 예리코우 소경처럼 믿음과 용기가 있다면 또, 키가 작다고 해도 자케오처럼 나무에 오르려는 열성이 있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주실 것이고  구원을 약속해 주신다는 말씀이시지요.

"네 안에 좋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그리 과거에 묶여 힘들어 하느냐 얼른 내려 오너라, 어~서~어.....내 성심의 사랑으로 너를 충만하게 해 주겠다." 는 분이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을 떳떳하게 내 놓을 수 없는 사람이기에 이 여인은 다른 여자들처럼 아무런 해택도 받지 못하는 여성의 신분 이였지요. 이 여인은 사람을 피하여 대낮에 물을 길러 우물에 왔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이 여인은 지난 과거에 자기 인생이 참 어렵고 힘들고 많은 남자에게 시달리고 많은 고통을 격은 세월이었지만.. 여기서 중요한것은  여인의 마음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고 말씀을 받아 들였다는 것이겠지요.

"내가 너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고 싶다."는 사랑의 선물을 우리 예수님께서는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힘이 없고 도망가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을 들고 직접 찾아 가신다는 것입니다.


피정을 하며 내 안에 하느님의 마음을 되찾고 회복할 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달았고, 신부님의 아버지에 대한 크나큰 상처와 고통의 역사를 재창조 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고 나 또한 내 안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 모든 시간 안에서 나를 어루만지고  나를 키워 오셨으며 하나도 버릴게 없는 나의 소중한 삶이였음을 느낍니다. 아픔이 이렇게 선물로 나누어 질수 있다는 것 그 안에서 자유로운 훈련이 되어질때 신비와 기쁨이 솟으며 예수 성심 성월 가족과 이웃들과의 마음을 나누며 그 안에 함께 하시는 벗이라고도 하시는 예수님과 울림 있는 사랑을 하고싶고, 나눔을 가져 보리라..



댓글 2

  • 2008년 6월 15일 오후 9:19

    자캐오를 올려다 보신 예수님의 눈빛을 그려봅니다. 창조주가 창조물을 섬기시며 올려다 보셨다는..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주님을 만나고자 나무에 올라갔던 키 작은 자캐오의 열정을 따르고 싶습니다. 성심 성월에 참으로 마음을 열어볼 수 있었던 은혜로운 피정이었고 다시금 생각할 수 있도록 글을 올려주심에 감사드려요..

  • 2008년 6월 16일 오전 12:27

    은혜 많이 받으셨네요. 글도 잘 쓰시고... 저도 저의 내면을 보는 것에 더 마음을 쏟게 되었어요. 자기 성찰 없이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고 하셨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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