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

2008. 6. 11. 오전 10:54:38

글자
  새롭게 태어납니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웠던 저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어느 가정의 가정부로 들어갔습니다. 그 댁의 가장은 의과대학 교수이면서 유명한 병원 원장이었고, 하나뿐인 아들도 의과대학생이었습니다. 사모님과 딸도 인정 많고 덕 있는 분들이어서 저는 남의집살이 하는 것 같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 가족 모두가 너무도 고마워 저는 정성을 다해 그분들을 섬겼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제가 스무 살이 된 어느 날, 저는 뜻밖에도 그 댁의 아들로부터 정식으로 청혼을 받게 되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과 심한 충격으로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그 집을 떠날 궁리만 했습니다. 주인댁 부모님도 당연히 반대를 했고 집안 분위기는 어둡고 무거워졌습니다.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는 아들에게 부모님의 승낙이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의를 다하여 꾸준하게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납득시켜 주었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아들의 뜻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저에게 알려주셨고, 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꿈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끝없이 두렵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는 저에게 아버님께서 간곡히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아내로 택하고 너를 며느리로 맞이한 우리에게 갚고 싶은 것이 있다면 네가 의사인 남편의 아내답게 되는 것이고, 병원장의 며느리답게 되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면서 이 가문의 당당한 일원이 되거라.”
 
저는 그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가정부 처지에서 그 댁의 며느리로 처지가 바뀐 것입니다. 저를 택한 남편과 받아주신 시부모님께 감사 드리는 일은 이전에 제가 가정부로 일하던 때의 의식이나 태도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버님의 며느리답게 그 남편의 아내답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뿐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시부모님과 남편이 원하는 대로 공부를 시작하여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대학의 간호학과에 입학하여 공부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그 가문이 원하는 며느리와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뼈를 깎고 살을 저미는 아픔이 함께하는 과정이었으나, 오직 받아주신 것에 대한 감사였습니다. 그 감사와 감격이 오늘도 저를 기쁨과 보람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것은 힘이요, 저의 재산입니다.
              -Best 8. 91년 4월호에 실린 이야기-
 
우리는 가끔 TV에서 위 내용과 비슷한 드라마를 보게 됩니다. 그때마다 시부모 될 사람이나 그 가족들은 반대를 위한 결사 항쟁을 합니다. 하기야 내가 위와 같은 처지에 있는 시아버지 될 사람이라고 해도 이 결혼 결사 반대였겠죠. 이 글을 읽고 찡한 감동을 받았습니다.‘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라는 옛 성현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이 댁은 아마 하느님 보시기에 정말 좋은, 축복 받는 가정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댓글 1

  • 2008년 6월 12일 오전 1:59

    이 글을 읽으니 죄인인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또한 벗 이라고 불러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풍요로운 기쁨이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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