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요" 많이 듣던 말일 것이다.
한때 우리 교회의 평신도 조직이 사회 광정(匡正)운동으로 전개하며 내걸었던 구호다.
요사이는 그좋은 "내 탓이요"운동이 시들해진 것 같아 몹시 아쉽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내 탓이요"를 되뇌인다.
종교적 가르침으로 "내 탓이요"는 모든 잘못의 원인과 책임을 타인에게 미루지 않고 그
일들이 모두 내 잘못으로 생긴 일이라 반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을 하느님 앞에서 뉘우치고 회개하며, 더 이상 잘못되지 않도록 책임지고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내 탓이요"라는 말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지녀야 하는 '믿음 생활'의
기본자세를 가르치는 것이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런 회개와 다짐으로 마음을 비우고, 개인의 빗나감은 물론
사회 부조리로 인하여 발생하는 악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또한 건강한 의미의 책임감을 느끼며 사회적으로 참되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권하는 가르침이다.
또 한편으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의 각오를 다짐하는 점도 포함한다.
"내 탓이요"는 나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자성인 동시에, "내가 할 탓"이라는
또 다른 앞날의 생에 대한 적극적인 양심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잘못된 일과 불의가 만연한 사회가 되가는 원인을 나에게서 찾는
자각의 표현이며, 성찰을 통해 앞으로의 삶에 임하는 몸가짐이며 맹세이다.
돌아보고 스스로 성찰하는 마음가짐과 동시에 "내가 할 탓"이라는 건실한
실천윤리로 미래를 살고자하는 두 가지 의미를 포괄하는 경구(警句)이다.
이는 겸허하게 자성하고, 새로운 다짐으로 실천하는 모습과 더불어 모순과
불의를 바로잡으려는 적극적인 실천이 뒤따르는 실천 윤리의 경구이다.
세상의 어두움과 부조리, 그런 가운데 있는 자기의 불우함과 억울함을 온통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탓으로 돌리고, 가진 자와 권력을 쥔 자의 횡포로 돌리며,
사회에 대한 원망만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모순이나 작폐로 생기는 부조리와 악이 있다.
그러나 세상을 암울하게만 보고, 스스로 주저앉는 생활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 보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에서 함께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탓' 이라는
겸허한 자성의 마음을 가지고 실천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하면 좋겠다.
-이원순 에우세비오 .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