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를 버리게나

2006. 9. 3. 오후 3: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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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를 버리게나


 행사의 제자 희천에게 한 과객이 찾아들었다. 보아하니 절집 식객 노릇을 하며 글줄 께나 읽은 것 같았다.
"스님, 도데체 해탈이 무엇입니까?"
돌아앉아 있는 희천에게 과객이 넌지시 물었다. 하지만 희천은 그를 돌아보지 않고 지나가는 말로 대꾸했다.
"누가 그대를 속박하던가요?"
승찬선사가 남긴 말이렷다? 과객이 빙그레 웃었다. 자신도 그 정도쯤은 대답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저 같은 속인이 속박을 당하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과객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희천은 여전히 돌아앉은 채로 응수했다.
"이치를 다 아는 사람이 어찌 해탈은 모르시나."
과객은 아차 싶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 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따. 상대는 명성이 자자한 선사였고,그는 보잘것없는 뱍면서생에 불과했다. 그러니 밑져야 본전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정토는 무엇입니까?"
과객은 내친 김에 뿌리를 뽑겠다는 심사로 또 물었다.
"누가 그대를 더럽히던가요?"
자신이 깨끗하면 어디든 정토가 아니겠냐는 말이었다. 희천의 목소리는 고요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과객의 목소리는 다소 누그러졌따.
"스님, 그러면 열반은 무엇입니까?"
여전히 과객의 목소리에 오기가 서려 있었다.
'허허, 요놈 끈기 하나는 가상하구먼. 그래,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
"이놈! 누가 널 죽이려고 하더냐?"
희천이 갑자기 돌아앉으며 고함을 빽 질렀다. 생사를 초월한 경지를 운운하는 것은 곧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가르침이었다.
과객이 용케도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
과객은 어느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더 할 말이 남았는고?"
희천이 그에게 조용히 다가가 속삭였다. 과객은 주눅이 들었는지 말은 못하고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러차 희천이 타이르듯이 말했다.
"여보게, 다음부터 나에게 묻지 말고 자네에게 묻게나. 그렇게 해서도 모르겠거든 자네를 버리게나."
이 말에 과객은 불현듯 깨우쳤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희천에게 절을 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의심이든 의혹이든,악이든 선이든 모두 그 마음이 원천이라고 했다. 따라서 마음이 깨끗하면 해탈이니, 정토니, 열반이니 하는 문구에 매달리지 않게 될 것이다.
과객도 이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믿지는 않았다. 다만 머리로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 마음 속엔 다른 생각들ㅣ 가득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이럴 때 해결책은 무엇인가? 바로 그 생각들로 가득한 마음을 버려야 할 것이다, 즉 스스로 무엇을 얻으려 하지 말라는 뜻이다.진리는 있는 그대로가 실체다. 거기엔 더 이상의 형용사가 필요없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곧 마음을 버리는 것이다.
희천이 과객에게 말했다. 깨달음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고 자신에게 의존하라고. 남을 시험하듯이 묻지 말고 스스로 자기 속에서 찾아보라고. 그리고 그렇게 해서도 찾지 못하면 찾으려는 그 마음을 버리라고.
'해탈이 무엇이냐?'
'정토가 무엇이냐?'
'열반이 무엇이냐?'
이렇게 자꾸 묻지 말라는 뜻이다. 그 모든 것은 껍데기만 다를 뿐, 본체는 동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껍데기에 집착하지 말고 자기 내면을 보라. 그러면 그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물을 것이다.
'그래도 해탈이 뭡니까?'
그러면 희천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당신 마음에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출처 불명-


 

출처 ;

 

 

댓글 1

  • 2006년 9월 3일 오후 10:04

    사나운 욕심을 버리니 마음에 평화가 오는걸 가끔 느낍니다.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주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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