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골집에서 가축을 많이 길렀는데
그 중에 당나귀는 아침에 해가 뜨면서부터 들에 나가 온몸이 뼈 빠지게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집에 사는 개를 보니 개는 완전히 놀고먹어~
하는 거라고는 낯선 사람이 오면 멍멍 짖고, 주인이 오면 꼬리나 흔들어주고, 때 되면 밥 먹고~
당나귀가 볼 때 너무너무 억울한 거야.
‘나는 등골이 으스러지게 일하는데 저놈은 왜 놀고먹을까?’
‘나도 당나귀지만 개처럼 흉내를 내보자.’
어느 날 주인이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개처럼 꼬리를 흔들면서 그 큰놈이 앞발을 들고 주인한테 덤볐어요.
주인은 들어오다가 당나귀 앞발에 밀려서 그냥 '꽈당' 하고 뒤로 자빠졌어요.
당나귀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몽둥이 세례였습니다.
당나귀는 그날 밤 베개를 붙들고 혼자 질질 짜면서
‘왜 그럴까? 개처럼 똑같이 했는데 나는 왜 얻어터졌을까?’
우리 말 중에 ‘꼴값’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로 ‘꼴값’은 ‘지 꼴의 값’ 을 할 줄 아는 사람,‘얼굴값’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반반한 얼굴에 꼴값하느라고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는 거니?
꼬리를 잔뜩 사려 가랑이 사이에 감춘 워리란 놈이 그래도 꼴값을 하느라고
마루 밑에서 다 죽어 가는 소리로 짖어 대고 있었다.
와 같이 주제파악을 잘 할 줄 아는 사람에게 쓰였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격에 맞지 아니하는 아니꼬운 행동을 하며 주제파악을 못하는 사람을 손가락질 하면서
‘어유, 꼴값하고 있네.’
'그 나이에 총각 행세라니? 꼴값하지 말고 정신차려라.'
그렇게 변했어요.
당나귀얘기를 하나 더 해드리죠.
이태리 어느 시골 마을이 동네가 다 천주교 촌인 곳에 성당에서 당나귀 한 마리를 길렀습니다.
그 당나귀는 일 년에 몇 번 그 동네 수호성인의 사진을 등에다 싣고 앞에서 향을 뿌리고
성체거동을 하듯이 온 동네를 성인의 사진을 모시고 다니는 그런 일만하는 당나귀야.
어떤 때는 예수님 사진도 거기에 모셔놓았겠지요.
당나귀는 그것도 모르고 자기만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 고개를 숙이고 성호를 긋고 그러니까
‘야~ 내가 대단한 당나귀군.
인간들이 나만 보면 고개를 숙이면서 꼼짝도 못하는 구나!’
이 당나귀가 어느 날 마구간을 빠져나와서 동네 시찰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 지나가는데도
“아이구, 저 성당 당나귀가 기어 나왔어?”
당나귀는 속으로 ‘이놈들아! 내가 누군지 알고 고개를 빨리 안 숙여?’
당나귀 등에 있는 성화를 보고 사람들이 절을 했지, 당나귀를 보고 절을 한 것이 아니지요.
한 마디로 꼴값을 잘못한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자기의 꼴의 값이 있습니다.
사제는 사제의 꼴의 값이 있고, 수녀들도 수녀들의 꼴의 값이 있지요.
예를 들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돈 맛을 알아서 촌지를 받기 시작하면
그건 나쁜 의미의 꼴값을 하고 앉아있는 겁니다.
군인이 나라를 지키지 않고 정권을 잡으려고 쿠데타를 일으키면
그것도 나쁜 의미의 꼴값을 하고 앉아있는 겁니다.
사제가 사제 생활을 올바로 못할 때는 ‘참 우리 신부님 꼴값해.’ 손가락질을 받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자기 위치를 지키지 못하면
늘 손가락질당하고 '꼴값' 한다는 얘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히 '꼴값' 을 하고 살아야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