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가 천국이에요 <김옥숙/희망의 라면 세 봉지에서 옮김>
“나 집에 가고 싶어요. 여보, 제발 집에 가게 해줘요.”
위암 말기로 시한부 생명을 선고 받은 아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집이라니, 말도 안 돼. 빨리 나아서 제주도 여행가기로 했잖아. 제주도 한번 안 가본 사람은 당신밖에 없을 거라고 말한 거 기억 안나? 마누라 제주도 구경 한번 못 시켜준 나쁜 남편 만들기야?”
남편은 될 수 있는 대로 감정을 억누르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맞아, 제주도!”
아내는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여보, 나는 틀린 것 같아. 제주도 구경한 걸로 할 테니 나, 집에 데려다 줘요.”
이젠 아내에게 제주도라는 약도 안 듣는구나 싶어서 남편은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 빨리 나아서 퇴원하면 제주도에 가자고 약속했다. 제주도 한번 가보는 것이 아내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힘든 투병생활을 잘 견디던 아내가 왜 이토록 마음이 약해진 건지 마음이 아프고 쓰라렸다. 남편은 아내의 간절한 눈빛에 마음이 흔들렸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내를 위해 마음이 절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전에 없이 어린아이처럼 그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여보, 이 삭막한 병원에서 내 남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아요. 내 손길을 기억하고 있는 우리 집, 내가 평생 쓸고 닦고 가꾸어 놓은 우리 집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구요. 우리, 결혼 20년 만에 마당이 있는 그 집 사고 얼마나 좋아했어요? 내 마지막 소원 이예요. 꼭 집에 데려다 줘요.”
“바보 같은 소리 좀 그만해. 마지막이라니? 누가 당신 보내준대? 나, 억울해서라도 당신 못 보내줘.”
“억울하긴 뭐가 억울하다고 그래요. 매일 당신한테 바가지만 긁고, 조금만 늦게 퇴근하면 바람 피운다고 의심이나 하고, 세상에 나 같은 마누라는 없을 거야. 당신, 나 죽으면 부디 착한 사람 만나요.”
“그런 소리 자꾸 하면 나 정말 화낸다. 제발 그만하라니까.”
“알았어요. 그러니까, 제발 집에 대려다 줘요. 집에 갔다 오면 치료 잘 받을 거예요. 제발.”
아내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세로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아내의 퀭한 눈에 그렁그렁 맺혀 있는 눈물방울이 남편의 마음을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남편은 아내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 먹었다. 주치의를 만나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어렵게 허락을 받아내었다.
집에 돌아온 날부터 아내는 자주 마당에 나가고 싶어 했다. 아내는 목련나무 그늘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목련나무를 눈부신듯한 표정으로 올려다 보았다.
봄볕 아래 드러난 아내의 얼굴은 더욱더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아내는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목련 꽃잎을 주워들었다. 옆집 정원에서 날아온 벚꽃 잎이 아내의 머리 위로 눈꽃처럼 하롱하롱 떨어졌다.
아내는 막대 사탕을 조금씩 아껴먹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하나하나 손길로 세밀하게 쓰다듬듯이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던 아내의 눈가에서 눈물방울이 툭 떨어졌다.
“여보, 지금 여기가 천국이에요. 왜 나는 이제 와서야……이토록 뒤늦게 알았을까요?"
남편은 야윈 아내의 어깨를 말없이 꽉 껴안았다. 일억 개의 전등을 켜놓은 것처럼 환하고 눈부신 봄날이었다. 마당의 기다란 빨랫줄에서는 빨래들이 축축한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따스한 봄볕에 몸을 말리고 있었다.
‘지금 여기가 천국이에요,’ 하고 한번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보세요. 신기한 일입니다. 천국이라고 발음하자마자 집 안의 사물들도, 내 옆에 있는 사람도, 그리고 나무들도, 풀 한 포기도 저 돌멩이도 환하게 변합니다. 그래요, 살아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가장 멋진 일, 여기가 바로 천국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