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사이에 두고 가게를 둔 두 장사꾼이 있었다.
두 사람은 날마다 일어나는 순간부터 서로 상대방을 미워하며 저주하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하느님께서는 두 사람을 화해시키시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셨다.
천사가 그 중 한 사람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하느님께서 들어주시고 축복을 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재물을 원하면 재산의 축복을 주시고, 자녀를 원하면 자녀를 주시고, 장수를 원하면
건강의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앞 집 사람을 용서하고, 그와 화해하십시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청하는 것을 두 배로 앞 집 사람
에게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사꾼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천사에게 물어보았다.
“정말로 제가 청하는 것을 저에게 내려주시고, 앞 집 사람에게는 두 배로 주시나요?”
"물론이지요.”천사가 대답하였다.
그러자 장사꾼은 놀랍게도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 눈이 하나 멀게 해 주십시오.”
그 말을 들은 천사는 실망하여 고개를 떨어뜨린 채 하느님께 되돌아갔다.
[용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말해 주는 예화 - 사목 248호(1999년 9월호) ]
천주교회는 용서 위에 세워진 교회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하던 이셨는데 주님은 그를 택하시어 당신의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주님께 사탄이라는 질책을 받기까지 하였고,
주님 십자가상의 수난 앞에 주님을 모른다고 배반하였고, 십자가 곁에서 멀리 도피
하려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그를 당신의 수제자로 삼으시고 그로 하여금
교회의 초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그들을 파견하시며 한 가지 큰 소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그들이 이웃의 죄를 용서해 주도록 하는 것
이었습니다【요한 20,21-23 참조】.
성당이 거룩한 곳으로서 아름다울 수 있음은 고해소가 같은 성당 안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 인간 서로가 거룩하고 아름다울 수 있음 또한 용서와 사랑이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