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산을 오르며 만난 것

2009. 5. 4. 오전 4: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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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미사드릴 때 올리는 모든 기도문은 들을수록, 읽을수록 참 아름답습니다.

제가 읽었던 모든 시 귀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제 마음을 바닥 깊이 움직여줍니다.

더할 수 없는 평온함을 줍니다. 첫 미사를 드릴 때,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하는

말씀에 눈물이 났고, '그리스도의 몸은 저를 지켜주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소서'라는 영성체 기도에 가슴 메이는 사랑을 느낍니다.


자주 사용하던 사랑, 평화, 구원, 용서, 생명, 영혼, 묵상, 고통등의 말들은 믿음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의미와 언어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더욱이 하나의 단어는 물론 각각의 단어들을 연결시키고,

또 둘 셋씩 묶어서 보면 그 안에는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뜻을 담고 있음을, 내 삶의 동맥과 정맥의 흐름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뜻이 담겨있음을 알게 됩니다.     


어제 미사를 마치고 혼자 성당 뒷 산에 올라 갔습니다.

초록 여름이 오기 전에, 늦 봄의 연두빛 나뭇잎과 숲을 맘껏 보며 걷고 싶었습니다.

생수 한 병과 책 한권을 들고 천천히 올라가다 중턱쯤에서 들고 간 책을 읽었는데, 신부이자 영성작가인

토마스 머튼의 『묵상의 능력』입니다.

 

그는 '묵상도 행복도 먼저 버리지 않고는 찾을 수 없다', 묵상은 '하느님 안에서 내적(영적) 자아와 만나는 일'이다. 묵상은  '삶이 문제를 풀어줄 때까지 그것을 자기 안에 품고 사는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 참된

내적 자아와 만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살면서 저는 '나는 얼마나 많은 나를 안고 사는가'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남들의 시선으로 나를 만들고, 세상의 대열에 나를 세워놓고, 그 잣대 안에서 자만하며, 또한 조급해하는

자신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이, 한편으론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내 안에 따뜻함, 연민,

관용과 사랑 등을 품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느낍니다.   

    

묵상의 능력은 어쩜 내 안의 선하고 참된 자아를 키워가는 능력을 만드는 일이 아닐까요.

"나의 참된 자아가 있는 곳에는 하느님도 내 안에 있다"(안젤름 그린)고 하지요.

  

분명한 것은 그 능력은 나 홀로는 불가능하며,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며

주고 가신 평화가 내 일상의 순간마다 흐르도록 기도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늘 나홀로 산책길에

저는 연두색 나무들도 맘껏 만나고, 예수님의 평화도 느끼는 과분한 행복을 누렸습니다.  

       


 

 

댓글 3

  • 2009년 5월 4일 오전 8:22

    새벽에 맑은 마음에 쓰셨네요. 그래서인지 글 또한 맑고 청명합니다. 사색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자 하시는 자매님의 노력과 감성과 지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 2009년 5월 4일 오후 1:17

    모처럼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2009년 5월 4일 오후 2:26

    나를 내려 놓을 때 평화가 내안에 머무를지 않을까요? 자매님을 글을 통해 나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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