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엄마와 전화를 합니다.
나의 하루는, 이른 아침 출근길 엄마와의 첫 통화로 시작합니다.
믿음을 가진 후 시작된 습관이지요.
'엄마 저에요'
'그래 엄마다' 첫마디에, 첫 숨소리에 엄마의 아침을 느낍니다.
전날 밤 푹 주무셨는지, 마음은 그런대로 편안하신지 말이지요.
엄마는 어제 하루 있었던 일과 그날 하실 일들을 조곤조곤 말씀해주십니다.
오빠가 다녀갔다, 할머니 제사인데 올 수 있느냐, 동네 어느 분 칠순잔치 혹은 장례식에
간다등 좋았던, 또한 서운하고 외로웠던 작은 일상사를 털어놓으시지요.
사랑은 들어주는 것, 공감해주는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키우시며 언제나 내 편에 서신 분,
나의 생김새, 능력과 한계, 성취와 실수 모두를 있는 그대로 자랑스럽게 여겨주신 분.
어쩜, 엄마 사랑의 기억과 흔적을 느끼고, 감사할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단 몇 분간 통화에서 엄마의 표정과 마음을 읽게 됩니다.
통화의 마지막에 해주시는 똑같은 말씀,
'내 걱정마라. 엄만 네가 잘 사는 거, 그게 제일이다.'
자라면서도 늘 들었던 그 말을, 어리석게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네.. 전 잘 지내요 엄마. 오늘도 좋은 일만 생각하세요'
내 기억 속에는
삼사십대의 곱고 단아했던 젊은 엄마의 모습이 생생한데,
어느새 여든 가까운 할머니 엄마를 봅니다. 저도 예외없이 그렇게 세월을 맞겠지요.
'엄마'는 떠올릴수록 감사하고, 부르기조차 벅찬 사랑의 존재이지요 누구에게나.
누구나 살면서 가슴에 새겨져 세월이 흘러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되는 사람, 일, 순간이 있지요.
어떤 것은 기쁘고 자랑스럽게, 또 어떤 일은 아프고 부끄럽게 돌이켜집니다.
좋은 일들만 자주 떠오른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아 힘들 때도 많지요.
그런데,
모든 지난 기억은 정지되고 불변하는 어떤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딱딱하게 굳은 고체가 아니라 흐르는 액체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의 나의 마음에 따라 지난 일은 다른 장면, 다른 기억으로 환원되니까요.
지금 자신의 삶에 미소를 지을 수 없을 때
지난 일은 그늘이고, 다가올 미래는 사막의 느낌이 아닐까요.
지금 자기 모습을 사랑하며, 자신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지난 일은 감사이고, 앞으로 남은 시간은 평화가 아닐까요.
카톨릭은 '보편적' '만인에게 공통적인'이란 뜻이지요.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보편과 공통'적인 그것은 '사랑'이겠지요.
'사랑'만이 자신 그리고 자신과 모든 관계를 다르게 보고, 새롭게 맺어주는
빛이며, 깊고 아름다운 숲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에 감사할 때,
사랑으로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과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
자기 삶은 '빛과 숲'을 향하여 걸어가는 기쁘고 아름다운 여행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