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세례를 받은 새내기 신자인 저는 아직 기도하는 법을 잘 모릅니다.
식사 전후에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리기 다반사이고, 미사 중에 드리는 기도도 간혹 어느 대목은 깜빡하고 넘어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성당에 나가면서 생긴 습관의 하나는 24시간 묵주를 지니는 것입니다.
묵주를 지니는 것 자체가 제게는 기도입니다. 묵주알을 하나씩 넘기면서 성모송을 읖조리는 모든 순간에 말 할 수 없는 격려와 따뜻한 다독거림을 느낍니다.
일하면서 마음이 대책없이 바빠지거나 지칠 때, 회의나 교육할 때, 사람을 만날 때는 물론 잠자리에 들 때조차 내 손에 작은 나무묵주를 쥐고 있게 됩니다. 묵주의 온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내겐 깊은 위안이자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힘들 때 무엇보다 먼저 기도를 하는 것,그것만으로도 제게는 말 할 수 없이 큰 변화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려면 먼저 자신의 내면을 만나야 합니다. 내가 억압한 것이거나 내 삶으로부터 밀쳐낸 것, 내가 결코 허용하지 않으려고 한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안젤름 그린)
어제 기도를 하러 성당에 갔습니다.
미사시간 외에 성전에 기도를 하러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특별히 미리 날 잡고 시간내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오후 문득 가슴 속에 담아둔 이야기가, 돌아볼 일들이 참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발길이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넓은 성전에 혼자 기도하는 그 시간은 온전히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저는 마음 속 모든 희노애락 감정의 파고, 그 깊은 내면의 파동을 하느님께 모두 드러내놓았습니다. 하느님은 나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며“내가 다 안다.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고 다정하게 웃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웃음에 제 마음은 보름달이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든 것, 마음뿐 아니라 발 길이 성당을 향해 간 것도 제겐 놀랍고 감사한 일이지요. 그 누구와 이런 절실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그 어떤 순간에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다 열어 보일 수 있을까요. 성당으로 가는 길과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달랐습니다. 초봄의 햇볕도, 새순돋는 나무 빛도 더욱 따뜻하고 부드럽게 느꼈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내 안의 불안전함과 오만함을 고백하게 해주는 것,
내가 나로서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충만히 느끼는 것,
이를 가능케 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아닐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왜 세례를 받았느냐”는 질문을 여러번 받았는데, 오늘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군요."기도하고 싶어서요”라고요.
기도할 마음을 갖게 된 것만으로 무한히 감사할 뿐입니다.
기도할 때 저는 가장 작고 여린, 가장 겸손한 내 안의 어린 아이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