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선되는 가치는 과연? "용산 참사를 바라보며" 이강서 신부(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2009. 2. 13. 오후 11: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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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선이 있을 수 있지만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사회교리라는 렌즈로 바라봐야 합니다.

 사회교리는 크게 네 가지 원리입니다.

 첫째, 인간존엄성의 원리입니다. 인간존엄성을 위해 모든 제도, 기구, 법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존엄성을 대신할 수 있는 가치는 하나도 없습니다.

 둘째, 공동선의 원리입니다. 한 사람의 이익은 다수에게도 이익이 돼야 합니다. 다수에게 불행하고 한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존엄성도 공동의 선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공동선이 구현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연대성의 원리입니다. 연대성의 원리는 곧 사랑의 실천과 같습니다. 약한 사람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실천되지 않으면 '사랑'은 구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넷째, 보조성의 원리입니다. 가정,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 국제단체 등 다양한 기구와 조직은 인간존엄성의 실현을 위해 있습니다. 우리의 중앙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또 이를 수행하라고 국민이 힘을 준 것이 공권력입니다. 따라서 공권력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 안전을 지키기 위해 행사돼야 하는 것이지, 국민을 살해하고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데 행사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무자비하게 대해선 안 됩니다.

 이번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많은 시각 중에 현상만 보고 원인은 보려 하지 않는 시각이 많이 있습니다. 극렬한 시위를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왜 그들이 그러한 시위를 했는지 문제의 원인에 대해선 묻지 않고 결과만 보고 얘기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뭘 외치려 했는지 보려고 하지 않고 '보나 마나 보상을 요구하는 거겠지'하고만 생각합니다. 현상만 보고 원인을 보려 하지 않는 자세는 성실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가치 우선순위가 완전히 역전된 사회라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생명, 인간, 침해받을 수 없는 기본권의 가치보다 우선순위의 제일 위에 있는 것은 이익과 기득권, 기득권 유지를 위한 질서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이익을 위협하는 무리, 기존 질서를 흔드는 사람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전도된 가치 속에 살고 있습니다.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마태 25,40)이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가장 작은 이를 예수님 대하듯 대하는 마음이 우리가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살겠다고 다짐하고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압을 담당했던 경찰관이나 권력가, 관료, 정치인처럼 그들을 우습게 보고 있다면, 과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인지 근본적 성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는 곳은 서울에만 200군데가 넘습니다. 제2, 제3의 용산사태가 곳곳에 잠복해 있습니다. 정부는 재개발사업에 대한 근본적 검토를 다시 해야 합니다. 80%가 넘는 세입자가 적절한 보상 없이, 생계를 박탈당한 채 쫓겨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우리 정부의 재개발사업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소수 이익만을 위한 것인지 이번 사건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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