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삶
1923년 에지워터비치 호텔에서 호화로운 사교 모임이 열렸습니다. 당시 미국 경제를 주름잡던 젊은 갑부 아홉 명이 사교 클럽을 만들어서 서로의 성공을 축하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이들은 서로의 후견인이 되어 서로를 보장하는 관계를 맺었습니다. 만일 한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남은 사람들이 힘을 모아 돕는다면, 이들의 경제력은 무너질 수 없는 철옹성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리고 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자신들의 부를 누리기 위한 호화로운 파티를 열고, 방탕한 일생을 즐겼습니다.
이 첫 모임이 있은 후 25년 뒤, 이들의 성공과 부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해진 한 작가가 이들의 삶을 추적하였습니다.
당시 증권사 사장이었던 리처드 위트니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사망하였고, 철강회사 사장이었던 촬스 슈워드는 파산 후 화병으로 사망하였으며, 가스회사 사장이었던 하워드 홈슨은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가 우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밀 도매상이었던 아소 가터는 거리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장관 출신인 엘보트 월과 사업가 사무엘 인쉘은 범죄자로 지목돼 도망 다니다가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은 모두 자살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우리와 함께 땅을 밟고 사는 모든 사람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일을 아무리 완벽하게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를 잘하면 하나를 실수하는 사람들입니다.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인들도 지독한 방귀 냄새를 풍길 수 밖에 없는 사람이고, 황소보다 힘이 셀 것 같은 씨름 선수들도 감기 때문에 콧물을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쌍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삶을 마감한 것이지요.
우리는 어제 우리나라의 큰 어르신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으로 그분을 땅에 묻었습니다. 저는 명동에서 김추기경님의 장례미사에 참석한 후 용인에 있는 천주교 성직자 묘지에서 추기경님의 안장식에 함께 했습니다.
천주교 신자뿐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 모두가 추기경님의 선종을 안타깝게 생각하였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현재 우리나라에는 남을 위하는 희생 의 삶을 살아가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리사욕(私利私慾), 정치적으로는 당리당략(黨利黨略)뿐입니다.
정진석 추기경님께서는 김추기경님의 고별 미사 강론 말씀 중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큰 기둥이셨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가르쳐 준 큰 스승이자 어른이셨던 김수환 추기경님, 가톨릭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도자로서 항상 병든 자, 가난한 자, 약한 자와 함께 하셨습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소외된 노동자들 편에서, 때로는 불의와 부정에 맞서 정의를 말씀하시고, 행동하셨습니다. 민주화 시대에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편에서 권위주의에 맞서 정권의 압박을 맨 앞에서 온 몸으로 막아내셨습니다.
네편 아니면 내편이라는 이분법이 팽배한 요즘에는 타인을 존중하고 마음을 열고 대화할 것을 가르치셨고, 그러면서도 원칙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권력이 오만해지거나 부패할 때에는 준엄히 꾸짖으셨고, 시류에 휩쓸려 흔들릴 때에는 가야 할 바른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힘없는 자에게는 한없이 인자하셨고, 가진 자와 오만 앞에서는 추상과 같으셨습니다.
추기경님께서 마지막 당부 말씀으로 “감사합니다. 사랑하십시오”. 라는 말씀이 이제 다시 만나 뵐 수 없는 김 추기경님의 유언이 되었습니다.」
정진석 추기경님께서는 장례미사 강론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말씀은 누구나 들어도 쉽고 감동적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느 자리에서 무슨 말씀을 하시건 인간과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진솔한 사랑과 체험을 바탕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들은 시대와 환경의 변화를 꿰뚫고 하나의 주제로 모아집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존엄’입니다.
그래서 김 추기경님은 늘 입버릇처럼 “적어도 인간으로서 정직하고 솔직하며 남을 존중하고 위할 줄 아는,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한다.”고 늘 역설하셨습니다.
또한 김 추기경님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사목 활동에서 우선수위를 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는 믿음에서였습니다.
그래서 김 추기경은 도시빈민들의 허름한 막사나, 노동자들의 시위현장을 가리지 않고 찾았습니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의 편에 선 것은 그분이 가진 가치관과 믿음의 실천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습니다.
1971년 성탄미사에서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중에 정부에 대한 쓴 소리를 하는 용감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70~80년대 김 추기경님은 민주화 운동의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전자(前者)의 미국 경제를 주름잡던 젊은 갑부 아홉 명의 이야기는 종말에 죽음을 맞는 최후가 너무도 비참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누구 하나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우리 김추기경님은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로 사는 길인가를,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의 삶인가를, 40만이 넘는 추모객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계셨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불쌍한 사람들이고 죄인들입니다. 김추기경님과 같은 분을 제외하고선 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빌려 주신 것입니다. 빌려 쓰고 있는 주제에 소유하려고들 합니다. 이 밤 조용히 무릎을 꿇고, 내 자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조심스럽게 받드는 삶이 되도록 이끌어 주십사 하고 기도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