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이 무성하여 보기만 좋은 무화과나무는 나에게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오늘 복음은 성전 정화(淨化)를 중심으로,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해서 베타니아 동네를 나올 때, 예수님께서 멀리 있는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시장하시던 참에 혹시 나무에 열매가 달렸을까 하여 가까이 가 보십니다. 그러나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일러 줍니다.
무화과 철이 아닌 때에 왜 열매를 기대하셨을까?
모를 일이지만 상상을 해 봅니다.
제 철에도 열매를 맺지 못하던 무화과나무라는 것을 알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철이 아닌 지금 잎이 무성한 것을 보시고 ‘혹시’ 지금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닐까 하고 기대하는 마음은 아니셨을까?
여하튼 예수님의 시선에는 잎사귀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혹시’ 하면서 다가가십니다. 그러시면서 ‘혹시나’나 ‘역시나’의 감정으로 이어진 나머지 무화과나무에 저주를 내린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도대체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맺지 못하는 이 나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열매를 맺지 못하는 성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내용은 없으면서 겉만 번듯한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성경은 이어집니다.
선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사고팔고 하는 자들을 쫓아내시며, 도 환전상들의 탁자와 비둘기 장수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을 너희는 ‘상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고 나무라십니다. ‘강도들의 소굴’ 같은 이 집이 ‘기도하는 집’으로 바뀌어져야 함을 천명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이 기도하는 집일 때 비로소 성전의 본모습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참된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하느님답게 모실 수 있으며, 그 뜻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삶을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우리 각자는 성전입니다.
성전인 ‘나’는 혹시 잎사귀밖에는, 아무것도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와 같지는 않을까?
진실을 논하고 하느님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만, 실제로 맺는 열매는 쭉정이에 지나지 않거나 아예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늘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오늘도 내일도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참된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