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이 공존하는 인간

2009. 11. 17. 오전 4:44:57

글자
 




   어린 시절의 유치한 생각이라는 것을 알지만, 내가 고통스럽도록 상대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때, 나는 상대방이 악해서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내가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가 고의로 그러하였든 아니었든 내가 현명하게 피하지 못하는 상황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어눌하고 어리벙벙한 나의 성향은 그런 상황을 더 많이 유발시켜서 더 많은 미움들을 만들어내곤 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미워하던 사람에게서 조금치의 진실들을 발견할 때, 그 미움들은 사라지곤 하였으니 그 미움도 어쩌면 유치한 스스로의 위안 이었을 런지도 모른다.

   더구나 상대방에게서 호의와 선의를 발견할 때 그를 천사라 생각하던 시간도 있었으니, 그것은 상대방을 지나치게 미화시킨 것이라는 것이기도 했다. 사실 누구나 어느 만큼의 호의도 있고 어느 만큼의 선의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다. 살다가 망가지고 찌그러지는 모습이 사람을 황폐화시키고 악에 바치게 만들어서 삶을 우그러뜨리니, 그 이전에는 그 사람에게도 그런 구석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내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사람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자신을 알고 자신을 인정해주면서 스스로의 자존감을 찾아나가는 시간들을 겪어나가면서, 어린 시절의 선악의 개념이 얼마나 유치한 것이었는지를 발견하면 많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악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의 마음속에나 들어있는 구석들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상대방에게 강요될 때는 정말로 커다란 악으로 행해지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지식인들의 모습에게서 발견되어지는 화려한 수식어 속에 감추어지는 악들이나,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행위로 드러나는 신문 사회면에서 보도되는 악들이나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것일런지도 모르는데, 숨겨지고 감추어진 구석을 찾아낼 수 있는 지능이 있는지 아닌지의 차이로 악은 곳곳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사실 누구에게나 동등한 힘의 균형이 있다면 그러한 일들은 많이 적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다른 사람에게 힘을 행사하고 강요하니 그것들이 모여서 악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세상에 악이 없다면 선이 없을 것이다. 그것은 대비되는 개념이니까 말이다. 선함이라는 것은 악을 제거하는 힘이지 그저 있는 자체는 있는 그대로 돌아가는 평화의 질서일 것이니, 그것을 아마도 종교에서는 신의 질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거기에 자신의 힘을 실어서 악을 보태는 인간들은 어느 인간 집단에서나 발견한다. 어떤 이는 찌질이처럼 구석에서 야금야금 남의 등을 치면서 자신을 과시하고, 어떤 이는 대단한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이타적인 양 자신을 과시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 질서 속에서 평정을 구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평화의 질서이지, 인위적인 자신의 사고를 강요하는 것은 그채로 악이 되어지는 것이라고 이제는 생각하게 되었다. 자연 질서는 그것이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 강한 이가 약한 이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질서이고, 누군가의 죽음은 널리 애도되지만 누군가는 홍수에 떠내려가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이 세상에서 스러져버린다. 그 모두가 인간이라는 이름의 생명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있는 자리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방어해나가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이지 그 행위를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악이라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의 생각은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른다. 그렇다. 자신의 삶은 자신 밖에는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것을 염두에 둔다면, 삶은 훨씬 누구에게나 팽팽한 긴장이 되어지는 것이며, 그 긴장 속에서의 궁퉁이들을 찾아서 서로의 만남이 이어지는 것이 애시당초 인간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상식을 결여한 채 사람들을 만났던 자신의 어리디 어리던 생각들을 날려 보내면서, 내가 어린 시절 생각하던 선과 악의 이분법들이 얼마나 유치한 생각들이었는지 두고두고 생각해본다. 그것의 본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선과 악의 모든 구석이 공존하는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천사도 되어주고 누군가에게는 악마도 되어준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다른 누군가의 행동에 대한 판단이 훨씬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또한 발견하게 된다.

   삶은 있는 그대로 흘러간다. 내가 가지 말라고 해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익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유한한 시간들을 어떤 질로 보내는가 하는 문제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이니, 당연함을 발견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들까지 아까워한다면, 남은 시간들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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