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우리몸을 날려 버릴듯이
온갖 시련의 바람이 날아와도
당신을 향한 우리마음은
당신의 그 소박하고 순수한 눈동자와
늘 함께 하고있어요.
당신의 순수한 열정이
이제는
영원한 사랑의 촛불이 되어서
언제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습니다.
이제는
영원히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세상적으로는 모든것이
지나가버린 추억이 되었어도
당신이 안계셔셔 외로운 우리 마음이지만
당신의 따뜻한 미소와 함께
우리 마음 영원히 함께 타오를
사랑의 촛불이 되어서
늘 우리곁에 계십니다.
우리마음도 언제나 당신곁에 머물러 있습니다.
당신의 몸을 사르신 사랑의 촛불이 되어
언제까지고 비추어 주실 줄 알고 있어요.
그늘지고 어두운 곳에도
당신의 촛불이 비추어 주실 줄 알고 있어요.
당신을 보내고 네번째 맞이하는 성탄이에요.
그 높은곳에서
늘 우리를 내려보고 계심을
느낄 수 있어요.
지난 3년은 저희에게는 박해의 세월 이었지요.
성당에서 한국어 미사를 드리지 말라.
성당 바깥에 걸려있는 안내간판을 철거하라.
교민잡지에 광고를 하지마라.
30년 가까이 사용해오던 성당공동체의 공식적인 이름을 내세우지마라.
나중에는 모여서 밥 먹는거 까지 간섭을 했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늘 함께 있었어요.
그분이 가신 이후로도 항상 함께 있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라면 무얼 못하겠어요.
지난 3년동안 매주 묵주 5단씩 바치는 기도모임을 했지요.
모임후에는 동고동락하는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지요.
점심은 소박했지요.
주로 국밥이었지만, 멜번의 서늘한 날씨와 어울려서
그 소박한 점심맛은 참 맛있어요.
매주 돌아가면서 밥준비하고
티안내고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봉사하는 공동체 식구들.
태어나고 교육받았던 한국에서는 잘나가던 엘리트들도 많지요.
언젠가 오실 신부님을 위해서
우리는 사제관을 마련하고 신부님을 모실 준비를 했었지요.
그사제관에 삼년이란 세월동안 여러 신부님들 방문객들이 다녀 가셨지요.
그곳에서 머무르던 부부가 새생명을 출산하는
경사스러운 일도 있었지요
휴가차, 방문차, 신부님들이 다녀 가시면 정성껏 모셨지요.
눈치보면서 이집저집, 이성당저성당, 학교체육관으로
전전하며 미사를 드리기도 했지요.
공동체식구의 집에서 행하는 미사에는 많은 교우들이 참여해서
어떤때는 100여명 넘는 형제자매 어린이들이
거실에서 복도로 계단으로 부엌으로 이층으로까지 이어져서
성가대의 찬양과 함께, 참 마음으로 미사를 드렸지요.
이런 우리의 모습이
초대교회를 닮았다고 누가 그랬지요.
이렇게 다녀가신 많은 신부님들은
우리에게 격려와 희망과 약속을 주시기도 하셨지요.
큰키에 비해서 얼굴이 순박한 어린아이 같은(노디미트리)
신부님은 방문하셔셔 그러셨지요.
“이렇게 아름다운 공동체를 어떻게 부정 할 수가 있어요?”
한 호주교수님(로저우드 교수님)은 그러셨지요.
“삼년간의 우여곡절 힘든시기가 오히려 여러분들의
영적신앙을 성숙시켰음을 오늘 보았어요”라고,
우리에게 그런 3년이 있었지요.
그래요 아직 시련이 끝나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그러나 우린 이제 더이상 두렵지가 않아요.
저 높은곳에서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그분이
제몸을 살라서 불 밝히는 촛불처럼
우리와 늘 함께 하심을
우리는 느낄 수 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