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하느님

2008. 12. 9. 오전 3:59:03

글자

 

 

 

잠시 오랜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앙이라는 것..하느님이라는 분이 비현실에 계신 분이 아니라

이 땅위에서 이루어지는 삶이라는 것을 알고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현실 속의 하느님을 생각하기 시작하니 혼돈이 생겨납니다.

 

첫 아버지 기일을 맞이하여 미국에 있던 언니가 오고

가족들이 모이면서 신앙에 몰두하여 온 가족의 지탄을 받을 정도로 황당한 말을 하던

언니의 이야기들에서 현실감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아름답기는 하지만 정교하고 분명한 이야기이며 스스로 고통을 얼마나 겪었을런지도 알지만

난 하느님이 우리에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의 차이일까? 그런 생각도 하지만

저는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은 그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종파와 종교라는 틀 조차

넘어서서 계시는 분이시라서 인간이 관념의 존재만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그채로 인간이라는 것을 기본으로 알고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것이겠지요..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도 누구에게나 개성이 존중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

스스로 틀이 잡혀가면서 신의 문제로 논쟁이나 갈등은 하기 싫어집니다.

 

언니와의 이야기에 발끈하고 흥분하던 자신이 부끄러웠고 차라리 언니에게 연민을 갖게 되면서

단순하고 현실감이 떨어지는 우리 자매는 서로 사실 극단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언니..그저..과거로 돌아가서 맘 속에서 사랑하고 이제는 우리가 다 커버린 형제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저 결혼을 못해서 나의 가정을 꾸리지 못했을 뿐이지 살아가는 것들은 어느 정도는 독립적이어야 한단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생각해 봅니다..아버지 기일 제사는 가족들이 모인 축제였습니다.

재미있는 축제가 아니라 다양한 모습들이 만나는 시간이라고나 할런지요..삶이 나아들어가면서 그런가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 관념으로 함께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현실로 함께 하시는 하느님

그래서 살아나가는 사랑을 느끼고 나누는 것이라는 모습은 삶과는 다른 것들이 아니라

아주 조금치의 양보와 아주 조금치의 노력과 아주 조금치의 이해와..그런 것들을 포함한다는 것이란 것입니다.

사실 종교 박람회도 아니지만 아버지는 제사를 아주 좋아하시던 분이셨고 언니는 개신교 오빠는 불교

저와 동생은 가톨릭 그리고 어머니는 무신론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의 문제는 종교때문이 아니라

다른 것들 때문에 생겨나니 이름붙인 종교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이해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저 현실들이 이슬방울 같은 부질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던 허무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대림에는 삶을 웅켜쥐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현실 속에서 있는 것들에게 사랑을 주고 품으려 애써봅니다.

낮아지고 견디며 실제로 움직이려 애써봅니다. 사랑은 곱디고운 이상이 아니라 이 땅위에 있다고 믿으면서..

 

 

댓글 2

  • 2008년 12월 9일 오전 11:18

    참사랑이 느껴집니다.

  • 2008년 12월 9일 오후 6:32

    아멘

│ 이 │이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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