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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 1일은 천주의 모친 마리아 대축일입니다. 왜 성모님 축일을 새해 첫날로 정했을까요? ① 암탉이 울면 재수 없다는 속설을 깨려고 ② 가톨릭교회는 공처가들의 교회라서 ③ 성모님이 땡깡부리셔서 ④ 성모님의 삶을 본받으라고
성모님의 군대인 레지오 마리에 교본에는 성모님의 삶을 본받으라는 권유가 여러 차례 나옵니다. 도대체 성모님의 어떤 점을 배우라는 것인가?
어떤 자매님이 성탄 구유를 보고 나더니 참 아름답다 하면서, “성모님은 참 팔자도 좋으시다. 아들이 하느님이요, 남편은 요셉 성인이시니 얼마나 좋으셨을까.”하십니다. 이 말은 사촌 엘리사벳이 아기 예수를 임신한 후 찾아온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 그렇게 팔자 좋은 분이셨다면 우리가 그분을 본받을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생애는 말 그대로 우여곡절로 점철된 기구한 삶의 연속, 소위 팔자가 센 여인의 인생이었습니다. 오죽하면 ‘聖母七苦’, 성모님의 일곱 가지 고통을 묵상하라는 교리까지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그럼 그렇게 드센 팔자였던 성모님의 무엇을 본받으란 것인가? 성모님께서 당신 인생을 받아들이시는 자세를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신세타령을 하거나, 기구한 팔자에 대하여 한탄하고 사십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그러나 영성가들은 환경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우리 마음을 결정하는 것은 환경에 반응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이라고 합니다. 이런 생각에 대하여 동서고금의 많은 성자들이 유사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채근담은 ‘人生福境禍區는 皆念想造成’ ‘인생의 복과 재앙은 다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윌리엄 제임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하라. 어떤 불행이 닥치든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역경을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쇼펜하우어, “인생이란 항해를 떠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준비는 어떤 어려움이라도 감수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로마 철학자 에픽테투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단 하나 있으니 그것은 우리의 의지력을 넘어서는 일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을 받아들이는가, 그렇지 못한가 하는 것은 심리적 상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내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지나치게 버티려 하면 마음 안에서 수많은 내적 갈등이 발생해서 병에 걸립니다. 걱정, 긴장, 압박감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현실을 거부하게 되면 자기가 만든 몽상, 공상의 세계로 도피하는 정신병자가 되고 맙니다. 이것을 타이어에 비유한다면 충격 흡수 타이어는 오래 버티는데, 제한 타이어는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받아들이는 훈련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가? 그것도 그렇지 않습니다. 상황에 대하여 유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힘을 빼야 합니다. 유도 사범들은 고수가 되려면 몸이 버드나무처럼 휘어지기 위해 힘을 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것처럼 마음의 힘을 빼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이런 원리는 정신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을 빼야 합니다. 신앙인들은 힘을 빼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힘을 빼는 기도란 어떤 것인가? 이런 기도를 가장 잘하신 분이 바로 성모님이십니다. 성모님께서 하신 기도 중 가장 유명한 기도,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 이 기도를 두고 혹자는 너무 무기력한 기도가 아니냐, 또는 체념을 조장하는 기도가 아니냐 비난의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만, 성모님께서 하신 이 기도는 말 그대로 ‘힘 빼는 기도’-유연한 기도입니다. 마치 파도가 심한 바다에서 사공이 자기 배를 파도에 맡기는 고난이도의 기술을 부리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하신 기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두고서 많은 영성가들이 영성의 대가라고 부르는 것이고, 우리는 성모님의 이런 점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하나 해드립니다.
어떤 본당에 믿음이 충천한 자매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이 자매가 얼마나 자기 믿음에 대하여 떠벌이는지 모두가 입을 쩍 벌릴 정도였는데, 성모님께서 잉태하신 것에 대해서도 그까짓 거,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는데 나라도 하겠다 해서 신자들의 구설수에 오를 정도였습니다. 참다못한 본당 신부가 “정말 그런 얘기를 했냐? 만약 천사가 나타나서 자매님 딸이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고 해도 오케이하겠냐?”했더니 “아, 그까이 꺼 오케이 못할 게 뭐 있느냐.”고 큰소리를 뻥뻥 쳐서 본당 신부가 기가 막혀 말도 못할 지경.
그런데 그런 어느 날 그 자매 딸이 수녀원에 간다는 소문이 나는가 싶더니 그 자매가 한동안 냉담을 하다가 아주 오랜만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성당에 나왔는데, 온몸에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본당 신부가 자초지종을 물으니 자매 왈, 자기 딸이 좋은 대학 나와서 느닷없이 수녀원을 간다고 하기에 속이 확 뒤집혀서 성모상에 대고 ‘아니, 내가 좋은 사윗감 구해 달랬지, 수녀 만들어 달라 그랬냐고 지랄 지랄했는데, 그런데도 딸네미가 뒤도 안 돌아보고 수녀원에 들어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딸이 수녀원에 들어간 날 어찌나 부아가 나는지 성모상을 집어던져서 성모상 팔이 부러졌는데, 던지다가 자기 팔도 같이 부러져서 기브스를 하고 며칠 지나다 보니, 또 부아가 터져서 성모상을 계단 아래로 던졌는데 던지다가 자기도 같이 계단으로 굴러서 다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손과 발에 다 기브스를 하고 눕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친구가 오더니 귀신이 씌운 것 같다면서 용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자고 권하더랍니다. 그런데 무당이 그 방에 들어와 성모상을 보자마자 “야, 이년아, 신 모시고 사는 년이 나는 왜 불렀어. 나 죽일 일 있냐.”하고는 냅다 도망가더랍니다. 자매가 보니 성모상이 무당을 무섭게 째려보고 있더랍니다. 왠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성모상을 집어 상자 박스 안에 안 보이게 넣어 두었는데, 밤새도록 자기가 죽어서 관속에 들어간 꿈을 꾸어서 놀라 일어나 성모상을 다시 꺼내놓고 잠을 청하는데, 이번에는 꿈속에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네가 본당 신부한테 딸네미가 성령으로 잉태해도 좋다 하여 믿음이 좋은가 싶어 내가 네 딸을 데려왔는데 왜 말을 바꾸고 지랄이냐 지랄이.”하면서 머리채를 잡고 흔드셔서 “아파요”하면서 잠을 깼답니다. 그런데 깨었어도 누군가가 머리채를 잡고 있는 것 같아서 눈을 떠 보니, 조그만 성모상이 자기 머리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더랍니다. 자매가 놀라서 용서를 청하고, 앞으로는 모두 성모님 뜻대로 하겠다고 하니 순순히 놓아주어서 마음을 돌리고 성당에 나왔다면서 성모상을 내어놓았는데, 신자들이 그 성모님을 성당 안에 모셔놓고 명패에 이름 짓기를 ’자모이신 마리아‘가 아니라 ’독하신 마리아‘로 지었다는 믿거나 말거나.
채근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天薄我以福 하늘이 내 복을 박하게 준다면 吾厚吾德,以迓之 나는 내 덕을 후히 하여 이를 맞이하고 天勞我以形 하늘이 내 몸을 수고롭게 한다면 吾逸吾心,以補之 나는 내 마음을 편안히 하여 이를 보충하고 天阨我以遇 하늘이 나를 곤궁케 한다면 吾亨吾道,以通之 나는 내 도를 달성하여 이를 트이게 하리니 天且我奈何哉? 하늘인들 나를 어찌할 수 있으랴?
이렇게 유연하고 여유롭고 느긋한 마음으로 잘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
받아들이려는 노력 - 도반 신부님
2012. 2. 26. 오전 9: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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