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꾸기 욕망중독 - 도반 신부님

2012. 2. 22. 오후 7:24:54

글자

인생을 살다 보면 짜증날 때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가?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자기 인생이 달라지는 것 없이 늘 지지부진하다는 생각이 들 때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역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무엇인가 더 좋은 새로운 것을 얻었을 때,

더 좋은 것으로 바꿨을 때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바꿨을 때 기분이 좋았나요?

남자 분들은 차, 자매님들은 가방(루이비똥), 집,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

간혹 어떤 분은 내 인생을 통째로 바꾸고 싶다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이 가진 간절한 욕망 중 하나가 바꾸고 싶은 욕망입니다.

이 욕망이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몇 해 전 어떤 여가수가

‘바꿔, 바꿔’하고 노래를 불렀을 정도지요.

 

바꾸고 싶은 욕망은 사회가 문명화되어 갈수록 더 커집니다.

상품 광고 때문입니다.

요즘 나오는 광고들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차를 바꿔라, 집도 바꿔라, 가방도 바꿔라 등등......

마치 바꾸기만 하면 기분이 천당에라도 갈 것처럼 요란하게 떠들어댑니다.

인간이 가진 바꾸고 싶은 원초적 욕망을 자극해서 돈벌이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꾸고 싶은 욕망에 쫓겨서

돈이 생기는 대로, 돈이 없으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계속 새로운 것을 구입하려 하고,

심지어는 자기 얼굴을 뜯어고치거나 사람마저 바꿔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꾼다는 행위가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 가질까 합니다.

 

우선, 무엇이든지 바꾸면 행복한가 하는 것부터 생각해보겠습니다.

이혼을 세 번이나 하고도 네 번째 결혼을 준비하는 돈 많은 여인에게

기자들이 소감을 물었더니, “그놈이 그놈이지요.”하더랍니다.

“그런데 왜 또 하십니까?”

“그래도 바꿔보면 혹시 좀 낫지 않을까 해서요.”

 

왜 이런 생각이 드는가?

‘중독 현상’ 때문입니다.

바꾸고 싶은 욕망을 지나치게 채우다보면 중독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얼굴을 있는 대로 다 뜯어고쳤는데도 또 뜯어고치는 ‘성형중독’,

집안 가구 들여놓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또 바꾸는 ‘가구 바꾸기 중독’,

젊은 아이들은 ‘스마트폰 바꾸기 중독’ 등

새로운 것으로 바꾸지 않으면 몸이 아프고, 마음이 우울해지는 이런 상태.

지나치게 바꾸고 싶은 욕구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부산물입니다.

 

통념적으로 알콜중독이나 도박중독 같은 것은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금기시하고 죄악시하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바꾸고 싶은 욕망중독은

멀쩡하게 직장 다니고, 가정생활을 다 꾸려가기 때문에

문제는 있지만 심각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결말이 좋지 않아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바꾸기 중독에 걸린 사람들 중에는

신용불량자가 되어 사채까지 쓰는 바람에 파산하고, 이혼하고, 도망다니고,

심지어 자살하는 사람들까지 속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까지는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사회 부적응자가 될 가능성도 큽니다.

 

백화점에서 신상품을 파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돈만 생기면 새 물건을 사 대서 장사시켜주니 고맙긴 한데,

그런 사람들이 내 사위나 며느리 될까봐 겁난다,

새것으로 바꾸는 것이 본인에게는 일시적 쾌감을 갖게 해주지만,

대마초 연예인들처럼 결국 사회적 문제아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 그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다 바꿀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은 돈만 있으면 못 할 게 없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하는데,

사실 인생사 안에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는가하면

바꿀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바꿀 수 있는 것, 물건은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은 쉽사리 바꿀 수가 없습니다.

0세에서 7세 사이에 형성된 사람의 성격은

‘원형 불변의 법칙’에 의해서 쉽사리 바뀌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니다, 바꿀 수 있다, 개과천선도 하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세상을 보는 눈, 마음가짐은 바꿀 수 있어도 성격은 바꾸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청하러 오는 많은 분들이

남편 때문에 속상해요, 자식 때문에 힘들어요,

직장 상사 때문에, 부하 직원 때문에 등등

누구 때문에 힘들고 속상하다는 말을 염불 외듯이 외워댑니다.

 

왜 이렇게 바꿀 수 없는 것에 매달려서 속상해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미련해서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하고,

둘째는 유아적이고 이기적이라서 ‘세상 모든 것이 다 나를 행복하게 해줘야 해’

하는 생각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속상함과 미련함은 정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마을에 주민들 100%가 꼴통들인 곳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꼴통 짓을 하고 하느님 속을 썩이는지,

하느님께서 그 사람들을 어떻게든 바꿔보시려고

유명한 종교인들을 파견하셨습니다.

 

제일 먼저 산속에서 십년 수행한 고승을 보냈는데,

일주일이 안 되어서 하느님을 찾아와서는

“제가 절을 하나 만들고 불공을 드리는데,

마을 사람들이 절간 앞에 고기 집을 차려놓고 매일 구워 대서

견딜 수가 없어서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철야기도를 밥 먹듯이 하고, 명설교로 유명한 목사님이 파견되었는데,

또 일주일이 안 되어서 하느님을 찾아와서는,

“제가 교회를 하나 세우고 매일 철야기도를 하는데,

교회 앞에 술집을 세우고, 매일 밤마다 술이 취해서 고성방가를 해 대서

못 견디고 나왔습니다.”하더랍니다.

하느님께서 고민 고민하시는데 베드로 사도가 오더니,

“고민하지 마시고요. 성질이 개차반이라서 본당에 나가지 못하는 신부 놈을 보내시지요.”

그런데 개차반 신부가 그 동네에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꼴통 주민들이 하느님을 찾아와서는 하소연하기를,

“신부란 놈이 와서는 기도는 안하고, 매일같이 술에 고기를 먹어 대서

우리가 먹을 게 다 떨어진 데다,

밤이면 고성방가를 해대서 잠을 못 자겠으니 제발 데려가주십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개차반 신부를 불러 “꼴통들을 변화시키라고 보냈는데,

왜 사목은 안하고 맨날 술이나 퍼먹는 거냐?”

개차반 신부 왈, “아무리 봐도 저 꼴통들이 변할 사람들은 아닌 것 같고,

바꾸려고 하다가 제가 화병 날까 봐 그냥 제 인생이나 즐겁게 살려고 그런 것입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 “너야말로 딱 이곳 적임자니라.”하고는

정식 발령을 내시는 바람에

꼴통 주민들이 집단으로 화병이 나서 자리에 누웠다는 이야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여유만 생기면 바꾸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어른들은 혀를 차며 나무라십니다.

옛날 나이든 분들은 바꾸지 않고 참고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상 똑같이 변화 없이 사는 것도 문제입니다.

아무런 자극이 없어서 안주하거나 퇴행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바꾼다는 것은 기분전환이 되고,

삶에 자극을 주는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떠나라”하신 것,

예수께서 “이곳 말고 다른 곳으로도 가자.”하신 것은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 편하게 살려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식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꿀 수 있는 것은 힘닿는 데까지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그 존재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짜증날 때마다, 속상할 때마다 이 간단한 이치를 되새겨 보신다면

마음의 편안함을 가지실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 3

  • 2012년 2월 22일 오후 8:53

    간단한 이치가 차아~암 어렵습니다..쉬운 길로 go~

  • 2012년 2월 23일 오전 6:35

    제 너무 미련스러워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려고 하는군요..오늘부터는 편하게 고고~~~~~~

  • 2012년 2월 28일 오전 7:49

    감샤~~

│ 이 │이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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