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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리비아 가다피의 죽음을 놓고 이야기들이 분분합니다. 개죽음이라는 둥 천벌을 받았다는 둥...... 어쨌건 가다피의 최후를 보면서 죄짓고 살지는 말아야겠다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생전에 얼마나 잘 살았나 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1.자손의 수 2.조문객의 수 3.유산의 양 4.죽을 때 모양새
죽는다는 얘기만 들어도 펄쩍 뛰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사람이 평생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죽을 때 모양새를 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합니다.
신부들은 직책상 상갓집을 자주 가게 되는데, 초상집인지 잔칫집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조문객이 많고, 집안 분위기가 따뜻한 집을 가 보면 돌아가신 분의 얼굴이 잠자는 듯 곱고 편안한 것을 봅니다.
그러나 왠지 대문 입구에서부터 싸한 냄새가 도는 집안을 들어가면 사람도 별로 없고, 돌아가신 분도 험한 모습인 경우를 봅니다.
제가 기억하는 분 중에 가장 곱게 선종하신 분이 계십니다. 봉성체하러 찾아가면 늘 단정한 모습으로 맞아주시던 할머니. 당신 아픈 것보다 찾아온 손님 걱정을 더하시던 분이셨는데, 정말 주무시는 듯이 곱고 편안하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저희 동창 신부는 아주 좋지 않은 경험을 하였다고 합니다. 돌아가신 분이 어찌나 험하게 돌아가셨는지 가족들도 무서워서 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가, 그 신부가 가니 갑자기 등을 떠밀어서 방에 들여보내놓고 눈을 감겨 달라 하더랍니다. 할 수 없이 혼자 들어가서 눈을 감겨주었는데, 집에 돌아와서도 하도 무서워서 일주일 동안 잠도 못 잤답니다.
그래서 오늘 강론은 어떻게 하면 모양새 있게 죽을 것인가에 대하여 같이 생각해보는 시간 가질까 합니다. 사람이 모양새 있게 죽기 위해서는 오봉산, 다섯 봉우리, 인생의 다섯 단계를 잘 넘어야 한다고 합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불치병 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분으로 유명합니다. 이분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을 거쳐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그 과정에는 신체적, 생물학적 쇠퇴뿐만 아니라 심리상태의 변화도 포함된다고 하면서 그 과정을 다섯 가지 반응으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이것은 죽음뿐만 아니라, 전혀 생각지 못한 역경에 처했을 때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니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1. 부정과 격리 반응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의사의 오진이거나 실수라 생각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합니다. 이 부정이라는 반응은 갑작스런 충격에 대하여 하나의 완충 장치로 작용합니다. 죽음에 직면한 현실을 심리적으로 격리시켜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고, 죽음에 대한 고통을 덜 느끼게 하며, 부분적으로나마 죽음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터 줍니다.
2. 분노 반응
병세가 드러나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분노의 감정이 일어납니다. “왜 하필 나야”하면서 건강하게 살고 있는 주위 사람을 원망합니다. 이런 원망과 분노는 환자 자신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는 노력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협상, 타협 반응
자신에게 아무런 소득이 없으며 죽음을 모면할 길이 없음을 점차 인식합니다. 그러면서도 처리해야 할 일, 과업이 있으므로 그때까지만 살 수 있게 해달라 협상합니다. 제가 살게만 해주신다면 어떤 것이라도 주겠다고 어음을 남발합니다. 이때 협상 대상자는 하느님, 의사 혹은 질병 그 자체가 되기도 합니다.
4. 우울 반응
자신이 가진 것을 상실하는 것에 대하여 우울 반응이 나타납니다. 병으로 인하여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원통한 마음이 생기면서 동시에 수치심, 죄의식도 동반됩니다. 그래서 화를 내다가 우울해하면서 자기가 못해준 사람들을 불러서 용서를 청하기도 합니다. 이 우울 반응은 세상 애착을 끊어버려야 하는데 대한 슬픔을 미리 나타낸 것이라고 하며, 자신과 관련된 것들과 결별하는 데 필요한 점진적이고 자연스런 과정이라 합니다.
5. 마지막 반응 ‘수용’입니다.
지치고 허약해지면 결국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회복한 후 임종하게 되는데, 그래서 이 단계를 ‘최후의 성장기’라고 부르기도 하고, 오봉산 마지막 봉우리라고도 합니다. 이 단계까지 오신 분들은 임종 시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가기에 ‘선종’하였다고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천당 문을 지킨 지도 꽤 되었는지라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천당에는 한결같이 착하고 재미없고 고지식한 사람들만 들어오는지라 도대체 누구 하나 말 붙일 사람이 없어서, 천당 문 앞 의자에 걸터앉아 하품하다 졸다 하기를 이천년을 하다 보니 진력이 나서 죽을 지경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천당 문 앞이 시끌벅적해서 내다보니 얼굴이 피투성이, 멍투성이인 사람 몇 명이 서 있고, 저승사자가 그 사람들을 천당 안으로 들어가라고 등을 떠미는데, 도무지 고집들을 피우면서 자꾸 도망질을 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 왈 “딴 놈들은 천당에 들어가려고 저승사자 매수용 돈을 내놓거나 개구녕을 찾거나 월담을 하는데, 도대체 니들은 누구길래 그리 고집을 피우느냐?”하니 “저희는 시골 사는 사람들인데, 69번 버스를 타고 시내를 가려다 죽은 사람들입니다. 근디 하도 억울해서 이렇게 일찍 천당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뭐가 그리 억울하냐?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란 말이냐.”하니 젊은 총각이 나서더니, “저는 내일이 결혼인데 오늘 죽어서 총각귀신이 되었습니다.” 중년 아지매는 “저는 졸다가 한 정거장 더 가는 바람에 죽었시유.” 중년 아저씨, “버스가 가려는데 억지로 붙잡아 탔다가 죽었시유.” 치매 노인 “제가 제일 억울해유. 지는 택시를 탄 줄 알았는디 버스를 잘못 탔시유.” “그럼 너희 가족들이 너희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다시 세상에 돌려보낼 건지 여부를 결정하겠다. 내일 보자.”
그 다음날 베드로 사도가 네 사람을 보고 말하길, “총각, 너는 집안에서 반대하는 처녀와 결혼하려 했다고 식구들이 잘 뒤졌다 카든데. 아지매, 당신 남편이 그러는데 당신은 매일 밤새 화투치느라 피곤해서 졸다 죽은 거니 돌려보내지 말라는데. 중년 아저씨, 당신은 동네 이장 돈 떼먹고 야반도주하려다 죽었다고 잘 죽었다 하던디. 제일 나이 많은 어르신, 치매 때문에 아무 데나 똥오줌 싸대서 식구들이 힘들었는데, 돌아가시면서 버스회사 보상비 남겨주고 가서 고맙다고들 하는데 어떡하나. 근데 이제 보니 별 착하지들도 않은데. 저승사자,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저승사자가 머리를 긁적이며, “제가 근래 시력이 너무 안 좋아져서 96번 승객들을 데려와야 하는데 69번 버스 승객을 잘못 데려왔시유.”
베드로 사도가 “기왕에 천당 문 앞까지 데려왔으니 세상에 보낼 수도 없고, 지옥으로 보낼 수도 없으니 저승사자 네가 천당 옆에 조립식 건물 하나 지어놓고 쟤네들 데리고 살거라.”했는데, 밤마다 애고 애고 내 팔자야 하며 울어들 대서 천당 주민들이 ‘애절하게 통곡하는 집 -애통당’이라고 부른다는 야그.
임종을 맞이하시는 분들 중에 어떤 분은 못 만난 사람 다 만나시고, 용서 청하고, 화해하고, 가진 것 다 나누시고,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시는 분이 있는가하면, 어떤 분은 죽은 것이 억울해서 간병하는 사람들 괴롭히고, 주위 사람들 짜증나게 해서 죽었는데도 별로 서운하다는 생각도 안 들게 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들 합니다만,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 아니지요.
선종은 평생을 자기 삶을 다듬고 다듬어야 얻을 수 있다는 것. 인생의 다섯 단계 오봉산을 수없이 넘는 과정을 거쳐야만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
죽는 모양새 - 오봉산 - 도반 신부님
2012. 2. 22. 오후 7:2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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