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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답하십니다.
불교가 자비의 종교인데 비해 그리스도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개신교는 믿음을 강조하는 반면, 가톨릭교회는 사랑을 강조하는 경향이 더 큽니다.
그래서 강론이나 강의 때마다 가톨릭 종교인들은 입이 닳도록 사랑을 하라고 사랑 타령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 것인가 물으면 갑자기 막막해지고 부담스러워집니다. 왜냐하면 왠지 큰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강박적 생각이 떠올라서입니다. 우리가 사랑 실천에 대하여 부담을 느끼는 것은 매스컴의 영향이 큽니다.
인도 캘커타 마더 데레사 수녀님 이야기, 수단 ‘울지 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 이야기, 많은 이에게 알려진 큰 선행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가 하는 작은 사랑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종교적 열등감이 생겨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실제적 사랑 실천은 어떤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부담스러운 생각을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모두가 마더 데레사 수녀님처럼 빈민촌에 들어가 살 수도 없고, 이태석 신부처럼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할 수도 없습니다.
장독대에 큰 항아리와 작은 항아리 그리고 간장 종지가 있듯이 사람의 그릇, 가야 할 길이 다릅니다. 따라서 다른 분의 삶을 보고 위축되거나 자기비하를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은 어떤 것인가? ‘잔정 주기’입니다. 잔정이란 작은 크기의 사랑, 작은 정, 자질구레한 정 등등을 말하는데, 잔정은 크기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깊은 친밀감을 형성해주는 힘을 가진 것이 잔정입니다.
성경을 보면, 부활하신 후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하고 인사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또 부활을 믿지 않는 도마 사도를 보고 손을 내미시면서 “만져보고 믿어라.”하십니다. 호숫가에 나타나셔서는 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하시고는 빵을 집어주시고, 생선도 집어주셨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평범하고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이런 내용들이 길게 서술된 이유는 무엇일까? 주님께서 주시는 잔정을 받은 제자들이 너무나 마음이 벅차고 기쁜 나머지 길게 서술한 것입니다.
잔정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크게 하는 묘약입니다. 여러 신부들이 거쳐 간 본당신자들에게 어떤 신부가 가장 기억에 남고 그리운가 설문지를 돌렸더니, 강론 잘하는 신부도, 잘생긴 신부도, 능력 있는 신부도 아닌 잔정 많은 신부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부모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능력 있고 가진 것 많은 부모인데 자식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가정이 있는가하면 가난하고 평범한 가정인데 부모 자식 간이 화목한 가정이 있는 것은 바로 이 ‘잔정 효과’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정치인들이 평소에는 코빼기도 안 비치다가 선거 때가 가까워지면 자기가 잔정 많은 사람인 양 보이기 위해 재래시장이니 어디니 찾아다니면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악수하자고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럼 왜 우리는 잔정에 약한 것인가? 첫째, ‘칵테일파티 효과’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의 귀는 객관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하는 분들도 남들이 자기 얘기하는 것은 아무리 시끄러운 곳일지라도 귀신 같이 듣습니다.
왜 그런가? 뇌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효율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중요한 것, 자신과 관련된 것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하여는 일부러 들으려고 하지 않으며, 듣는다 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뇌를 ‘쩨쩨한 뇌’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뇌의 이런 특성 때문에 사람은 잔정에 약하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리 능력 있고 잘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한테 손길 한 번 내주고 밥 한 번 사 준 사람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란 것입니다. 이것이 ‘잔정 효과’입니다.
그러나 잔정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시중드는 궁녀를 바꾸라고 은밀한 지령을 내리셨습니다. 왜 그러시냐 묻자, 지금 시중드는 아이는 뭘 물어봐도 뚱하니 있고,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도 시큰둥해서 영 재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처자를 기도방지기로 보내고, 잔정 많은 아이를 보내라 명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심사숙고 끝에 천당 궁녀 중 잔정 많기로 소문난 궁녀를 하느님께 보내드렸는데, 한 달 쯤 있다가 하느님께서 다시 베드로 사도를 호출하셔서는 새로 온 아이가 잔정은 많은데 왠지 께름하다, 내가 밥을 먹을라치면 밥상머리 앞에 붙어서 눈물을 질질 짜기에 왜 그러냐 물으니, 하느님께서 오물오물 식사하시는 모습이 꼭 옛날 자기가 키우던 죽은 염소를 닮아서 눈물이 난다는 둥, 내가 더워서 옷을 가벼이 입고 바람 좀 쐴라 하면 옆에 와서 부채질을 해주는 것까지는 좋은데, 또 눈물을 짜기에 이번엔 또 뭐냐 물으니 하느님께서 더워서 헥헥거리시는 것을 보니 제가 키우던 개가 더위 먹던 모습이 생각나 슬퍼서 웁니다. 아니, 도대체 그년은 나를 하느님으로 안 보고 지가 키우던 개, 염소 같은 동물로 보고 노상 혀를 차며 눈물을 짜내니 아주 재수 똥이다. 그래서 그 궁녀는 결국 천당 동물원지기로 가고, 아직도 하느님 시중드는 궁녀가 공석이라는 소문.
많은 분들이 잔정을 주고받은 사람과 헤어지거나 키우던 애완동물과 사별할 때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합니다.
왜 그런가? 잔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심리적 핏줄, 혈관을 이어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굵은 핏줄이 아닌 가느다란 핏줄이 여러 가닥 생기게 하기 때문에 잔정을 주고받은 사람은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헤어짐의 아픔이 가슴이 찢어질 듯한 것입니다.
따라서 잔정은 절대로 작은 사랑이라고 치부해버릴 수 없는 아주 알토란같은 사랑 행위인 것입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작은 정 많이 나누셔서 언제나 모든 이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신앙인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는 한 주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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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정 - 도반 신부님
2012. 2. 22. 오후 7: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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