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신앙인이 되고 난 후 더 소심해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들 하십니다.
이것도 죄가 되고, 저것도 죄가 되고......
고백성사 안 보려고 이것저것 피하다 보니 자꾸 위축되고 소심해진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죄 지을 거 다 짓고, 나이 먹어서 힘 다 떨어지면
그때나 영세를 받겠다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세운 콘스탄티누스 황제도
나이를 많이 먹고 왕위에서 물러난 후에야 비로소 영세를 받았으니
사람 마음이야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본래 신앙생활은 신앙인을 대범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구약의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안주하지 말고 떠나라고 하신 것,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집을 떠나라고 하시고 마을에 파견 보내신 것 등등은
소심한 삶에 안주하지 말고, 넓은 시야를 가진 대범한 신앙인이 될 것을
무언 중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희 교우 분 중에 소심증이 있는 분들이 많다 하여
‘소심증’을 주제로 강론할까 합니다.
소심증의 특징은 실수. 실패한 기억만 선택적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합니다.
건망증이 심하지 않더라도 잘 잊어버리고 산다는 것인데,
잘 잊지 못하고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산다면 그것만큼 고역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웬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잊고 사는 것이 보통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소심증이 심한 사람들은 다른 건 다 잊으면서
실수한 것, 실패한 것만큼은 절대 잊지 못해서 힘겨워합니다.
심지어 심한 분들은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렸을 때 기억 때문에 소심하게 살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렇게 소심한 분들을 보면 주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신감을 가져라, 잘 할 수 있다, 괜찮을 거야 등등의 말로 격려해줍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실제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합니다.
실패한 기억이 많으면 중추 신경이 마이너스 방향으로 설정되고,
마음 안 전체를 패배 일색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음 안의 마이너스 모드를 플러스 모드로 바꿔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 기억 중에
괜찮은 기억, 성공했던 기억들을 많이 상상함으로써
당시의 감격과 감동에 도취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것을 ‘암시 효과’라고 하는데,
마이너스 암시가 패인이 되듯이
플러스 암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기충천케 해서
실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받은 표창장이나 상패들은
쓸데없는 것들이 아니라, 평생 자기 마음을 건강하게 해 줄 소중한 도구이기에
절대로 버리거나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소중하게 잘 간직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소심한 분들의 두 번째 특징은 모든 일을 너무 잘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무슨 일이든 잘하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은 실수하면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을 동반합니다.
그리고 그 기대 불안이 심리적인 균형을 흔들리게 만들어서
잘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아무 것도 못하는 결과를 낳곤 합니다.
이럴 때는 역설적 치료법을 써야 합니다.
대개 소심한 분들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가 지쳐서
아무 것도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역으로, 생각하기 전에 행동을 먼저 하고,
행동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하다못해 건더기는 못 먹을지라도 국물이라도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방법, 허풍 치는 연습, 큰소리치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이 큰소리를 치면 뻥쟁이, 허풍쟁이 하면서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男兒一言 重千金”인데,
그러나 소심증이 심한 분들은 허풍, 뻥, 큰소리치는 것이
소심증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허풍의 의미는 무엇인가?
럭비 선수가 공을 가지고 달려가는 상대 선수를 태클 걸려면
상대방의 허리를 겨냥하고 손을 뻗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머리를 잡으려고 해야 허리가 잡힌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허풍이란 높은 자기 기대감을 말합니다.
허풍을 치다 보면 왠지 그렇게 될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고,
가슴이 펴지고, 실제로 전부는 몰라도 절반 타작이라도 할 수 있기에
소심증이 있는 분들은 일부러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열두 사도가 너무 나이 먹어 일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셔서
열두 사도를 새로 뽑기로 하셨는데,
각 종파별로 골고루 뽑으라고 베드로 사도에게 분부를 내리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세 종파에서 네 사람씩 선발하여 사도로 임명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새 멤버들과 사도 회의를 하게 되셨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짜증이 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무슨 얘기를 하시면 네 사람은 “믿습니다. 믿습니다.” 외치고,
네 사람은 “다 하느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하는데,
나머지 네 사람은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하면서 궁시렁거리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신도 주일이 되어서
그날 미사 강론은 당신이 쉬시고 사도들이 대신하라 하시자,
네 사람은 “감사합니다. 알렐루야.”를 외치고,
네 사람은 “하느님 뜻대로 하소서.”하는데,
미운 털 박힌 네 사람은 누구는 몸이 안 좋아서 못하고,
누구는 그날이 자기 제사상 받는 날이라 못한다는 등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짜증이 폭발한 하느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저놈들은 도대체 어느 종파 놈들이냐?” 물으시자
“천주교인들입니다.”
“쟤들은 왜 저렇게 융통성 없고 소심하냐?”
“본당 신부들이 이것도 죄, 저것도 죄,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하면서
하도 들볶아 대서 통이 컸던 사람도 천주교인만 되면 소심증 환자가 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천당 사도 모임에
천주교인은 아예 후보 등록도 못한다는 슬픈 이야기.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열두 제자는 아주 소심해져서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제자들 앞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하신 첫 번째 말씀은
야단치심이 아니라, 평화의 인사였습니다.
죄책감 갖지 말고 주눅 들지 말고 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격려로 소심증을 치유 받은 제자들은
팔레스티나 지역은 물론, 먼 이국 땅 인도에까지 가서
복음 말씀을 전하는 대범한 사도들로 거듭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대범한 사도들이 이룩한 교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꾸 작아지는 느낌이 든다는 분들은 길을 잘못 드신 것이니,
사도들의 삶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보시고 대범한 신앙인의 삶 사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