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중에는 얌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얌체 같은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요?
자기 건 안 쓰고, 남의 것 다 빼서 쓰려는 사람,
담배 하나 빌려줘 하고 없다고 하면 자기 담배 빼서 피우는 사람,
돈 빌려 갈 때는 손발이 닳도록 부탁하다가 갚으라고 하면 오리발 내미는 사람......
왜 이런 얌체족이 생기는가?
얌체족이 존재하는 것은 얌체 짓이 통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얌체들에게 늘 당하고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멍청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인가?
아닙니다. 저학력, 고학력, 머리의 좋고 나쁨이 문제가 아니라,
주로 착하고 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
남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사람들, 거절하고는 힘들어하는 사람들,
들어줄 걸 괜히 거절했어하고 후회하는 사람들,
소위 착한 사람들이 주로 잘 걸려듭니다.
얌체들은 사람들의 착하고 어진 면을 악용하여
미안감 심지어 죄책감까지 유발시키는 잔재주를 부리는 것입니다.
"너하고 나하고 남이가.“
”그거 하나만 해 주면 평생 은혜 안 잊을게.“
”곱게 쓰고 돌려줄게.“
”내가 너무 급해서 그래.“ ”
날 못 믿어? 어찌 그럴 수 있니?“라고 이렇게 어진 면을 건드려 놓고
들어주지 않으면 ”배신자“니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종 쳤다.“느니 하면서
심각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래서 착하고 어진 사람들이 속병 드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분들을 위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싫은 부탁, 거북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병’이라고 합니다.
속칭 ‘거절 불능증’, ‘미안 과잉증’이라고 하는데,
이런 증세는 사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쓸데없는 죄의식’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죄책감이 필요합니다.
죄책감은 감정과 지성 양쪽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이것이 없으면 내적인 성장이나 인생에서의 성공을 기약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모든 죄의식이 다 유용한 것이냐 하면 그렇지가 않습니다.
밭에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듯,
우리 마음 안에도 건강한 죄의식과 병적인 죄의식이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따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병적인 죄의식은 사람이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닌데도
당사자가 그 일을 실제로 저지른 듯이 죄의식을 느끼게 합니다.
또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마치 자기 내부의 모든 증오와 복수를
행동에 옮기기라도 한 듯이 죄의식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죄의식에 물들게 해서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인생을 살게 합니다.
이런 죄의식은 남달리 착하고 어질게,
고상하고 품위 있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천당에도 불황이 닥치자 크고 작은 생계형 범죄가 생겨나서
하느님께서 골머리를 앓으시게 되었습니다.
특히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다가 천당에 들어온 것이 아닌,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어거지로 천당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들이
예전 버릇을 못 고치고 다시 도둑님은 도둑질을, 사기꾼은 사기질을 시작하자,
천당 인심이 나날이 흉흉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미 천당에 들어온 자들을 다시 내쫓을 수는 없고,
고민 고민하던 하느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천당에도 구치소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구치소가 생기자마자 범죄자가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남의 집 계란 훔치다 걸린 놈부터
천당 문 앞에서 신참자들에게 천당 아파트 가짜 분양권 팔려고 사기 친 놈까지......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께서 그래도 미워도 내 새끼들인데 하는 심정으로
천당 교도소를 순시하게 되었는데,
하느님을 보자마자 죄수들이 “주여, 주여, 믿습니다.”라고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는데
유독 감방 한 군데는 조용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들여다보시니 다들 조용히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기에
베드로 사도에게 “얘들은 누구냐?” 물으시니 “천주교인들입니다.”
“죄목이 뭐냐?” “경제 사범들입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죄를 지었냐?“
"친구 보증 잘못 서 주거나, 빚 보증 잘못 서 줘서 뒤집어쓰고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번엔 천주교인들에게 직접 물으셨습니다.
“아니, 거절하지 왜 보증은 서 주었느냐?”
“본당 신부님께서 남의 청을 거절하는 것은 신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해서 그랬습니다.”
“아니, 그럼 너희들이 보증 잘못 서서 이렇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하더냐?”
“강론거리가 바닥나서 그냥 그렇다는 얘기를 한 것뿐인데,
그걸 진짜 했냐 하면서 멍청이들이라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래, 지금 너희 마음이 어떠냐? 분하지도 않으냐?”
“저 하나 희생해서 친구가 행복하다면 뭐가 분한 일이 있겠습니까? 다 제 팔자지요.”
그러자 하느님께서 “얘들이 다 미친 것 같으니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그 본당 신부 놈은 오늘 밤 뒈지게 만들어서 여기 가둬 두도록 하여라.”
병적인 죄의식은 잘못된 양육에서 비롯된
지나치게 예민하고 병적인 양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특히 어떤 행동에 대하여 심한 꾸중과 질책을 들은 아이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그리 잘못되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마저
심하게 죄의식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 후에도 최선을 다해서 한 선행에 대하여 남들이 뒤에서 비난하면
‘내가 그 일을 왜 했을까?’하는 자기비난과 쓸데없는 죄의식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내가 처음 가졌던 의도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선한 의지로 한 것이라 판단이 서면
덕망 있는 사람을 찾아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릴 필요 없이 그런 것들을 던져버 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내가 싫어하는 부탁을 들었을 때는
‘싫다’라고 분명히 얘기하는 훈련을 해야 하고,
그게 정 부담스러우면 즉시 응하지 마시고,
“생각해 볼게.”하고 시간 여유를 가지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그러지 못하고 싫은 부탁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면
막장 인생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