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이에게

2010. 12. 13. 오전 2:25:54

글자

정은이에게 이렇게 글 쓰려고 그랬던가, 그제, 문득 '달빛좇는 사람', 중에서도 그 황당한 그림이 보고 싶어서 책장을 뒤져 꺼냈다. 생각나니, 한 손엔 지붕과 연결된 줄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달을 향해 줄을 뿌려 길을 만들며 걷는 그 그림 말이야. 노란달이 구름뒤에서 어스름 빛나고,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성큼걷고 있는 뒷모습의 그 녀석, 하도 비현실적이라 오히려 정말로 말이 되는 그 그림 말이야.

그것 드려다보면서 정은이 어째 이리 오래 못보고 지낼까, 뭐하고 있나, 사람 사는 일이 왜 이리 아슴아슴 아린가 몰라, 그렇게 궁시렁거렸는데, 지금 자리에 누웠다가 영 잠이 안 와 에이- 다시 일어나서 카페 열어보니, 아이구 요술처럼 정은이가 다녀갔네, 지도 나처럼 같은 생각하였는가, 아마 지도 나처럼 같은 말로 궁시렁 거렸을지도 모르겠네-

삼삼오오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들, 이제는 좀 작아진 낡은 옷가지들, 뭐라고 휘적거려놓은 묵은 노트들, 누군가 보내온 엽서와 어딜 가려고 오려둔 여행정보들, 세아이 아범이 된 큰녀석이 열살때 쓴 어머니를 사랑해 붓글씨, 그 옆에 놓인 구리로 만든 장난감 세발자전거, 이런 모든 손때 묻은 것들이 죄다 시린 송곳이 되어 내 여기저기를 아프게 한다, 차마 손대기도 시리고 들추어 보기도 시리다. 한해가 저물어가 그런가, 나이들어 그런가, 영감 아들 없이 혼자 쓸쓸해 그런가, 청승살이 붙으려고 그런가- 그러다가 후루룩 한숨 쉬다간 웃는다, 

지나가는 건 다 아름답다 했던가, 아름다운 건 으례 슬픔이 되는 거고, 모든 사람이 다 느끼는 그 당연한 것을 나도 느끼고 있는 거다.  울먹울먹한 편안함- 이런 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세밑의 우리모두 마음 아닐까- 그리고 그게 지금 내 상태고 그간의 소식을 줄인거다.  올해 연극을 극장에서 세편, 그리고 구치소찾아다니면서 10번을 했지만 원형탈모만 생겼다. 곱씹고 따지면 불평하고 변명할 말이 많지만 그저 흘려보내기로 한다. 못뜨는 배우로 또 일년이 지난다. 못뜨는건 할 수 없는데 자긍심이 꺽이는 건 그렇다. 이 산이 아닌가벼- 이런 불신도 그렇고, '개뿔이나 뭐 한다고 서울서 혼자 그러고 있니' 하는 내 천적의 말에 대꾸 얼른 안나가는 것도 그렇고, 그렇다. 같은 회의를 반복하는 것도 또한 그렇다. 임에도 불구하고 난 할꺼야- 하고 다시 뛰어나갈 수 있을까

정은아. 반가웠다, 오죽하면 이 밤중에 이리 말을 많이 하고 앉았겠니. 어떻게 미국살림 할 만하니, 아들들은 적응 잘 하고 있어, 친구는 만들었니, 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 성당은 다녀, 무슨 책 읽니, 거기 한국책방있니, 옷은 어떻게 입고 다니니, 기도는 하니, 헤어스타일은, 지갑만드는 기술 썩히지 마라, 운전하고 다니니, 한국그로서리 근처에 있니, 신학원다니던 노트들 어쨋니, 요즘 무슨 생각하니, 뭐가 제일 먹고 싶니. 이 모든 질문에 대답할 것!

잘 지내, 가끔이라도 이렇게 소식 나누자. 아주 가끔이라도 괜찮아.               

댓글 1

  • 2010년 12월 13일 오후 11:21

    울먹울먹한 편안함,그거 나쁜 거 아니었음 좋겠어요 내 보기엔 아름다운 거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