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모습이 궁금하다

2010. 12. 6. 오전 8:3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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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뒷모습이 궁금하다

[중앙일보] 입력 2010.12.04 00:12 / 수정 2010.12.04 19:49
 
# “좌선하고 있는 사람의 등을 보면 그 사람이 지닌 역량의 정도를
잘 가늠할 수 있지. 뒷모습이 충실한 사람이 그야말로 제대로 된 인간이야.
무대배우든 누구든 명배우라 불리는 사람들은 모두 뒷모습이 충실하지.
뒷모습이란 자신은 의식할 수 없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마련이거든. 얼굴로나 말로는 속일 수 있어도 뒷모습은
속일 수가 없지.”
일본의 서예가이자 시인인 아이다 미쓰오(相田みつを, 1924~91)가
그의 노스승 다케이 데쓰오(武井哲應)에게 들어 마음에 새기고 새긴 말이다.

 #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지휘자는 일단 연주에 임하면 청중을 향해
항상 뒷모습을 보인다. 물론 콘서트홀의 합창석에 앉으면 지휘자의
앞모습을 자연스레 보게 될 터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 음악을
듣는 것이기보다는 그냥 구경하는 것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른다.
사실 언뜻 보면 얼굴 표정조차 볼 수 없어 무미건조해 보이는
지휘자의 뒷모습에서 우리는 때로 적잖은 감동을 받는다.
 
얼마 전 내한공연을 펼쳤던 로열 콘세르트헤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약간 등이 굽어 보이는
그의 뒷모습은 그만의 예술적 고뇌, 삶에 대한 겸허함, 소리에 대한
집중력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뒷모습은 진정한 최고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웅변해 줬다.

 # 안 보이는 것 같고 감추어진 듯하지만 뒷모습은
너무나 많은 진실을 담고 있고 또 드러낸다. 뒷모습이야말로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미셸 투르니에는
그의 오래된 친구 에두아르 부바가 찍은 쉰석 장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에
덧붙인 글을 이렇게 시작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
뒤쪽이 진실이다.” 그렇다. 뒷모습은 속일 수 없다. 치장하고
덧칠하는 앞모습과 달리 뒷모습은 정직하다.

 # 북의 연평도 도발이 있은 후 우리의 앞모습은 북을 응징하겠다는
결의에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의 뒷모습은 어떤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뒷모습에 관한 한 예외 없이 무장해제 상태다.
여전히 국회에서는 4대 강 사업을 둘러싸고 또 다시 몸싸움을 벌이고 있고
국정원은 뒤늦게 지난 8월 북의 도발징후가 포착됐는데
군이 대응하지 않았다는 식의 책임회피성 정보나 흘리고 있다.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지, 스스로 책임질 일은 무엇인지를
곰곰이 따지는 것이 아니라 하던 버릇대로 시비하고 남 탓만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북은 우리의 그런 뒷모습을 보고 있다.
그래서 우습게 보는 게다.

 
 # 뒷모습은 과거가 아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기 미래가 있다.
등 굽은 아버지의 뒷모습 속에 어깨 핀 아들의 창창한 미래가 담겨지듯이…. 오늘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올해 일흔네 살의
현역 국악인 황병기 선생의 창작인생 반세기를 기리는 헌정공연이 펼쳐진다. 특히 록밴드 ‘어어부 프로젝트’가 지난 1975년에 초연된 황병기의 문제작
‘미궁’을 재해석한 공연을 선보인다고 한다.
한평생 외길로 창작농사를 지어온 황병기 선생의 뒷모습에
젊은 음악인들의 미래가 오버랩 돼 멋진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정직한 뒷모습은 항상 긴 여운을 남기기 마련이다.

 # 12월이다. 연말이 되면 으레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거울 앞에 서면 앞모습만 보인다.
나의 뒷모습은 여간해선 내 스스로 보기 어렵다.
하지만 봐야 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앞모습만이 아니라
미처 눈 주지 못했던 뒷모습을 살피자. 격동의 2010년도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송년모임이다, 망년회다 흥청거리다 세월
다 보내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적어도
자신의 뒷모습이 추하진 않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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