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진가 베르트랑의 『하늘에서 본 한국』

2010. 11. 7. 오전 7: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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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Global] “해낸다는 의지, 그게 한국 땅 표정이죠”

[중앙일보] 입력 2010.11.06 02:00 / 수정 2010.11.06 02:00

프랑스 사진가 베르트랑의 『하늘에서 본 한국』
G20 정상회의 기념 선물로도 검토

그의 사진을 본 유럽의 지식인들은 ‘신의 시선’이 느껴진다고 했다. 1999년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400만 부 가까이 판매된 사진집 『하늘에서 본 지구』의 사진들에는 영적 분위기가 감돈다고 이렇게 헌사를 바친 것이다. 항공사진 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64)의 사진들로 엮은 이 책은 지구촌 160여 국가의 하늘에서 바라본 지구의 초상을 담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형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환경 보호의 가치를 역설한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프랑스 최고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 예술아카데미에 입성했다. 얀은 한국의 산천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2004~2008년 10여 차례 한국을 오가며 찍은 2만 장의 사진 가운데 160장을 선별해 『하늘에서 본 지구』의 한국판인 『하늘에서 본 한국』(2008, 새물결 출판사)을 펴냈다.

 그의 시선에 들어온 우리의 산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은 이 책의 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얀이 찍은 숭례문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것이 불타 없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 600년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주었기 때문이 아니다. 자동차 물결 사이에 외로운 섬처럼 남아 있던 숭례문도 고공의 카메라 시점에 잡히면 갑자기 어깨를 펴고 거인처럼 일어선다….

 얀의 가슴을 통해 하늘 위에서 보면 불탄 숭례문이 보인다. 판문점을 찍고 금강산도 찍었으니 생텍쥐페리가 지상의 별이라고 부르던 도시의 불빛조차 없는 칠흑 같은 북한 땅도 찍었으면…. 군사용 인공위성에서는 못 찍는 영혼의 렌즈로 감춰진 사랑과 자유와 평등을 볼 수 있도록.”

 이 사진집은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의 기념선물로 검토되고 있다. ‘하늘에서 본 지구 홍콩 사진전’ 행사로 홍콩을 찾은 얀을 지난달 19일 단독 인터뷰했다.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사진=Erwan Sourget
● 사진집이 한국을 찾는 G20 정상 선물로도 검토되고 있다.

 “영광이다. 세 차례 비무장지대(DMZ) 일대를 비행하며 촬영했는데 출판사(새물결)와 유엔군사정전위원회, 한국 국방부·산림청·해양경찰청, 일선 부대 병사들까지 많은 분이 진심으로 도와주셨다. 내가 DMZ 위를 날았던 첫 사진작가라고 한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렵다는 걸 잘 안다. 작업을 가능하게 해준 분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스스로 최고를 원했고 최선을 다해 찍었다. 사진집이 서울 G20 정상회의 선물로 채택된다면 그분들이 작은 보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G20 정상들이 책을 통해 한국의 표정을 만나길 기대한다.”

● 한국의 표정은 어떤가.

 “한국은 특별하다. 크지 않은 땅에 너무 많은 표정을 담고 있다. 천(千)의 얼굴 같다. 이 많은 표정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동성이다. 60년 전에 큰 전쟁이 있었던 땅이다. 사진집을 한번 보라. 그런 흔적이 어디에 있나.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해냈다. 한국 사람들의 표정이 땅 위의 건축물, 산등성이, 섬, 강변에 그대로 투영된다. 정말 해내야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보인다. 그게 한국의 표정이다. 하늘에서 보면 그런 게 눈에 확 들어온다.”

● G20 정상들에게 각별히 선보이고 싶은 사진이 있다면.

 “나는 지구를 찍는다. 지금까지 160개가 넘는 나라를 찍었는데 사람들은 자기 나라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면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지구를 찍는 게 내 일이고 아름다움 자체는 주관적이라 일일이 답변하지 않는다. 정상들마다 좋아하는 사진이 다를 것이다. 다만 이 사진집 표지 사진으로 쓴 전남 평일도의 다시마 말리는 어부들 모습은 좀 독특하니까 눈길을 끌 것 같다. 그 사진 찍을 때 정말 놀랐다.”

● 뜻밖이었다는 말인가.

 “아주 그래픽적이었고 놀라운 장면이었다. 이 사진을 찍을 때 너무 놀라 열 번도 넘게 헬기를 돌렸다. 헬기 조종사도 내가 왜 그런 주문을 했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았을 것이다. 색채나 구도감이 한눈에 사람을 빨아들이는 강렬함 그 자체였다. 항공사진을 찍을 땐 항상 그래픽 감각을 살려야 한다. 평일도 사진은 화가가 붓질한 것처럼 느껴졌고 색감이 독특해 흠뻑 빠졌었다.”

● 색색의 그물들 사진이 칸딘스키의 그림 같던데.

 “바로 그거다. 그런 장면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 놀랐었고 기뻤다. 한 시간 넘게 돌면서 수백 장도 넘게 찍었다. 내 일은 땅 위에서 그래픽적인 감성이 와 닿는 그런 곳을 찾아 카메라에 담는 일인데 허탕치는 때가 훨씬 더 많다. 바람, 햇빛, 사진을 찍을 때의 고도 등 많은 요소가 한 장의 사진을 위해 한 줄로 정렬한다고 할까. 그럴 때 메시지를 송출하는 사진이 나온다.”

● DMZ 사진에선 메시지가 많았을 것 같은데.

 “아, DMZ. 한국사람들 참 DMZ에 집착한다. 한국사람들은 내가 거기를 가보고 찍기를 원한다. 이해할 수 있다. 분단국인 한국을 상징하는 곳이니까. 한국사람들 참 민족성이 강하다. 국수주의적이랄까. 자기 나라의 산천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글로벌해진 세상에서 내겐 그게 감동적이었다. 나라가 분단되다 보니 자기 나라에 대한 애착, 사랑이 더 큰 거 아닌가. 산천에 대한 무지막지한 자긍심 같은 게 있었다. 그게 나를 움직였다.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나는 스틸 사진은 접고 영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환경운동가다. 지구의 모습을 찍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그들 삶을 변화시키는 운동가다. DMZ는 나에게 잘 보존된 자연생태계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 DMZ 상공에서 북한을 본 첫 번째 민간인이다.

 “기회가 되면 북한도 찍어야겠다는 열망이 생겼다. 그곳도 지구의 일부분이고 우리가 지키고 가꿔야 할 생태공간 아닌가.”

● 항공사진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어떤 나라에서 항공사진을 찍어보면 사람들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뭘 먹고 사는지 주요 산업은 어떤지 다 드러난다.

 항공사진은 일상적인 시선에서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드러낸다. 이 사진집을 통해 그 나라 사람들이 자기의 산천을 사랑하고 감사하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볼 땐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행복할 것 같은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사전 작업 때 많은 분으로부터 조언을 듣는다.”

● 사진이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던데 촬영할 때 어디에 초점을 두나.

 “내 사진에선 강렬한 색채, 그래픽적 감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보여질 뿐 절대 추상적이지는 않다. 내 작업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 예술적 감성보다 현실적 메시지를 추구한다는 말씀인가.

 “논문을 쓰기 위해 케냐의 사자 생태를 관찰하다 이 길로 들어섰다. 내 사진은 과학적인 성격이 강하다. 뭔가 설명해야 한다. 나는 절대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진을 통해 뭔가를 말하려는 사람에 가깝다. 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사진은 한다. 사진은 나의 언어일 뿐이다.”

● 그 언어로 어떤 말을 하나.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은 양심을 움직이기 위해서다. 지금과 같이 인류가 살면 안 된다. 이런 생활방식은 계속될 수 없다. 대중의 양심에 자극을 줘 그들의 양심을 움직이는 게 내가 사진을 찍는 이유다. 요즘은 더 강도 높게 자극을 주기 위해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영화 ‘홈(Home)’ 이후 지구의 생태를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이 50개국에서 전파를 타고 있다.”

● 어떻게 환경운동가가 됐나.

 “젊었을 때 프랑스 중부의 자연보호구역에서 책임자로 일했다. 자연생태에 관심이 커지면서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케냐로 건너가 3년 동안 사자 가족을 찍으면서 사자에 관한 학위논문을 준비했다. 이 경험이 나의 인생을 바꿨다. 사자를 관찰하다 보니 생명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가벼운 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됐다. 1983년 프랑스에 돌아와 완성한 ‘사자’ 책은 학위논문이 아니라 사진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진의 길에 들어선 뒤 1995년 ‘하늘에서 본 지구’를 찍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전엔 환경문제에 관심은 있었지만 환경운동가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이 작업이 내 삶을 바꿨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지구의 자연이 훨씬 아름다웠고 인간이 지구에 저지른 일들의 결과를 봤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20억 명 정도였던 인구가 내년엔 70억 명이 된다고 한다. 아버지 때와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고 있고 우리의 일상은 지구의 생명에 영향을 끼친다.

● 환경운동을 하면서 어떤 영감을 받았나.

 “NGO에서 활동하는 운동가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작은 급료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타인을 돕는 인생을 살고 있다. ‘참여(앙가주망)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구나’하고 뭔가 깨달음이 생겼다. 지금도 지구상의 15억 인구가 먹고사는 그 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 흙을 파서 일한다. 가장 원초적인 도구인 손을 써서 일하는데 이들에게 단 하나의 꿈이 있다면 그저 먹고사는 일이다. 기후변화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이 15억 명이다. 중요한 건 이 사실에 대해 죄의식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모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 참여를 위해 하늘로 올라갔나.

 “헬기를 타고 올라가서 내 인생이 덜 바보가 된 것이다. 나의 일은 여론을 설득하는 것이다. 정치인을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 시민이 세상을 바꾼다.”

● 하늘에서 보면 누구나 문명비판론자가 되나.

 “바보가 아니라면…(웃음). 항공사진은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는 도구다. 설명의 방식이 다른 것이다. 뒤로 물러서서 보게 해 준다.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양심의 자각을 일깨우는 게 내 작업의 목표다. 그런 게 환경운동의 사상이다. 그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나 각자의 영역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제공하고 있는 자연을 위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게 중요하다. 환경운동에서 영웅은 없다. 인류는 엄청난 지적 능력으로 자연을 정복해 왔다. ‘집단 부인’이라는 말이 있다. 대중은 자연이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슬픈 일이다. 영적 혁명이 필요하다. 각자가 우리의 삶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각자가 지금의 지구 상태에 대해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그게 혁명이다. 그래서 ‘홈’ 영화도 누구나 쉽게 보고 느꼈으면 해서 무료로 배포했다.”

● 영화의 피드백은 어떤가.

 “지난해 중국에서 중국중앙방송(CC-TV)을 통해 2억 명이 시청했다. 중국 영화배우 저우쉰(周迅)이 한국에서 이 영화를 본 뒤 DVD를 사 가지고 돌아가 자비로 더빙하고 CC-TV에 접촉했다. 지난해 7월 중국 전역에 방영됐다. 기적 같은 일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눔을 통한 나의 환경운동이 이렇게 각본 없는 드라마가 됐다. 이 일은 내가 한 게 아니다. 저우쉰이 했다. 또 한국의 초·중·고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며 토론 교재로 쓰기도 한다. 영화가 촉매가 된다. 굳어 있는 우리의 양심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 j 칵테일 >>

육상에선 경고포 … 초긴장 DMZ 촬영


“이렇게 긴 인공적인 경계선은 보지 못했습니다. DMZ에서 신기했던 것은 (전쟁의 긴장 같은 게 아니라)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떤 움직임도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얀 아르튀스 베르트랑).”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얀의 횡단비행은 대한민국 국군 창군 이래 첫 비행이었다. 동서 248㎞에 걸친 DMZ의 남방한계선을 따라 이뤄진 촬영은 수많은 군사적 제약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이뤄졌다. 군의 선도헬기를 따라 비행하는 촬영헬기는 일정 고도 이상 상승할 수 없었고, 기수도 북한 쪽으로 향할 수 없어 조종사들은 그야말로 초긴장 상태에서 비행해야 했다. 자유비행이 안 돼 답답해 하던 얀의 거듭된 요청으로 헬기가 약간 북쪽으로 향할라치면 지상에서 경고포가 터지는 등 손에 땀을 쥐는 일정이었다고 한다. 위 사진은 강원도 철원군의 옛 노동당사.

>> 촬영 3개월 뒤에 불탄 숭례문

 
얀이 감탄을 연발했던 전남 완도군 평일도는 다시마 양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촬영 당시 어민들은 다시마를 말리기 위해 땅바닥에 굵은 그물을 깔고 그 위에 가는 그물을 까는데 이 그물들과 다시마가 연출하는 빛깔의 조화가 칸딘스키의 작품이 연상될 정도로 다채로운 그래픽으로 나타난 것이다. 2007년 11월 촬영한 숭례문 사진은 먼 길을 떠나기에 앞서 찍은 작별 사진 같다. 숭례문은 얀의 카메라에 담기고 나서 3개월 뒤 불타 사라졌다. ‘숭례문이 저렇게 늠름했었나’. 보는 이들은 한 번쯤 이런 생각을 가질 만한 항공 사진이다. 숭례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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