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우리는 모두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입니다.
그러니 베드로나 예루살렘 신자들보다 코르넬리우스의 처지에서
다음 얘기를 이해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헌혈을 하러 갔더니 어떤 지역에 살았다고 “영구 배제”랍니다.
‘영구 배제’, 그 표현이 너무 강해서 5년이 지났는데도 잊히지 않습니다.
유다인과 이방인의 관계에서 이방인의 위치가 바로 ‘영구 배제’였습니다.
우리는 본디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식사라도 하면 부정을 타게 될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도 유다인이었고, 그래서 이방인의 집에는 가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처음에는 사도들을 비롯한 유다인들이
‘영구 배제’ 대상이던 우리 이방인들을 초기 교회 공동체 안에
어렵사리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환시에서 본 짐승들을 잡아먹지 않으려 했다는 것은,
이방인들을 공동체에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인간적 저항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런 장벽을 무너뜨리십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15).
양들의 목자이며 문이신 예수님께서는 양들이
모두 그 안으로 들어와 생명을 얻어 누리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모두가 ‘영구 배제’였다가 교회에 받아들여진 이방인들임을 생각하며,
교회와 교회 안의 모든 공동체는 상대방을 사려 깊게 받아들임으로써
사람들 사이의 분열과 배척을 극복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드러내는 도구 역할을 해야 하겠습니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그분이
누구인지 알 뿐 아니라, 그분 말씀의 의미를 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을 따라나서서
그 말씀을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새롭게 시작되고,
그 덤으로 평화를 넘치게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출처 매일 미사-
♬ 사랑의 목자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