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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은 생활과 친숙하다.
명절과 애경사 때마다 술을 빚는 재료이자 이스라엘의
주식인 빵의 반죽에 필요한 식자재로, 예수님의 비유에 종종 등장한다.
누룩은 한 주먹만으로도 밀가루 서 말을 발효시키는 힘이 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누룩이란 그릇된 이념과 세계관이다.
바리사이들의 왜곡된 종교관과 헤로데의 타락한 국가관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당대 주류 세력의 중심이었다.
중앙 예루살렘의 결정권과 지배권을 가진 그들은 갈릴래아 변방의
민초들을 율법과 실정법으로 묶어 놓고 자신들의 이념을 세뇌시켰다.
지배 방식에는 강제와 압박의 채찍보다 당근의 회유와 세뇌가
자발성을 도모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 결과를 보라! 식민 지배와
독재 시대의 민중에게는 지조와 저항의 힘이 있었지만,
돈맛과 고기 맛에 전 자유 민주주의 시민들에게는 경제와 이기적
편견이 만연할 뿐이다. 경제가 모든 삶의 중심에 서 버린 것이다.
국민은 경제를 살려 줄 자를 우상처럼 떠받들며 그들의
기만에도 상관치 않는다. 국가는 금융 선진국을 추종한다.
그럴수록 정신세계는 타락하고 채무는 헤어날 길이 없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고’
대응하는 길은 누룩보다 더 강렬한 유익 균을 투입하는 것이다.
요한 묵시록은 ‘두루마기를 빠는 순교의 피’(7,14 참조)로 비유한다.
교회는 경제 발전의 꿈이 악령의 망상임을 폭로할 의무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심각성을 보시고 문제의 핵심을 지적하시는데,
제자들은 경제와 빵 수준에 매인 나머지
‘쇠귀에 경 읽기’가 되어 버렸다. 어쩔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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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잃을 줄 알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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