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셨다.

2015. 2. 13. 오전 4:5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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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보지 못하는 것과 듣지 못하는 것 중에 어떤 고통이 더 클까? 소외감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하심으로써 소통시켜 주셨다. 이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고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쁠까. 그것이 구원이다. 우리는 청력은 좋은데 청각 장애인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 주기보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것이다. 미움으로 말미암아 목소리만 들어도 짜증스러운 이도 있고, 불이익을 당할까 싶어 말 못하는 경우도 많다. 전철이나 식당, 심지어 수업 시간까지 휴대 전화에 빠져 있다. 모두 청각 장애인이요 언어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셈이다. 영화나 청소년들의 말에는 외설적이고 폭력적 욕설이 너무 많아 민망스럽다. ‘에파타!’는 진흙에 숨을 불어넣으신 창조를 떠올리게 한다. 소통이 생명인 것이다. 학교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대화법에 대해서는 한 과목도 가르치지 않는다. 귀가 있고 입이 있으니 당연히 듣고 말할 수 있다고만 여길 뿐, 대화에도 기술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투고 갈등하며 상처 받고 원수가 되는 출발점에는 꼭 대화의 충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언어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언이인격’(言而人格)이라는 말도 있다. 말에 인격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평화의 대화는 첫째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겸손한 태도가 바탕이 되는 것이다. 경어와 품위 있는 표현이 교양이다. 둘째는 내 말이 중심이 아니고 먼저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셋째는 ‘내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원칙만 따르면 대화가 감정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을 것이다. 대화의 목적은 통교와 공감에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출처 매일 미사-




♬ 그대 마음을 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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