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5.10)

2009. 5. 12. 오전 9:10:27

글자
 

일요 관상기도 시간에 수사님께서「영(靈)과 진리(眞理)」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영과 진리로 알아들으면 영(靈)이 조용해진다.

생활 안에서 어떤 영적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조용히 사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용히 산다는 것은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살라는 것이 아니다.

진리로 영이 열려야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가 된다.

죽음과 부활이 진리이며 그 진리를 알아들으면 영이 열리는 것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죽음의 영과 부활의 영을 모르면 다른 영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활발하게 부활의 영을 노래하려면 한 가운데는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한 가운데는 죽음이다. 여러분은 한 가운데 죽음은 원하지 않고 기쁜 부활만 원한다.

신약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였다.


누가 나를 돈이 없다고 무시할 때 속이 새까맣게 되고,

얄미운 사람을 생각만 해도 잠도 오지 않고 힘든 것이 죽음, 어두움이다.

이 어두움을 통과해서 가는 것이 하느님께 이르는 죽음의 문(門)이다.

부활로 가야 되겠다는 생각보다 주여! 이 환난을 거두어 주옵소서! 만 한다.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 참 기쁨, 부활로 가는 길이니 하느님은 생활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앞으로 그 어두운 문이 절벽처럼 내 앞에 나타날 때가 있을까? 없을까?

절벽처럼 나타나므로 관상기도를 해야 한다. 어두움을 안고 앉아 있는 것이 관상기도이다.

관상기도는 나비, 꽃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다음이야기이다.

결정적으로 필요할 때 관상기도를 하지 않고 피하는 기도만 하는 것은 오히려 병이 된다.

그 어두움을 통과하면 “늪지대를 통과 했네!” 한다.

모르는 사람은 앞에 놓고서 발버둥을 친다. 오히려 발버둥을 치면 상처가 된다.

신자와 비신자 차이는 비신자는 상처가 독으로 변하지만 신자는 구원의 문이 된다.

뱀은 물을 먹으면 독으로 변하고 양은 물을 먹으면 젖으로 변한다.

 

이따금 내 방에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 아름답다고만 생각한다면.

우리가 숨 쉬는 것을 가슴이 열리는 것 같아 좋다고만 생각한다면,

밭에 심은 상추를 따다가 싸 먹을 때 맛있다고만 생각한다면,

내 몸의 동맥의 피를 볼 때 놀라기만 한다면, 이는 부활의 영이 아니다.


아!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끝, 한다면 사랑의 불감증 환자다.

햇빛, 숨, 상추, 동맥의 피 등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야 한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사랑을 달라고 하면서 주어도 못 느낀다.

 

죽음의 영을 통과한 사람은 모든 것이 참으로 놀라운 하느님의 사랑으로 온다.

이런 사랑을 느끼려면 막힌 데가 없고 구김살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죽음의 문을 통과해야 구김살이 없어지고, 마음이 열려서 열린 자가 된다.

칼 라너는 죽음의 영과 부활의 영을 모르면 하느님께 열린 자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구김살 없이 열린 자로 살아가면 이 세상 바라는 것도 없고 그냥 살다 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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