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5.13)

2009. 5. 14. 오후 8:14:58

글자
 

수요 관상기도 시간에「땅과 겸손)」에 대하여 강의하신 수사님 말씀을 전합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땅은 겸손(謙遜)을 의미하며, 겸손은 덕(德)이며 하느님이시다.

이 덕을 알아듣지 못하고 덕의 문을 통과하지 않으면 하느님께 갈 수 없다.

겸손의 덕을 얻고 거기에 뿌리를 내리면 나는 가지가 되어 포도나무에 붙어 있게 된다.

이 겸손은 땅에서 나오며 땅의 본질을 알면 겸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러면 겸손의 세 가지 특징은 무엇이고, 어떻게 얻을 것인가?


첫째, 땅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멸시, 모욕 등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누가 나를 멸시하거나 무시할 때 흔들리는 것이 교만(驕慢)이다.

흔들리는 이 교만은 머리에서부터 몸을 관통해서 밑으로 줄기처럼 뻣뻣이 살아 있다.

화났을 때 몸속에 심줄같이 박혀있는 줄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독버섯처럼 이 caro가 길게 살아 있다. 걱정, 불만이 있을 때 관찰해보면 줄기가 보인다.


교만의 caro가 가운데 꼿꼿이 서 있다가 감지(感知)가 안 되면 마음대로 나를 가지고 논다.

수술을 해서 꺼낼 수도 없는 이 교만은 상대방으로부터 멸시를 받을 때 없어진다.

멸시를 받아들이는 행위가 겸손이다. 안 받아들이면 교만이 겸손의 영을 못 들어오게 한다.

교만, caro의 끈질긴 놈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내가 죽을 때 죽는다.

내 안에 죽음을 생각하면 생기는 거부감이 그 놈이고 그 거부감은 죽을 때 없어진다.

마지막 남은 그 한 가닥의 죽음이 죽을 때 죽음을 잘 맞이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이것이 죽기 전에 죽었다. 거의 대부분이 죽을 때 없어지지만 

죽기 전에 미리 죽으면 죽기 싫은 것이 죽었으므로 순교하는 것이다.


둘째, 땅이 채소나 건물을 받쳐주듯이 모든 것을 받들어 주어야 한다.

받들어 줄줄 알면 겸손이고 받들어 줄줄 모르면 겸손이 아니다. 'sustinere 견디는 것'이다.

단체에서 임원들이 잘못이 있을 때 받들어 주거나 안 받들어 주는 것이 겸손을 결정한다.

받들어 주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교만 덩어리이다. 예를 들면, 직장에서 누가 잘못했을 때

잘못한 사람을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직위와 관계없이 떠받들어야 한다.

땅이 모든 것을 떠받드는 것처럼 겸손도 떠받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보필할 때 겸손은 보이지 않으며 그 보이지 않는 겸손이 하느님이다.


셋째, 땅이 잉태를 하고 품는 것처럼 다른 사람을 품는 것이다.

감자를 잘라서 땅에 반쪽 묻으면 수확할 때는 많은 감자가 열려서 잉태한다.

땅은 무엇을 껴안고 잉태를 한다. 누구에 대해서 말을 들었을 때 품고 있어야 겸손이다.

이 때 말을 전하지 않으면 caro가 폭삭 죽고, 말을 전하면 caro가 신바람 난다.


이 겸손의 세 가지 특징을 알고 살면 내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공통점은 인내이며 인내와 겸손은 자매 덕이다.

인내할 줄 알면 겸손하고, 겸손할 줄 알면 인내한다. 인내와 겸손으로

땅에 뿌리를 계속 박고 있으면 살고, 땅에서 떨어지면 금방 말라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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