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인간학 2-2

2005. 9. 8. 오후 11:52:55

글자

3. 공동체 : 윤리적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개인성과 공동체성 사이의 변증법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인간학적 연결점의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보았다.  즉 인간은 하나의 역사적 존재이며, 동시에 공간이라는 인간학적 구조로부터 제한을 받는 존재라는 점에서 살펴본 것이다.  역사성과 世俗性은 인간의 본질적인 분석에서부터, 인간의 경험적 실재에서부터, 그리고 인간 생활의 총체적인 인간학적 사고에서부터 강조되어 드러나는 인간 실재의 두가지 구조이다.  윤리는 바로 이러한 분석 요소들을 취하여 인간의 윤리적 삶의 영역으로 옮겨놓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또 다른 인간학적-윤리적 연결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곧 공동체라는 측면이다.  공동체의 측면은 ‘개인성’과 ‘단체성’이라는 인간 존재의 두 가지 구조라는 변증법적 모습을 가지고 있다.

먼저 ’개인성‘ (하나의 新用語이다)은 인간 실존의 고유한 한 양상이다.  우리는 이미 인간의 개인적 범주를 나타내는 몇 가지 점들을 살펴보았었다36).  인간은 넓은 의미로 생각해 볼 때 서로 대체될 수 없는 그 무엇이며, 정확한 의미에서는 하나의 개체이다.  이 개체는 보편적 양심이라는 희미한 형식 (예를 들면, 일반화 -Generalization- 한다는 의미) 안에서, 또한 전체성이라는 차원에서 그 의미가 약화 되어서는 안된다.  개체라는 근원적인 실재는 다른 어떤 것으로 대치될 수 없는 개별적인 그 무엇으로, 스콜라 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Suppositum - 존재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어떤 개별적 본질로서 이를 실체, 주체라고도 말할 수 있다 - 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 개념은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결정적인 어떤 요소이기는 하지만 어떤 외적인 것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인간 안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요소인 것이다.37)

개인성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러한 전망은 인간에 관한 한 어디에나 다 해당되어야만 한다.  이는 인간 어느 누구라도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인격주의(Personalism)의 핵심이다.  “우리는 이념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전체 안에서, 혹은 대의라는 명분아래 한 개인의 최종적인 분열을 반대한다.  우리 인간은 비록 본질적으로 또 다른 나를 향하여, 혹은 타인을 향하여 열려진 존재로서, ‘우리’를 형성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공동체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인격체라고 한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은 항상 개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못한다”38).

이러한 전망 안에서 헤링 신부의 기여는 상당히 크다.39).  헤링은 철학적 이상주의에 맞서서 이의 보편성 안에 개체성을 용해시키면서 키에르케고르가 말하는 불안의 개념을 다시 정의한다.  헤링에게 있어서 개인이란 본질적으로 일종의 그리스도교적 기준이 된다.  그는 즉시 해설하기를 “보편성을 엄격하게 주장하는 것은 범신론이나 관념론에 빠질 위험을 항상 내포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사고하는 것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당신의 계획에 따라서 모든 사물을 창조하시기는 하셨지만 그분께서는 개인을 사랑하시며, 따라서 개인은 창조주 하느님의 의지가 철철 넘쳐흐르는 애정의 표현이라고 해야 옳다.  각 개인은 하느님의 특수한 관심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에게 있어서는 인간에 견줄만한 보편적인 진리는 생각되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개별적 존재는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하나의 빛이다.  그러나 그 존재는 무엇보다도 하나하나의 개인인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모든 인간은 또한 하느님께서 각자의 이름으로써 불러 주셨기에 존재하는 것이다”40).

그러나 개인성은 변증법적으로 또 하나의 다른 구조인 ‘단체성’과 더불어 완성되어야 한다.  인간은 또 하나의 다른 ‘나’라는 하나의 본질적인 관계를 자신의 구조 안에 지니고 있다.   인간 실존은 ‘...와 함께 있는’ 존재이며, ‘...누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단체성은 개인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우리는 ‘너’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나’를 생각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지 않는가?  인간의 자기본위성의 근원은, 인간의 근본적인 고독은 Ortega가 말하는 것처럼, 공동체적 대화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고독을 멀리 쫓아 버리고 마는 인간은 스스로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며, 현명하지 못하게 자신을 얻고자 하는 인간은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시도하면서 자신의 고독안에 자신을 묻어 버리는 인간은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것이다.  우리가 온전한 우리 자신일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내어 놓은 것이 필요하다.”41)

개인성이란 이런 의미에서 단체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다.  “이 둘은 서로를 보충하며, 상호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단체성은 개인성 안에서 자신을 변질시키지 않으면서 자신의 참된 의미를 개인성에다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성은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를 전혀 손상하지 않으면서 단체성에 한계를 부여한다.”42)

개인성과 단체성의 변증법적 통합은 인간학 및 윤리적 범주로서의 윤리 세계에서는 필수적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바로 이러한 구조 안에서 효력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통합을 우리는 ‘공동체’라고 부른다.

공동체는 윤리 안에서는 다음의 두 가지 형태로 연구되어질 수 있다.  첫째 형태로는 인간이 자신의 생활에 관한 계획을 실현시키는 구체적 상황인데, 이 형태에서는 공동체가 윤리적 내용들의 한 분야를 담당한다.  실제로 인간 공동체의 윤리라는 것이 인간 삶의 구체적인 형태 안에서 존재하고 또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내면적 동거의 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주제는 특수 윤리의 영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윤리 - 성윤리, 의학윤리 등).

공동체와 윤리의 관계를 설명하는 두 번째 형태는 인간학적 전망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 관계를 연구하는 방법이다.  공동체는 윤리적 행위와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윤리신학의 기초적인 영역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어떤 형태의 방법을 취할 수 있겠는가?



3.1. 윤리적 가치의 주체로서의 개인과 공동체43)


윤리적 가치의 주체는 유일하게 개인만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또한 그와 반대로 개인들의 집단만이 그 주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윤리적 책임은 극도로 개인화 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단순히 사회라는 차원의 익명성으로 희석되어지는 것일 수도 없는 것이다.

 인격이 책임의 주체라는 점은 인간의 책임이 지니는 하나의 인격적 범위이다.  오늘날 윤리적 책임은 인격성을 갖춘 책임이어야만 하는 것이지, 개별화된 책임 (따로 따로 구별하여 고려하는 책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특별히 오늘날 우리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인격화된 책임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체의 윤리적 책임이며, 이는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공동체가 각 개인의 인격과는 거리가 먼(윤리적 사회학) ‘집합적 의식’이라는 의미에서 이해될 때에, 그리고 각 개인의 개별적인 의식의 총체로서(윤리적 심리학) 이해될 때에는 그러한 공동체는 윤리적 제가치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공동체가 윤리적 제가치의 주체라는 사실은 어떤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소속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의식 사이에 자리하는 상호작용(상호성)에서부터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공동체의 이와 같은 윤리적 제 가치는 그 공동체의 객관성을 통해서 결정된다.  즉 그 공동체의 사회적 및 법적 구조, 단체정신, 그리고 예술과 문화 수준 등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윤리적 제 가치들은 그 공동체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행위 - 이미 제시되어 있는 객관성에 대해서 동의하든가 그렇지 않든가에 따르는 행위 -를 통한 중재를 통해서도 드러나게 된다.

공동체는 윤리적 제가치의 주체가 되기 때문에 공동체의 윤리적 의식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며, 또한 말을 해야만 한다.  또한 공동체적인 혹은 집단적인 어떤 범죄를 범할 수도 있는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실천적 윤리 안에서 나타나게 되는 이렇듯이 중요한 두 가지 주제를44) 그대로 지나칠 수 없다.  공동체는 익명의 차원에서가 아닌 인격성의 차원에서 윤리적 행위의 주체이다.  즉 어떤 집단 안에서 상호 책임감을 갖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공동체라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는 인격은 윤리적 책임의식이 자리하는 고유한 장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따로 따로 고립시켜 이해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다른 사람들을 향해 열려져 있는 개방성 안에서 이해될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상기해야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윤리적 책임은 항상 인격화된 책임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책임의식의 인격화는 우선적으로 공동체를 향해 열려있는 - 즉 공동체화된 - 인간으로 하여금, 혹은 개개인의 인격으로부터 형성된 공동체 - 즉 인격화된 - 로 하여금 행동하고 의도할 수 있게끔 한다.

따라서 이 두 주제를 서로 분리시켜 이해할 수는 없다.  개인과 공동체는 서로 상호 작용함으로써 윤리적 제 가치 및 윤리적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어느 한 편의 이해 없이 다른 한 편을 알아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면이 모든 윤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개인성과 공동체성의 변증법적 긴장인 것이다.



3.2. 윤리적 행위 안에서의 개인과 공동체의 상호작용


윤리적 가치의 차원에서 볼 때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점이 발견된다.  한편으로 공동체 안에서는 각 개인의 윤리적 표현이 서로 엇갈리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각 개인들은 자기 자신 안에서 집단이 주는 영향을 아주 명백하게 거부하기도 한다.  공동체의 영향 아래 윤리적 제가치가 발전되며 또한 유지된다.  그리고 이는 모든 개인에게 통용되며, 각 개인을 성숙시키고 또 완성시킨다.  그렇지만 특별히 어린이들이나 아직 윤리적으로 성숙이 덜 된 성인들에게 더 영향을 미친다.

“윤리적 가치의 발전에 공동체가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만큼, 우리는 어떤 열등의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 지향하는 목표점을 비교하면서 각 개인이 지니는 윤리적 가치의 발전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어떤 열등의 집단에 속해 있는 개인의 더욱 열성적인 노력과 보다 높은 차원의 의도도 결국은 하나의 이상적인 공동체의 구성원이 가질 수 있는 의도처럼 충만되고 심오한 가치의 세계 안에 들어와 자리 잡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 인간의 모든 노력에 부여하고 있는 가치를 부정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는 단지 타락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보다 건전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더 낫다는 입장 - 비록 이 두 환경에서 사람들이 꼭 같은 노력을 기울인다 하더라도 - 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는 한 개인은 德性의 진보, 혹은 덕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완성으로 향한다고 말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 개인이 지닌 덕성 및 덕행의 평가는 공동체에 맡겨져 있는 것이다.”45)

집단 안에서 보여지는 개인의 행위는 절대로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되며, 또한 각 개인 안에서 보여지는 집단의 영향도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이 두 원동력의 결속이 바로 윤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다.



3.3. 공동체성의 뿌리 : 공동체의 교회론적 범위


개인성과 공동체성의 변증법적 긴장은 그리스도교적 해석 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은 교회의 신비 안에서 살고 있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다.  그의 윤리적 행위는 교회론적 차원에서의 그와 같은 일치 안에서 전개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교회론적 범위에 대해서 살펴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 관한 본질적 고찰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윤리적 제가치의 주체로서의 개인과 공동체와 관련해서 그것들의 상호작용이 그리스도인-교회라는 관계 하에서 지니게 되는 심오한 의미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즉 그리스도교적-교회론적 의미에서의 윤리의식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 성 : 윤리적 행위에서의 인간적 구분


인간의 성은 인간 존재와 행위를 연결시키는 또 하나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별히 인간적 일치에 대해서 언급하게 될 것이다.  먼저 인간에게서 볼 수 있는 하나의 조건으로서 이해되는 성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윤리신학의 연구를 위해서 적용될 수 있는 몇 가지 점들을 이끌어내려고 한다.


4.1. 성 : 인간의 조건46)


인간의 현실 안에서 볼 수 있는 성의 현상은 최근 십 수 년에 걸쳐 새로운 가치를 갖는 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성이라는 주제가 윤리에 있어서 기본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새로운 전망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할 만하다.  현실의 문화와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인간학적인 고뇌가 인간의 성이라는 실재에 하나의 구체적인 윤곽과 지평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性은 결코 감추어진 현실에서의 그 무엇은 아니며, 더욱이 존재에 계급을 부여하는(성의 생물학적 측면에서) 그 무엇도 아니다.  오히려 성은 인간을 특수하게 구분하게 하는 그 무엇인 것이다.  인간의 현실로서의 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간존재의 총체 안에서 성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인간의 성으로부터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위한 안내의 질문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자.  태어나면서부터 본능적인 하나의 생활 충동으로서의 성에는 서로 치밀하게 얽혀있는 두 가지 의미 내용이 내재한다.  첫째는, 이 성은 자연적으로 개인을 초월하여 인류의 존속을 지향하는데 목적을 둔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를 하나의 ‘탁월한 선’이라고 말하고 있다(II. II. 153, 2).  둘째는 , 남녀 서로를 위한 성적 헌신의 행위는 사랑의 공동체인 부부관계에서 양자가 서로 자신을 증여하는 신비적인 영육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을 악으로 인정하지 않고, 신으로부터 증여되고 인간본성에 바탕을 가진, 내면적 인간 모습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동물은 성본능에 저항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본능의 충동에 따라 생식에 이바지하지 않을 수가 없으나, 인간에게는 - 병적인 기피에서가 아니라 - 순수한 승화에 의해서 성을 정신화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주어져 있다.  그러나 다른 편으로는 인간은 성행위를 생식이나 부부관계에서 분리시킬 수가 있다.  이러한 태도에서 신중하게 유의해야 할 것은 성의 능력이 인간본질과 깊은 관계를 갖는 탓으로, 만일 그것이 이기주의적으로 타락해간다면 남성이나 여성에게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의 성은 방종에 맡겨질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셉 훼프너, 그리스도교 사회론, 89쪽 참조)

성이라는 실재의 현상이 지니는 복합성에 관해서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의 복합성은 결정적으로 인간의 열정이라는 하나의 일치 안에서 해답을 갖게 된다.  이것이 성의 가장 기본적인 범위이다.  이러한 시각을 가지고 우리는 성의 고귀함, 변화, 심오함, 그리고 광범위함에 대해서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의 이러한 4가지 범위는 인간의 유일성의 범위 안에 포함된다.



4.1.1. 성의 고귀함 : 성은 모든 인간에게 해당된다.

성은 단순히 생식기적 충동이라는 영역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성은 생식본능이나 단순한 성행위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생식현상은 성에 관계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성적 현상들은 눈에 보이는 것과 비교해서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프로이트에서부터 연구가 시작된 성에 대한 이러한 개념(프로이트는 성의 생식기적 형태 외에도 입과 항문이 가지는 성의 형태도 인정한다)은 그의 제자 융에 의해서도 계속되었으며(융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구분을 통해서 두 가지 형태의 인간정신이 나타난다고 주장함), 그 후 대부분의 심리학자들과 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도 받아들여졌다.  이렇듯이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도 알 수 있듯이 성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해당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이 성별로 구분된다면,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는 차이점들도 마찬가지로 인간을 구성하는 요건이 된다.  성은 모든 인간이 각자의 삶 안에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조건인 것이다.

성은 인간 존재에게 있어서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그 무엇이라기보다는 인간 존재의 심층에서 인간됨의 조건을 부여하는 그 무엇인 것이다.  개별 인간에게 있어서 성의 영향은 어떤 특수한 영역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고 그의 개인적인 삶의 전체 영역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의 인간에 대한 광범위한 적용은 우선적으로 성이란 인간의 통일된 조화 위에 기초하기 때문이며, 동시에 모든 인간이 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기본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다음으로, 우리들의 사고 안에서 인간의 성이라는 실재는 간접적으로 그것이 비록 性的인 리듬을 타는 것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면으로는 인간의 성에 대한 개별적인 표현은 고유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며, 오히려 성본능을 감추려는 경향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4.1.2. 성본능의 변화 : 성본능은 하나의 역동적인 실재이다

성본능의 연구에 있어서 Freud의 위대한 공헌 중의 하나는 인간의 성본능이 인간의 삶 중에서 어느 한 순간에 나타남으로써 그의 전 생애 동안 지속되는 실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었다.  성본능은 인간에게 한 번에 모두 주어지는 것도, 그리고 한 번에 완전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성의 모든 요소들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 까지 끊임없이 변화되면서 여러 형태로 인간에 머무르는 본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변화라는 성본능의 특징은 각 개인에게 따라오는 모든 역동적인 변화에 필연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각기 다른 여러 형태도 역시 그가 지니는 성본능의 여러 형태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성적 변화는 변화무쌍하다.  자기 자신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성본능에서부터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성본능의 변화과정을 살펴본다든가 혹은 자동적인 성본능에서부터 다른 매개체를 통해 나타나는 성본능의 변화과정을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본능의 움직임은 인간의 일반적인 역동성과 같은 선상에서 고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적으로 완전하게 성숙된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성숙한 행동을 보일 수 있을 것이며,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나 일반적으로 그가 대하는 모든 실재를 향하여 성숙한 행동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성본능이 개별 인간의 삶 안에서 시간적으로 완성되는 어떤 역동적인 실재라면 성본능의 심각한 결핍 역시 이러한 변화의 수준에서 입증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심각한 결핍이란 病的偏見, 退化, 未成熟등의 결핍이다.  이러한 결핍에 대해 전혀 무지는 인간의 성적 행위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아주 커다란 위험을 동반하게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보편적인 개념으로부터 성본능을 평가한다는 것 역시 아주 커다란 오류를 동반하게 될 것이며, 그러한 결핍들은 인간의 성적 행위의 내적 역동성과는 무관하다고 보아야 한다.



4.1.3. 성본능의 가치 : 성본능의 깊이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성본능은 인간 존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하나의 능력이다.  결과적으로 성본능에 따르는 행위나 그 표현은 인간의 인격적 깊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은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여러 수준으로 표현되는 것처럼, 인간의 性 표현 역시 여러 다른 수준의 표현으로 드러난다.47)

인간이 가진 성의 깊이 역시 여러가지로 구분된다.  사람들은 “性”, “性愛”, 그리고 “사랑”에 관해서 말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性”과의 관련 하에서 “성애”와 “사랑-agape”, 그리고 “熱愛”를 구분하여 설명하기도 한다.  또한 사람들은 성애와 관련하여 성애가 포함하고 있는 심리적 요소들을 암시하기도 한다.  “열애”는 인간의 내적 사랑을 표현하며, “사랑-Agape”은 하느님께 사랑의 응답을 하게 하는 열망에로 인간의 사랑을 개방시킨다.

이러한 3가지 요소들 사이에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감춰진 어떤 힘과의 깊은 연결 내지는 커다란 일치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性은 性愛처럼 인간을 유지시키는 인간적인 힘을 요구한다.  즉 사심이 없는 사랑과 충실함의 힘이 인간의 심층에서부터 솟아나면서 인간에게 그러한 것들이 흘러 들어오지 않는다면 사실상 성의 고유한 역동성은 인간에게 진실되게 자리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48)

그러나 비록 인간의 성의 일치와 연속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 요소들의 질적인 차이점을 인식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인격의 수준이 여러 층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혼동할 수 없는 것처럼, 위의 3가지 요소를 서로 혼동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동질성과 일치라는 이름의 거짓된 욕망을 통해서 그 요소들의 수준이 혼동되지만 않는다면 인격의 풍요로움이나 그 깊이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인간의 성이 지니는 깊이와도 밀접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이 지니는 성본능의 여러 다양한 수준과 성본능의 점진적인 발전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면서 성본능의 발전 형태에 따라서 더러는 열정적으로 우리 앞에서 전개되는 사건에서 우리의 성본능의 모습을 바라 볼 수 있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어느 한 청년이 육체적으로 성숙했다고 할 때, 그에게 나타나는 성에 관한 첫 번째 현상은 육체적인 성적 욕구는 아니고, 다만 異性을 향해 마음을 빼앗기는 그 어떤 경향일 것이다.  윤리적 가치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청년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육체적인 성의 발전과 또한 그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다양한 성본능 사이에서 그것들이 서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는 자신의 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4.1.4. 성본능: 인격 형성을 위한 강한 힘

인간의 건전한 성본능은 건전한 인격형성을 위해 요구되는 하나의 강한 힘이다.  우리는 성본능 그 자체를 하나의 폐쇄된 힘으로서 생각해서는 안된다.  성본능은 인간 존재가 갖는 총체적 의미에 밀착되어 있는 하나의 강한 특성인 것이다. 

성본능은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의 격렬한 힘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본능은 전적으로 무질서하거나 일정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힘은 아니다.  이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힘이며, 또한 인간을 위한 힘이다.  성본능은 인간과 아주 밀착되어 있으면서 인간에게서 악습과 허상을 극복하게 한다.  또한 이 성본능은 인간 안에 커다란 영역을 차지하면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지니게 한다.  성본능 안에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적인 빈약함을 체험하고, 또한 이 성본능을 통해서 인간은 다른 사람을 향해 개방된 삶을 살고, 즉 자신의 실존적인 결핍으로부터 제기되는 개방성을 체험하는 것이다.

성본능의 이러한 범위에서부터 성윤리를 위한 핵심적인 방향이 제시되어 나온다.  인간의 성적 행위가 지니는 가치는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인격의 의미를 향해 방향 지워져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성본능은 그 자체 안에 인격의 내-외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의도까지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4.2. 윤리적 반성


인간의 성본능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는 윤리적 내용의 선상에서 인간의 성본능에 대한 윤리성에 관한 새로운 시각과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는 특수윤리에 속하는 문제이다.

여기서는 다만 기초윤리의 영역에 국한하여 윤리적 반성을 시도할 것이다.  즉 인간학적 윤리학의 한 구조로서 성본능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면에 대해서 다음의 두 가지 기본 범위를 생각할 수 있겠다.



4.2.1. 성의 조건과 윤리 법칙

성윤리에 관한 학문적인 측면도 역시 마찬가지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성의 조건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윤리에 관한 윤리 법칙에 있어서도 인간의 실재를 구성하고 있는 성의 두가지 범위 (性別)가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즉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에 따라서 제기되는 시각에서부터 성윤리의 문제가 고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가톨릭 윤리신학이 사실상 남성이라는 일방적인 측면의 시각에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독신의 일반적인 시각 하에서 주로 남성의 입장만을 성윤리에서 다루어 왔다는 점은 많은 비난을 받아왔었음은 사실이다.  여성들은, 물론 결혼한 여성들을 포함해서, 사실상 성의 윤리적 문제들에 관한 어떠한 해결이나 시도에 있어서 전혀 관여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신학-윤리적 반성은 하느님의 백성 전체로부터, 하느님 백성의 일치와 다양성 안에서 시도될 것을 요구한다.  여성은 물론, 평신도들을 포함해서, 또한 결혼한 사람들 모두를 포함하여 성문제에 관한 구체적인 개입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신학, 더 상세히 말해서는 윤리신학의 연구를 위하여 반드시 존중되어야만 하는 이러한 다양성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수많은 윤리적 문제들은 사실상 여러가지 다른 시도와 다양한 해결방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남성의 시각, 혹은 여성의 시각에 따라서 다르게 고려되어질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만 한다. 



4.2.2. 성의 조건과 윤리적 행위

구체적 인간의 윤리적 행위에 대한 이해는 우선적으로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성의 고유한 조건으로부터 출발하여야만 한다.  윤리적 행위의 형태에 있어서 남성 혹은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남성이라는 것, 혹은 여성이라는 것은 인간 실존을 살아가는 하나의 본질적인 형태인 것이다.  남성됨과 여성됨은 분명 인간 실존의 두 가지 형태라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種) 안에는 인간으로서의 모든 지평에 있어서 성의 兩極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은 인간학의 범위 안에서 다루어질 수 있으며, 또한 그 차이점은 인간 실존을 실현시키기 위한 근거를 마련해준다.  비록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직업에 종사하고, 또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사회적 직무들을 서로가 나누어 가면서 수행한다 하더라도 이는 명백히 그들 각자가 자신들의 고유하고도 정체성을 가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틀리지 않은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존재 양식은 남성의 형태에서는 노동에서 나뉘어지고 여성이라는 형태에서는 관심으로 나뉘어진다.49).  여성이라는 형태는 보다 더 利他主義的일 것이고, 동시에 자신이 선물로서 받은 여성을 하나의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완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남성은 예를 들어 노동이라는 범주 안에서 자신의 실존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여성은 모성이라는 범주 안에서 더 완전하게 자신의 실존을 성취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의 주위에서 더욱 활력을 가지고, 창조적인 정신으로써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은 실존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업의 총체성 안에서 이 세상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명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시각에서 인간에게는 자신의 실존을 투사하는 두 가지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여성의 고유한 실존과 남성의 또 다른 고유한 실존이다.  인간의 이러한 고유한 형태는 인간학적 구조로부터 인식될 수 있으며, 또한 ‘문화’의 구조를 통해서도 인식될 수 있다;  때때로 ‘문화’는 ‘본성’위에 군림할 수가 있으며, 또 가끔은 ‘문화’가 ‘문화’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본성’으로 인식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성과 여성의 상관적인 특징이 나타나며, 동시에 남성 혹은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절대적인 특성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범주는 인간의 전체 생활을 통해서 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범주는 인간의 행동 양식에 있어서 다양한 특징을 부여하면서 인간의 윤리생활 안에 드러나게 된다.  여성으로서의 활력에 넘치는 생활양식 혹은 남성으로서의 그러한 생활 형태가 곧바로 윤리생활과 직결되어 드러나는 것이다.  남성들에게 있어서 노동의 세계는 의무의 윤리와 함께 드러나고, 여성에게 있어서 그들이 지니는 관심의 세계는 사랑의 윤리로 드러나는 세계인 것이다.  Hortelano50)는 Clostermann51) 학파를 그대로 따르면서 性에 의해 구분되는 윤리의식을 체계화한다.  여성 안에서 “윤리의식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윤리적 가치에 대한 개인적인 결정이며, 따라서 모든 존재로부터 나타나는 모든 구체적인 사례를 아주 중요시한다.  이러한 삶의 양식은 사실상 남성에게서 볼 수 있는 삶의 양식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지만 여성의 그러한 생활양식은 윤리생활에 있어서 늘 생동감이 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생활양식은 하나의 윤리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생활양식이라고 표현해야 옳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성에게 있어서 그러한 점은 여성이 감정에 있어서 특이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은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동일한 문제를 만났을 때에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감정을 갖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철학자 Larsch가 말하는 바와 같이, 여성에게 있어서 감정은 보다 더 실존적이며, 개별적인 활력을 동반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보다 더욱 섬세하며, 더욱 현실적이다.  그러기에 여성은 또한 더욱 외향적이다”52).




5. 성격 : 행위에 있어서 고유한 날인 혹은 구체성


      인간의 행위에 있어서 마지막 연결점은 개인적인 성격이 지니는 어떤 표시로부터 드러나는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 개인은 자기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고유하고도 특성을 가진 어떤 구조에서부터 행동한다.  성격 유형 심리학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1920년부터 1940년 사이에 활발한 연구가 있어왔으나 최근에 들어와서는 이러한 성격 유형의 구조에 관한 강한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그러한 사조를 전적으로 찬성하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거부하는 두 가지 극단적인 연구를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성격이 어떤 목록처럼 만들어지거나 그러한 목록에 대해 전적인 신뢰를 가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긴 하지만 성격 유형 심리학은 현실적으로 인간을 구분하고 더 잘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53).

한 개인의 구조는 그 자신을 드러내 주는 육체적, 기능적, 그리고 심리적인 모든 특징들에 의해서 형성된다.  우리는 인간의 구조 안에서 다음의 3가지 영역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54): 1) 형태, 혹은 기능적인 면에서 분류될 수 있는 육체에 의한 분류; 2) 심리적 유형에 따른 분류; 3) 반사능력과 다양한 자극에 대처하는 다양한 능력에 따른 분류.

한 사람의 구체적인 개인 안에서 보이는 이 모든 요소들에 관한 표시 내지는 흔적이 바로 우리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특징이라고 알아들으면 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성격 유형론에서 연구되고 소개되어온 수많은 종류의 성격 유형을 모두 기억한다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단지 성격 유형의 분류라는 측면에서 적당한 기준을 가지고 구분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모든 각 개인은 그가 가지고 있는 특징에서부터, 그리고 특징 때문에 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러기에 성격 유형론에 입각하여 다양화된 어떤 윤리에 대해서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Le Senne55)는 G.Heymans와 E.Wiersma의 노선을 따르면서, 다음의 3가지 기초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구분되는 인간의 윤리의식에 대한 하나의 성격유형론을 체계화 시켰다.  즉 3요소란 감정, 활동, 그리고 반사의 첫번째 혹은 두번째 특징이다.

여하튼, 구체적인 윤리의 가각의 주제 안에서, 혹은 윤리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각각의 범위 안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점은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를 위해서는 인성학이나 윤리적 성격유형론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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