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인간학 2 -1

2005. 9. 8. 오후 11:52:33

글자

윤리적 인간학 (2) 

 

 윤리적 행위의 인간학적 종합

우리는 전장(前章)에서 인간의 윤리행위의 주체는 ‘선한 의지’도, ‘심사숙고된 의지’도 아니고 ‘통합적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하였었다.  이제 이 章에서 다루어야 할 과제는 윤리적 인간학의 첫 번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人間’에 대해서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바로 우리가 다루는 윤리적 인간학에 관련되는 주제이며, 또한 통합적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구조 안에서 다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이며, 동시에 구체적 인간은 몇 가지 기초적인 일치 안에서 행동하며, 이런 점에서 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인간학적으로 일치된 통일성에 참여함을 의미한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인간이 인간임을 보여주는 몇 몇 구조를 통해 드러나게 되고, 또 반영되는 것이다.

인간의 윤리적 행위에 관하여 좀 더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것이 인간학적 전망과 아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즉 윤리학의 영역과 반드시 합치되어야만 하는 인간 행위의 인간학적 범위와의 복합성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윤리적 현실로서 인간 안에 투사되고 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인간학적 일치는 다음과 같다.

1) 시간: 인간과 그의 윤리 행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역사성

2) 공간: 인간 행위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로서의 사회-문화적 및 보편적인 요소

3) 공동체: 인간 행위 안에서 드러나는 개인과 집단 사이의 변증법

4) 性 : 인간 행위의 특수 구분

5) 성격: 윤리적 행위를 구체화 시키는 요소 혹은 고유한 특성을 가지게끔 하는 요소

윤리적 행위의 인간학적 전망과의 이러한 연결을 통해서 인간의 윤리적 행위에 대한 하나의 종합적 기준을 살펴보려 한다.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윤리학의 이해의 도움을 위한 인간학적 일치가 보여주는 요소들을 자세히 고찰하게 될 것이다.



1. 시간: 윤리적 행위를 구성하는 요소로서의 역사성


역사성은 윤리적 행위의 인간학적 일치에 있어서의 첫째 요소이다.  시간은 윤리와 합치되어야만 하는 한 요소이다.  인간-그리스도교적 존재의 구조 안에 들어오는 역사성을 살펴 본 다음에, 인간의 윤리적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고찰할 것이다.



1.1. 인간-그리스도교적 존재의 구성 요소로서의 역사성


인간 생명의 조건으로서의 시간에 관하여 우리들의 시대는 다른 어떠한 주제보다도 더 많이 사고하였고, 또 많은 글을 발표 하였다.  20세기의 사고는 - 아마도 역사 안에서는 처음으로 - ‘역사성’의 주제를 선택하였다; 철학 분야에서는 딜타이(Wilhelm Dilthey: 1813-1911)1)와 베르그송에서부터 하이덱거와 오르테가(Ortega y Gasset: 1883-1955))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 주제를 계속 강조하여 왔으며, 뿐만 아니라 하이덱거의 대표적 저서는 “시간과 존재: Sein und Zeit)라는 제목이 붙여지기도 한 것이다.  비단 철학 뿐만이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학문의 내용들이 바로 이 역사성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고 해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사회학, 심리학, 문학, 그리고 예술에서까지도 역사주의의 영향은 지대했던 것이다2).  우리는 여기서 이러한 역사성을 신학에 접목시키고자 한다.

인간은 단지 ‘시간’ 안에서만 살지는 않는다.  인간은 일시적인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사성이 생명을 위해 허용하는 모든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역사적 존재이다.

인간의 역사성은 여러가지 다른 각도에서 세밀히 분석될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생각해 보도록 하자.  인간의 역사성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우선적인 방법은 인간에 대한 하나의 ‘現存的 分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하이덱거의 용어를 따르면, 역사성이란 하나의 ‘실존’이다3).  Gomez Caffarena는 하이덱거의 사상을 따르면서 인간 존재 안에서 역사성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하이덱거가 말하는 Dasein (현존재)은 현상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더욱 본질적인 구조 안에서 역사성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왜냐하면 현존재는 하나의 연속적인 실재이기 때문이다.  세상 안에서의 실재, 즉 친교를 이루는 실재로서의 자기 모습을 가지는 의식은 생동하는 하나의 계획으로서의 의식으로서, 끊임없이 자신을 실현시키면서 항상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또한 하나의 실재로서의 의식은 ‘항상, 그리고 이미’ 또 다른 실재 안에 포함되어 있으며, 이 세상 안에 던져진 의식인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앞에 놓여져 있는 미래를 향해 자신을 내던지기를 거부할 때는 이미 살아가기를 중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의식을 가지고 행한 인간의 행위는 바로 그러한 불변의 구조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그리고 행위는 항상 인간이 이미 발견하는 하나의 상황에서부터 시작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실재의 불변하는 이 두가지 본질적인 범주를 ‘계획성’과 ‘현실성’이라고 명명한다”4).

인간 안에 내재해 있는 역사성을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경험적 구조’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인간 역사성을 고찰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Marias로부터 적용되기 시작 하였다5).  Marias는 인간의 삶의 분석적 구조를 경험적 구조로부터 구별한다.  그에 의하면 경험적 구조는 형이상학적 인간학의 대상을 설정한다.  인간 생활의 경험적 구조는 분석적 구조와 특수하고도 구체적인 각각의 실재 사이를 이어주는 고리이며, 이 경험적 구조에 인간 생활에 있어서의 모든 사건들이 포함되는 것이다.  이 모든 사건들이란 분석적인 요소로서의 그 무엇이 아닐 뿐더러, 우연적이거나 우발적인 것도 물론 아니다.  이는 오히려 모든 구체적인 개인이 가지고 있는 경험적인 요소들이지 구조적이거나 선험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6).

시간은 인간 생활의 경험적 구조에서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 시간이 비록 인간의 삶을 전재시키는 구조적인 그 무엇이라 하더라도 이는 분명히 하나의 경험적인 형태이다.  Marias는 인간 생활의 경험적 구조의 요소로서의 시간에 관한 분석을 통해서 다음 몇가지 중요한 요소들을 강조한다: 연속성, 이는 인간의 완성에 관한 시간적인 형태이며, ‘사건’이라는 특징 (인간의 생활에서 무엇이, 또 어떠한 일이 진행중)을 가지고 있고, 또한 드라마와도 같은 특징 (즉 어떤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고 있는 인간 생활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경험적 구조에서 보는 역사성은 인간 생활에서의 몇가지 고유한 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즉 세속성, 육체성, 감각적 기능, 정신적 삶과 생물학적 기초의 통합, 현실의 사회형태, 그리고 역사의 리듬 등은 인간의 현실적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  인간 생활의 경험적 구조의 범위로서의 역사성은 정신적으로는 연령이나 사회-문화적 상황 등에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나타나게 된다7).  바로 역사성이 지니는 그러한 면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 있어서 역사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즉 시간은 하나의 역사적 관점에서부터 출발하여 이해된다는 것이다.  역사성의 실존적인 영역이 또 하나의 다른 실존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역사성으로 이어진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8).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역사성에 대해서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명확히 밝혀두고자 하는 점은 역사성이란 단지 시간에 대한 본질적인 분석이나 인간 생활의 경험적 구조로부터 만이 아니고, 역사에 대한 철학적인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Ortega y Gasset9)의 사상을 따라서 ‘시간’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Ortega는 역사에 대한 한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인간 정신 안에 내포되어 있는 다양성을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감각에 관한 다양성은 한 개인의 작업은 아니다; 그것은 세대를 거쳐 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10).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을 유지 하면서 모든 역사적 시대 안에서 드러나는 일시적인 다양성의 의미를 분석할 수 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연령일 수도 있고, 혹은 성별일 수도 있는 것처럼 일시적인 다양성의 측면들을 통해서 한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는 역사적 시각, 혹은 시기의 중요성을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성이란 역사적 다양성이나 인간사회의 리듬을 이해하는데에는 하나의 본질적인 영역이 된다.  시대라는 특수한 시간이 우리 인간들 앞에 있으며 이 시대 안에서 인간은 각각의 특수한 형태로써 역사성을 살고 있는 것이다.  변화되는 순간 안에서 이 역사성을 체험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가속화”이다11).

      역사성은 또한 심리학의 영역에서부터도 이해를 시도할 수 있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시간은 인간의 정신 영역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 등장한다.  즉 연대기적인 척도로서의 시간과 비교하여, 체험적이고 감각적인 시간이라는 실재와 개념이 나타나는 것이다.   각각의 심리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고유한 시간과 체험의 영역에서의 시간이 존재한다.  Lersch는 “내부의 시간”에 관하여 언급한다.  즉 내부시간이란 인간 경험의 정상적인 형상적 구조이다12).

      산다는 것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3중의 범위 안에서 구체적으로 모양을 갖춘다.  “우리가 삶의 역사성에 대해서 말을 할 때, 인간들의 정신적 삶은 우리들의 외적 경험의 모든 대상이 시간 안에 자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들의 정신적 삶은 단지 시간 안에만 자리하지 않는다.  외적 경험의 영역 자체가 바로 시간인데 정신적 삶은 인간 경험의 외적 영역은 아닌 것이다.  인간의 삶이라는 경험 때문에, 인간은 하나의 역사적 존재가 된다.  즉 인간이라는 실존이 매 순간 순간을 통해서 형성되고, 시간화 되어지는 하나의 존재이며, 따라서 미래에 깊숙히 연결되어 있는 것 처럼 과거에 깊숙히 관련된 시간이라는 제한된 이유 안에서 유지되는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인간의 정신적인 삶이란, 보통의 삶과도 같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이며, 동시에 항상 앞으로 진행하는 하나의 현실인 것이다.  이는 또한 연속적이며, 예견되어지는 현실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면 안에(연속성, 예견성등) 인간의 역사성이 성립되는 것이다.

역사성은 또한 그리스도인을 구성하는 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리스도교는 반드시 역사성과 역사성의 영역으로부터 출발함으로써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고의 기본적인 종교의 영역들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범주로서의 역사성에 관하여 강조한다.  신적계시는 시간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는 영역이다.  또한 계시는 그리스도교적 구원이라는 영역에서 말해져야만 한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며, 동시에 그리스도 역시 시간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는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는 하나의 철학이나 이념이 아니고 구원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좀 더 본질적인 그의 존재 안에서, 하나의 역사적 존재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은 현재라는 일종의 긴장 안에서 구원을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현재란 미래에 종속되어 있고, 또한 미래를 향해 투사하는 시간의 의미에서의 현재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러한 역사의 3중적인 범위 안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교회와 교회적 현실들은  바로 이렇듯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3중의 역사적 영역에 참여하는 것이다.  성사적 표지에 관한 신학 안에서는 이미 실천, 기념, 그리고 종말론이라는 3중의 형태로서의 보다 더 고전적인 신학이 나타나곤 했었다.

하나의 구원의 역사로서의 그리스도교에 관한 이러한 전망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서 채택되었고, 또한 윤리신학과 사목신학의 영역 안에서도 활발히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 인간학-윤리적 범주로서의 역사성13)


인간이 역사성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은 윤리신학에서는 매우 중대한 영향을 준다.  여기서는 윤리적 내용들의 결정을 위한 반성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사실 윤리적 제 가치와 그리고 규범과 원리들 안에서 그 가치들의 형성은 인간이 지니는 역사성의 인간학적 규범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인간의 역사성의 범주는 소위 말하는 ‘자연법’의 해석 내지는 공식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윤리적 내용들의 공식 안에서 드러나는 역사성에 관한 고찰을 내버려 두고라도 역사성이 윤리적 행위의 인간학적 구조라는 하나의 공식을 통해서 적용되는 점들에 관해서 잠시 살펴볼 것이다.



1.2.1. 역사성 : 인간 윤리성의 표명


인간적 실존, 혹은 인간 삶의 경험적 구조로서의 인간의 역사성에 관한 분석들이 일종의 윤리적 언어에서 다루어지고 있음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인간의 역사성에 대한 이러한 형이상학적 이해가 윤리학에 있어서 하나의 핵심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시간적 조건이 그의 윤리적 범위를 드러낸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역사성이 인간 윤리성의 시작이며 기초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간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양심은 자기 자신에게 하나의 법규로서 나타나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하여 미래를 향해 내 던져져 있음을 감지한다.  또한 인간은 자기 자신이 내 던져져 있는 어떤 환경이라는 현재에, 자신의 완성을 위해, 본질적인 모습을 충실히 살 수 있도록 비상한 도약14)과 커다란 용기15)를 필요로하는 하나의 상황이라는 ‘현재’ 안에서 살고 있다.

역사성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인간 실존의 ‘확고한’ 범위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 나갈 필요성을 인간에게 하나의 의무로 부과한다.  동물적 삶과는 반대의 개념으로서의 인간적 삶은, Ortega y Gasse의 표현을 따르자면, 하나의 의무로서 규정되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고유한 실존을 완성시켜 나가거나, 혹은 충만시켜 나가야만 한다.  하나의 법규로서 규정되어지는 삶은 이렇듯이 끊임없는 과제 안에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자신을 끊임없이 실현시켜 나가야만 한다.  삶은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고, 또 우리를 염려케 하는 여러 문제들을 통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되어 간다.

역사성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두가지 측면, 즉 ‘계획성’과 ‘의무’는 시간이 인간의 기본적인 윤리성을 드러내는 본질적인 영역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윤리적 범주의 기원과 기초가 위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윤리적 인간학에 있어서 하나의 기본적 구조인 역사성을 배제하고서는 윤리를 이해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1.2.2. 윤리적 주체


인간 역사의 범위 안에서 역사성을 고려하면서, 그리고 윤리와의 관계 안에서 이 역사성이라는 개념을 덧붙이면서, 우리는 윤리적 행위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하나의 고립된 주체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의 결정들을 역사 밖에서가 아니고 바로 역사 안에서 실현하기 때문이다.

우선, 인간은 역사적 과거에 대해 빚을 지고 있는 채무자이다.  역사란 사건들의 단순한 연속으로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사건들은 현재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기를 계속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다양한 양상들의 각각의 사건은 다른 사건들과의 ‘공동관련’을 통해서 이해가 가능하며, 이 모든 사건들은 과거와의 ‘연결’을 통해서 이해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적 진행은 단지 그 사건들의 일시적인 해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복합, 관련, 그리고 해설이라는 3중적인 범위는 근원적으로 역사적 사건의 모든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16).

그러나 과거는 인간이 반드시 떠맡고 가야만 하는 짐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인간 자신으로 하여금 용기를 주고, 더 낫게 발전시키거나 혹은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들어가야만 하는 하나의 역동적인 움직임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결정들을 통하여 역사의 역동성 안으로 들어가며, 하나의 더 나은 사건 안으로 과거를 연장한다.  “과거는 하나의 ‘운명’처럼 각 개인의 시간 안에 침투한다.  생물학적, 문화적, 종교적, 그리고 윤리적 계승이라고 할 수 있는 과거의 계승은 이미 우리가 정성들여 받아들이는 요소이지 현재 우리 인간의 자유로써 행해지는 사건을 불평하는 것으로서의 그 어떤 요소는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이미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간에 인격적이고 책임감을 갖춘 또 다른 새로운 형태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인간은 자기 역사의 현재 안에서 자신과 조상들의 과거에 대해서 책임을 가져야 하며 동시에 또 다시 떠맡게 될 과거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다가올 사건에 대해 의심할 여지없이 책임을 갖게 될 것이다.  과거의 계승은 항상 지금 당장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계승을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가 바로 하느님의 소리가 될 것이다.  현재의 결정은 미래에 하게 될 결정의 윤곽을 제한하면서 이미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고할 것이다” (B. Haring, La legge di Cristo).


1.2.3. 윤리적 행위 : 시간의 삼중적 범위에로의 참여


윤리적 행위는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지니는 고유한 3중 범위에 참여한다.  인간은 ‘현재’ 안에서 반드시 개인적인 결정을 취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어제’라는 영향 아래서, 그리고 ‘내일’을 향한 하나의 투사 안에서.  이렇한 하나의 인간학적 전망으로부터 출발하면서 모든 인간적 행위는 바로 현재라는 이 순간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긴장 안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이 긴장을 다음의 도식으로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윤리적 행위는 

                   하나의 결정 (현재) 인데,

                         이는 어떤 기억(과거)과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어떤 계획 (미래)을 향해 열려 있다.



그리스도교적 시각에서 인간 행위의 이러한 면은 하나의 심오한 면을 포함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의 특별한 생활 형태 안에서 시간적인 긴장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앙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현재인 (그리스도의 삶을 지금 현재에 살고 있는 사람)이며, 동시에 종말론적 시간에로 열려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이런 점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을 매순간 순간의 결정 안에서 살아가게끔 하는 것이다17).  왜냐하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험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긴장이 그리스도인 실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러한 전망에서부터 우리는 현재, 과거, 미래라는 역사적 범주 안에서 인간의 윤리적 행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점에서 다시 다음의 도식을 생각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행위는

                  현재에 이루어지는 하나의 결정인데 (kairos),

                      이는 하나의 역사를 완성하고(cryterion)

                          동시에 하나의 종말론을 향해 투사된다(eschaton).



이러한 양식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행위는 항상 하나의 시간적 긴장 안에서 이해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곧 ‘긴장’이라는 특징을 갖게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행위는 인간적 및 그리스도교적 역사성의 3중 구조를 실현시키는 행위여야 하기 때문이다.



1.3. 윤리의 3 영역 : 구원의 역사, kairos, 시대의 징표


윤리적 인간학의 한 핵심요소로서 역사성이 인정된다면, 우리는 윤리의 세계 안에서 시간의 다양한 영역을 소개해야만 할 것이다.  그 영역은 구체적으로 다음의 3가지로 언급될 수 있다: 즉 구원의 역사, Kairos (때, 시간), 그리고 시대의 징표들이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하나의 구원의 역사에 관한 윤리이어야만 한다18).  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책임은 구원 역사의 사건들로부터 규정된다.  즉  이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라는 핵심적 사건으로부터 결정되는 것이다.  또 다른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종말론적 전망 안에서 주님의 충만된 顯示 앞에서 자신의 계획을 살아간다.

이렇듯이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생활이 결정되는 <중간 시간>이라는 상황이 나타나게 되며, 또한 그 윤리적 생활은 이미 실현된 것과 또 아직 실현되지 않은 것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고유한 긴장 안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긴장이란 ‘이미’와 ‘그러나 아직’ 사이의 긴장이다.  다시 말해서 이 긴장이란 명령법으로 변화되는 직설법 우위에 서 있는 긴장인 것이다.

O. Cullman은 다음과 같은 형태 안에서 종말론적 긴장 안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윤리를 정의했다: “중간 시기로서 우리가 확정한 현재라는 시간의 상황은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비록 새로운 윤리적 규범들을 확정시키지 못한 상태였음에도 그들이 생활하는 현장에서, 현재라는 어떠한 시간에라도 윤리적 결정을 가능하게 할 수 있었던 가장 구체적인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현재라는 시간, 어느 상황에서라도 취하게 되는 결정은 구원 역사를 향해 나아가는 정확한 목적, 그리스도의 이 세상에서의 최상권과 그분이 이 세상에서 보여주신 중점적인 여러 사건들에 관한 지식 위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그 무엇을 잘 알고 있으며, 또한 이미 실현된 완성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 사이에서 움직여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19).

구세사의 사건들 위에 기초하고, 또한 완성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윤리로서의 구원의 역사를 위한 하나의 윤리는 반드시 시간(Kairos:때)의 윤리이어야만 하며, 또한 구원의 역사로부터 솟아나는 계시와 결정의 충만함으로써 나타나게 되는 현재라는 시간 안에서의 결정이라는 適期의 윤리이어야만 한다.

헤링 신부는 Kairos (시간, 때) 개념 위에 자리 잡는 윤리에 관하여 자주 언급하고 있다20).  윤리의 이러한 영역은 성서-신학적인 공통 견해가 지니는 표현과 개념을 기초로하여 전개된다21).

Kairos의 개념은 하나의 결정적인 역사의 사건 안에서 구원의 계획 안에 그 사건의 특수한 개입을 통하여 하나의 특수한 임무를 부여한다.  “현재와 미래의 사건 안에서처럼, 과거 안에서도 다른 여타의 시간들과는 현격하게 구분되는 하느님의 시간들(Kairoi divini)이 있다.  이 시간들의 결합이 구원의 방향을 계획한다”22).

어느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판단과 그의 그러한 판단과 부합하는 윤리적 행위는 바로 이러한 kairos의 실재와 깊숙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구원의 역사 안에서 모든 사건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되고 있다는 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한 사람의 윤리적 판단과 그거서 따라오는 모든 행위들을 가능하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23).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분별력을 갖는 것이다.  분별력이란 kairos를 가치있게하는 능력이다.  그러나 이 분별력은 인간이 예외적으로 지니는 그 무엇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음을 늘 느끼기 때문이다.  분별한다는 것은 복음과의 일치 안에서 모든 상황을 가치있게 하는 능력이며, 여기서 분별행위의 중요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동사 δοκιμαζειν (분별하다, 인식하다, 해설하다 등의 의미를 가졌음)은 Cullmann의 해석에 의하면 신약성서의 윤리 전체를 대표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24).

      구원 역사와 kairos의 범주는 윤리에 있어서 제 3의 범주로 우리를 인도한다:  즉 시대의 징표25)라는 하나의 새로운 범주이다.  그리스도교 윤리는 시대의 징표에 대한 윤리라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복음을 통해서 판단되어야만 한다.  시대의 징표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 계획의 강한 원의를 발견할 때, 우리는 특별한 방법을 통해서 우리에게 해설되어지는 시대의 징표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우리 앞에 항상 놓여 있는 사건에 늘 깨어있게 되는 ‘깨어있음’의 윤리가 등장하는 것이며, 이는 그 자체로 폐쇄되어 있는 윤리가 아니다.




2. 공간 : 윤리적 행위의 내용으로서 사회-문화적 및 우주의 원동력


인간은 시간이라는 조건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우리는 지금 이 문제에 대해서 윤리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작은 결론을 이끌어 내려고 한다. ‘공간성’은 하나의 인간학적 범위 내지는 구조이다.  따라서 이는 윤리-인간학적 범주로서 설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분석적인 방법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인간학적 범위로서의 ‘공간성’에 관한 살펴보자.  인간에 관한 다양한 전망에서부터 출발하면서 인간 존재의 구조로서의 공간이라는 주제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인간에 관한  다양한 전망이란 인간의 경험적 실재의 영역으로서의 ‘세속성’이라는 인간에 관한 형이상학적 사고라든가, 인간의 인간학적 구도 위에 자리 잡은 공간과 관련되는 다양한 문화적 양상을 수용하는 것 등이다.

윤리적 인간학의 관점에서 볼 때 ‘공간성’은 분명 윤리의 분야에서 다루어져야만 한다.  ‘공간’이 지니는 몇 가지 인간학적 연결과 함께 윤리적 인간학의 질서 안에서 다음 몇 가지 점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2.1. 지리학적 의미의 공간과 윤리적 행위26)


인간은 우주 안에서 생활 할 뿐만 아니라 우주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우주는 인간 안에서 인간적 실재가 되는 것이다.  떼이야르 드 샤르댕이 말하는 우주의 개념27)에 의하면, 우주가 인간의 실재를 향해 진행할 때 일종의 우주의 인간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윤리적 행위는 바로 이러한 우주의 실재에 참여한다.  우주적 요소들은 말하자면, 인간 안에서 윤리적 실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 방법은 우주가 인간적 실재의 지주로서의 하나의 지리학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이러한 언급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몇 가지 예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윤리적 인간학의 질서 안에서 나타나게 되는 영향을 다음의 요인들을 통해서 관찰 할 수 있을 것이다.


- 기후 : 어떤 특정 지역의 고유한 기후로부터 나타나는 “윤리적 생태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윤리적 생태학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추운 지역의 윤리에 대해서, 그리고 더운 지역의 윤리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Siviglia 지방의 기후 조건에 대한 성녀 데레사의 반응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나는 가끔 그 지방에 수도원이 생기는 것이 그리 적합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었다.  내가 항상 느껴온 악마들로부터 더 심한 유혹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지방의 기후에도 관련되는지는 나는 모른다.  나의 삶을 통하여 나 자신은 비겁하거나 마음이 소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마들이 내리누르는 것을 느낀다.  분명히 하느님께서 악마들에게 그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을 것이다.  명확하게 느끼는 것은 나 자신이 과거의 나 자신이 아니라는 점이다”28).  이런 점에서 볼 때, 기후는 윤리적 인간학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후가 인간의 행위와 구조 안에서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29).

- 산악지대 : 산이나 평원, 사막, 그리고 해변 등의 지역에서 나타나는 고유한 덕들과 죄들이 있다.  대한민국의 몇몇 지역을 살펴 볼 때에도 분명 각 지역마다 고유한 행위들이 있음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호남지방에서의 ’자네‘라는 호칭 등):  예를 들자면, 성곽에 사는 주민들의 지역 방위행위, 평야지대에 사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희망의 결핍 등을 들 수 있겠다.30)

- 초목지대 : 초모지역이나 불모지역에서의 다양한 윤리를 생각할 수 있겠다.  즉 이는 토지의 긍정적 가치와 부정적 가치에 관련되어 있다.

- 계절, 시간 등 : 계절 역시 인간의 윤리적 행위에 아주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할 수 있다.  각 계절마다 고유한 덕과 죄들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일정한 시간을 볼 때 역시 시간도 인간들의 행위에 특수한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서 자살이라든가 여타의 인간 행위에 있어서 해가 뜨는 시간이라든가 지는 시간은 그 나름대로의 중요한 면을 가지고 있다.



2.2. 사회-문화적 공간과 윤리적 행위


윤리적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지리학적인 공간만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문화적 공간과 윤리적 행위 사이의 관련성도 부인 할 수 없다.  다음 몇 가지 점들을 살펴보자.


- 국가로서의 공간 : 국가 내에서는 그 어떤 요소들보다도 더 윤리의 동기를 제공해 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이라는 요소가 있다.  주목할 만한 것은 다른 민족이나 국민들의 윤리적 의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인들의 의식은 보다 더 외적인 면에 치중하는 반면에 독일인들의 의식은 내적인 면에 치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스페인 국민들의 윤리적 의식은 신비적이고 절대적인 반면에 앵글로 색슨 족은 실천적이고 현실적이다.  또한 서구의 의식은 비판적이고 관념적이며, 아프리카인들의 의식은 보다 더 구체적이며 활동적이다.  이렇듯이 민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의식의 다양성은 윤리적 의식 안에서도 구분되어 나타나는 것이다.31)

- 문화적 공간 : 서구문화는 그리스 철학 (관념론: 보편적 가치를 중요시함)과 로마법 (법치주의: 법의 가치를 중시함)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윤리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반면에 동양의 문화권에서는 신비적인 음률이 윤리에 접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아프리카의 문화는 보다 구체적이고 활력에 넘치는 형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의 인간학적-윤리적 음률이란 인간의 구체적 행위들을 가치 있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자면, 혼인 윤리나 가정윤리, 경제 윤리의 측면에서 그러한 면들을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리를 적용함에 있어서 지배 혹은 소외의 동력으로서 문화의 특수한 색채를 이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윤리는 서구 문화에 아직 참여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그리스도교 복음화를 위하여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며, 여기에 그리스도교 윤리가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 사회적 공간 : 여기서는 여러가지 사상 혹은 사회 계층들이 윤리적 행위에 다양성을 부여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의식은 보통 각기 다른 사회 계층 안에 꼭 같은 양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귀족계층은 자기네의 지위의 고상함 때문에, 오랜 세월을 거쳐 정화된 윤리적 요구들에 더욱 민감하며, 미래보다는 과거를 더 돌아보면서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고 말할 수 있다.  자본가 계급의 윤리적 의식은 현재라는 순간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거시적인 안목 없이 번뜩이는 직감으로 자신을 맞추어 나감으로써 위기를 극복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노동자 계급은 시대의 징표에 민감하며, 연대성과 집단의식이 강하다고 볼 수 있지만 현실성의 결핍과 복수심 때문에 쉽게 타락하게 되기도 한다.”32)

- 종교적 공간 : 인간들이 살고 있는 종교적 공간 역시 윤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종교적 기초에 따라서 윤리 의식을 세분화 할 수 있다.33)


지금까지 우리는 윤리적 행위의 주체와 윤리적 행위와의 관련 안에서 공간에 관한 인간학적 범위를 살펴보았다 (삶의 윤리라는 측면에서).  그러나 이러한 면들은 윤리를 연구하고 윤리 이론 등을 제시하는 사람들, 즉 윤리학자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윤리의 이론 체계의 측면에서).

윤리학자에 대한 지리학적 공간의 영향은 다음의 두 가지 양상으로 드러난다.  우선, 윤리학자로서 그가 윤리적 주제들을 연구할 때 대상이 되었던 긍정적이고 또한 부정적인 윤리적 가치들에 의해서 윤리학자 자신이 제한을 받는다는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신학자들은 수많은 사람들과의 접촉을 통하여 그들의 덕행을 더욱 고무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하여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의 악습을 교정시키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해 왔다는 것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별히 스페인의 윤리학자들은 그들의 국민이 명예를 중요시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탈리아의 윤리학자들은 거짓말과 진리라는 덕목에 관해서 국민들에게 큰 공헌을 하였고, 독일의 윤리학자들은 그들의 국민이 이 세상의 물질적 재화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영적 보화에 눈을 뜨게 하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고 말한다면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34).

그 다음으로는 지리적 공간이 윤리학자 자신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갖는다는 점이다.  사실 윤리학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약점들까지도 자신들이 속해있는 사회의 시민들과 함께 나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조국이 안고 있는 약점들을 고발하고 비난한다면, 그러한 행위는 그들의 본성적인 경향에서부터 나타나는 현상들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의 민족에 관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별로 흥미로운 연구는 아니지만, 특별히 복고주의 신학자들 (계명이나 교회의 규율, 관습 등을 엄격하게 지키기를 주장) 중에는 시실리 출신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엄격주의자들 중 많은 숫자가 프랑스인들이라는 사실은 (캘비니즘, 얀세니즘 등의 엄격주의: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전체 프랑스를 휩쓸었던 엄격주의적 사상)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다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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