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부정' 혼돈에 빠진 안락사, 그 참된 의미에 관하여 ~

2005. 8. 20. 오전 12:26:15

글자

DENIAL OF

 

THE SOUL     M. 스캇 펙   지음 / 민윤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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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에 빠진 안락사, 그 참된 의미에 관하여

 

 

영혼의 부정                                                                                    김영사

 

 

 

 

M. 스캇 펙

 

전세계적으로 수천만의 독자가 읽고, <뉴욕타임즈>에 12년 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아직도 가야 할 길The Road Less Travelled>의 저자 M. 스캇 펙은 1936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하버드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1963년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했다.

1978년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출간하면서 전세계에서 가장 신망 받는 의학자이자 영적상담자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현재 미국 코네티컷 주에 살고 있으며 밀퍼트 종합병원 정신건강치료센터의 책임자로 있다.

1997년 '안락사'에 관한 본격적인 정의와 문제를 제기한 이 책 <영혼의 부정 Denial of The Soul>을 발표하여 의학계는 물론 대중과 언론에 집중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현재까지 이 분야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민윤기

 

황해도 금천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약학대학과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문명의 종말>을 번역했으며 현재 Seatings Korea의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우리 시대 가장 복잡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안락사`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 '영혼의 부정'에서
안락사의 문제는 의학과 윤리학, 그리고 신학의 경계선에서 무엇 하나 뚜렷하게 정의된 것 없이 부유하고 있기에
저자 M. 스캇 펙은  논의가 무르익기도 전에, 활기를 잃어가는 듯한 안락사를 더 넓은 공론의 장에서 이야기할 것을 주장한다.
 
 
 
 
2002년경에 읽었던 이책의 서문을 옮겨봅니다.
 

 

서  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모든 문제들이 처음부터 밀실에서 논의되기 시작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는 듯하다.

그런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안락사에 관한 것이다.

나는 이 문제가 다시 작은 밀실로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히려 이 문제는 공개적으로 논의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의 상황을 볼 때 이 문제에 관한 논의는 채 무르익기도 전에 그 방향이 좀 빗나가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활기를 잃고 있는 감이 없지 않다.

 이 책의 목적은 바로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안락사에 대한 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논의를 확대시키고 그 열기를 고양시키는 데 있다.

이러한 의도를 갖게 된 동기는 작은 밀실에서 나온 안락사의 주제가 오늘날 그 중요성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논의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다른 수많은 문제에 묻혀 거의 잊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안락사에 대한 문제는 다른 문제가 좀더 만족스럽게 해결되기에 앞서 대중적 합의에 도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우리는 물론 안락사가 이 사회에 항상 존재해 왔음을 알고 있다.

그것이 밀실의 문제였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 문제를 광장으로 끌어내 심각하게 논의하기를 원치 않았을 뿐이다.

열네 살이 되던 1950년, 나는 죽음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라는 존재에 관한 가장 중요한 고민거리는 인생은 유한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도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을 생각해볼 때 만약 누군가 죽어가고 있고, 만약 그가 죽기를 원한다면, 그것과 관련된 원치 않는 불쾌감을 회피하려는 과정을 서두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 이미 안락사의 정확한 개념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성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또한 믿고 있었다.

그후 한 세대가 지난 1957년, 미국의 아주 저명한 신학자였던 헨리 반 두센(Henry Van Dusen) 박사가 그의 아내과 함께 뉴욕 시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동반 자살을 하였다.

그는 자살하기 전에 매우 이성적인 내용의 편지 한 장을 남겼는데, 그 글에서 그는 자살 동기를 노년과 자연사에 따르는 불편함을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만약 좀더 평범한 노년의 부부가 똑같은 이유로 동반 자살을 하였다면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종교계의 유명한 지도자였던 반 두센 박사가 자살을 했기 때문에 가슴이 더 철렁 내려앉았던 것이다.

비록 내가 이전부터 생각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 안락사 문제에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면이 뒤섞여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의 안락사 논의는 종종 너무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그런 양상을 띠게 되었는가에 대한 원인을 따져 보면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논의의 모든 과정이 대부분 어느 한쪽은 옳고 다른 한쪽은 그르다고 판정나는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경기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모든 사람들이, 심지어 교육받은 사람들조차 사회 문제, 예를 들면 임신중절이나 동성애의 문제에서부터 전쟁이나 올바른 식단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단순성과 일차원적 사고방식을 바꿔보려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안락사라는 주제는 복합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안락사에 대해 보편적이고 합의된 정의조차 부재한 실정이다.

안락사가 병에 걸려 있거나 죽어가는 어떤 사람에게 의사나 가족 같은 타인이 행하는 단순한 하나의 행위를 의미하는가, 아니면 아프거나 죽어가는 사람이 어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의미하는가?

또한 안락사에는 환자 자신의 승낙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가, 아니면 가족의 승낙만으로 충분한가?

이것은 다른 형태의 자살이나 살인과 구별될 수 있는가?

안락사는 단순히 생명 유지 장치의 전원을 뽑아버리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만약 안락사의 어느 한 형태가 생명 연장을 위한 과감한 수단을 억제하는 것이라면, 과감한 수단이라는 것과 표준적인 치료 행위와는 어떻게 구별되는가?

안락사와 고통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은 구별되는가?

환자가 받고 있는 고통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왜 안락사 문제에 윤리적 문제가 개입되며, 그 윤리적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이 책의 첫 부분은 사실상 주로 의학적인 의미의 고통과 죽음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경우에 따라 복잡성을 띠기도 하지만 이들 문제는 보통 사람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런 범주에 속하는 문제들을 논의함으로써 일반 대중에게뿐만 아니라 앞으로 맞이하게 될 수십 년의 기간 동안 통용될 수 있는 안락사를 적절히 정의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책의 제1부는 안락사의 정의를 도출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다.

 이 책의 제2부는 주로 비종교적 세속주의의 정신적 문제, 영혼의 문제 및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서 이 책의 제목을 왜 '영혼의 부정 Denial of the Soul 이라고  했는지가 분명해질 것이다.

안락사의 주제가 다른 어떤 것보다 윤리적. 도덕적으로 격렬한 논쟁거리가 되는 까닭은 인간 영혼의 존재에 대한 상이한 신념때문이다.

이 책의 제3부에서는 안락사 문제와 관련된 법률적.사회적 측면에 대해 주로 다룰 것이다. 맨 마지막 부분에서는 안락사 문제가 원만히 다루어지기만 하면 우리의 문명사회에 어떤 궁극적인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나의 의견을 개진할 것이다.

 

이 책은 비록 문학적인 면세어 좋은 형식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급소를 찌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의 구미에는 맞을 수도 있다.

마지막 장에서 안락사 문제에 대한 무간섭과 방임주의적 태도에 일침을 가하고 안락사 문제가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를 때에만 호들갑을 떠는 행태에 경종을 울릴 것이다.

이 문제의 복합적인 면을 두루 섭렵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주장할 수 있지만, 사실 나 자신도 근본적으로는 안락사 문제에 대한 진실을 모두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나도 늙어가면서 겪게 되는 변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다 경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분명히 나는 죽어가고 있다.

이론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실제로 느끼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도 병이 급속히 악화되는 특정한 질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나, 모든 신체 기능이 영구적으로 무력화된 상태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나는 아직 그 상태까지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달라질 수도 있음을 나는 안다.

따라서 독자들은 내가 여기서 쓰고 있는 모든 내용의 상당 부분을 적절히 해석해서 취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반 두센 박사 내외처럼 이미 안락사를 택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그것은 결코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말년을 보내고 있는 나의 가장 깊은 열망은 내가 내린 그 어떤 정의보다도 저 먼 곳에 계시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정죄(定罪)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 안락사 논쟁에 거는 희망 -

저자는 안락사 논쟁이 더욱 뜨거워지고 좀더 열정적이 되기를 희망한다.

안락사 논쟁이 점점 더 힘차게 진행되면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라고 보고 있으며, 죽음과 죽어가는 과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 바로 그것이 활기를 되찾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안락사 논쟁의 제반 이슈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영혼을 생애 처음으로 만날 수 있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안락사 논의는 복합적인 동시에 다면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이 논의는 법률가와 윤리학자들뿐만 아니라 의사와 간호사, 신학자와 사회학자 등 많은 전문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심사숙고해 보아야 하는 주제이기에  무엇보다도 법원이 어떤 판단으로 내달리기에 앞서 네덜란드의 상황에서부터 미국의 안락사 찬성론자들의 심리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보통의 평범한 학자는 물론 엄격한 과학자들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보고 있다.

 

 

 

 

한국은 아직까지 안락사에 대해 보편적으로 합의된 정의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안락사'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삶. 죽음. 영혼의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는 본질적으로 두 가지 문제 밖에 없다.

그것은 삶과 죽음이다.

이 두 문제는 수세기 동안 신학과 심리학에 종속된 채로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문제들이 두 가지 차원에서 동시에 다루고자 할 때, 사고의 단순성을 극복하고 안락사 문제의 핵심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안락사 환자들은 삶의 문제로 겪는 고통만큼이나 죽음의 문제에서 오는 고통도 겪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죽음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조력자살을 택하지만, 오히려 도움을 받으며 그것에 당당히 맞서가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 방학이 끝나가고 있습니다.

남은 방학 기간이  조금 지겹기도하고, 개학이 은근히 기다려집니다.

처음 방학이 시작되었을 때는 푸욱 쉬어야지 했는데, 참으로 바쁜 나날들을 보낸것 같습니다.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봉사도 하고...

오히려 근래에 와서 직장과 집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며 할 일 없이 보낸 것 같습니다.

마냥 논 것만은 아닌데, 요즘은 허무함과 허전함을 동시에 느낍니다.

그렇다고해서 책도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해서, 이 책의 서문과 소개문을  옮겨 보며, 다시 한 번 읽어 볼까 생각중입니다.

내일은 등산도 가는데, 비가 조금만 왔으면 좋겠어요. 비가오는 산행도 기대됩니다.

조금은 운치도 있거든요.

 

학우 여러분, 가볍게 읽으시고 좋은밤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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