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 아시아에서 필리핀 다음으로 가톨릭신자가 많고, 한국교회보다 더 많은 117명의 순교성인을 배출한 나라임을 아는 신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신자들에게는 비행기로 6시간 걸리는 거리보다 더 멀리 느껴지는 베트남교회. 19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 종교에 비호의적인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국내 종교활동이나 세계교회와 접촉이 순탄치 못했던 이유가 크다.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잠재력을 지닌 교회가 바로 베트남교회다.
베트남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우리나라보다 250여년이 빠른 1533년께 중국으로 가던 유럽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이후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선교활동은 1615년 예수회가 진출하면서 본격화한다. 1659년에는 두개의 대목구가, 1666년에 최초의 신학교가 설립된 데 이어 1668년에는 두 명의 베트남 출신 사제를 배출했다.
이후 베트남교회는 1883년 프랑스가 베트남을 점령할 때까지 수십차례 박해를 받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와 같은 제사 문제였다. 중국문화권에 속했던 베트남 역시 조상을 섬기는 유교 사상이 매우 강했기 때문이다. 이때 순교한 이가 무려 13만여명에 달하고, 그 가운데 117명이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베트남 성인 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이어 세번째다.
박해가 종식된 후 베트남교회는 발전을 거듭한다. 그러나 1954년 베트남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북베트남 정부가 교회를 박해하자 많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남베트남으로 피신했다. 꾸준한 교세 증가세를 보이던 남베트남교회는 1975년 북베트남의 승리로 베트남전쟁이 막을 내리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공산정권이 신앙의 자유를 약속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교황청과 남베트남 사이에 맺어진 외교관계는 1976년 통일 베트남 정부에 양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베트남교회는 교회가 국가의 통제를 받는 중국 애국회와 비슷한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주교를 임명할 때 정부와 협의해야하는 것은 물론 신학교 입학생 숫자도 정부가 통제하는 등 정부 간섭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다행인 것은 최근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이 종교 자유를 점차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정부가 사제 서품자와 성탄나무 설치를 크게 늘린 것을 비롯해 1975년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 교회지도자들의 베트남교회 방문을 허용했다.
이와 같은 개방 분위기에 힘입어 베트남교회는 지난 몇년간 높은 신자 증가율을 보여왔다. 앞으로도 베트남 정부가 이러한 친그리스도교 정책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베트남교회 역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베트남교회 신자는 600여만명으로, 인구(8000여만명) 대비 신자비율은 대략 8%선이다. 25개 교구에 40여명의 주교(추기경 2명 포함)가 있으며, 사제는 3000여명. 신학교는 6개(신학생 1000여명)다.
베트남=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이주엽(보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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