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義人) 안에 태어나시는 주님

2009. 12. 10. 오후 4: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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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 13. 서울주보 생명의말씀

       의인(義人) 안에 태어나시는 주님

                                                                                            구요비 욥 신부

  오늘은 전례력으로 ‘장미주일’이어서 사제의 제의색은 연분홍 장밋빛으로 1년 중 가장 화사하고 아름답습니다. 장미는 ‘기쁨’을 상징하니 말씀의 전례 안에서 메아리치는 ‘기쁨’과 상통합니다.

  성경 안에서 기쁨은 먼저 하느님 안에서 용솟음치는 기쁨입니다(필리 4,4). 불어 성경은 제1독서를 ‘주님은 축제의 날처럼 기쁨으로 환성 올리며 너를 위하여 춤을 추시리라!’(스바 3,18) 로 표현합니다. 동방 교회의 한 교부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하며 하느님의 내적 생명 안에 순환운동(perichoresis)이 있다고 통찰하셨는데, 이 단어는 희랍어로 ‘윤무(輪舞)’ 혹은 ‘둥글게 춤추다’에 해당하는 ‘perichoreuo’와 통한다고 합니다.

   성경 원문에 비추어 볼 때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과 더불어 춤추시며 당신의 신적 생명인 기쁨을 통교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이 먼저 인간과의 만남에 가슴 설레이며 기뻐하십니다.

  사실 ‘기쁨’이란 우리가 혼용하는 즐거움, 쾌락과는 달리 인간이 높은 정신적인 상태에서 맛보는 행복을 뜻하는 말입니다.

    “인간은 보다 높은 능력의 단계에서 자기가 알고 소망하는 선(善)을 소유했을 때에 평온과 만족을 느끼며, 그런 기쁨의 상태를 행복이라고 부른다. 이 행복에는 다소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고상한 표현이 기쁨이며, 엄밀히 말하면 이 또한 행복을 가리킨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불변하는 최고선(最高善)으로 알고 소망하는 하느님을 인간 이성으로 깨달을 때 그는 영적 기쁨 또는 영적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토마스아퀴나스).

    이렇듯이 하느님의 생명인 기쁨은 온 누리에 용약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사실은 주님께서 이미 우리 가운데에 와 계신 것입니다. 문제는 가까이 계신 이 주님이 내 안에서 탄생하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 각자 안에 주님의 태어나심이 가능할까요?

  주님은 의인(義人) 안에서 탄생하십니다. 오늘 복음을 볼 때 더욱 그러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삶과 모습은 의인의 전형(典型)입니다. 제가 사목하면서 비신자들로부터 들어온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들의 전통적인 좋은 이미지는‘좀 고지식하지만, 강직하고, 정직한 사람, 법 없이도 사는 사람’입니다. 이 점이 오늘 복음의 의로운 삶과 밀접히 연결되지 않을까요? 군중과 세리와 군인들의 한결같은 질문인‘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요한의 답변은 시종일관 정의(正義)로운 삶입니다(11절-14절).

    우리가 하느님의 정의(正義)를 말한다면 곧바로 인간의 불의와 죄를 엄격하게 벌하시는 무서운 심판관인 하느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복음이 계시하는 하느님의 정의는 이와 반대로 하느님 자신이 당신의 의로움(義)인간에게 내려주시고 당신의 아드님을 통하여 인간의 죄와 불의를 속량해 주시는 구속의 하느님이십니다.  “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16절).

  하느님은 정의를 실천하며 살려는 사람들 안에서 탄생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루카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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