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 -윤 아녜스

2006. 12. 4. 오후 11:39:35

글자
그때 나는 아파트에 살았고 친구는 마당이 좀 넓은 주택에 살았다.

모종 옮기고 새잎 피는 봄에서 여름까지는 우리가 친구 집에 자주 마실을 갔었고

늧은 가을에서부터 겨울엔 그 친구가 우리집에 자주 마실을 왔었다.

나는 친구집의 마당에 아무렇게나 가꾸지 많아도 우거지게 잘 커는 여러 가지 일년생

풀꽃들이 좋아 자주 들락 거리고 씨앗을 받아오거나 모종을 얻어 오기도 했다.

어릴적에 엄마 손을 잡고 둑길을 가거나 큰집 제사에 가느라 오빠랑 아버지 따라

산길을 따라 고개를 넘거나 강변이나 들녘에서 자주 보고 정들었던 들꽃이나

그당시 집집마다 흔하디 흔한 채송화 맨드라미 봉선화 다알리아 여름 밤의 하얀 박꽃등을

볼수 있어서 일상에 쫓기면서도 자주 행복했다.

친구와 나는 엄마생전에 엄마와 자주 보아왔던 꽃이라고 해서 엄마 꽃이라고 했고

잊혀져 가는

우리 유년기의 그리운 꽃들이 다시 집집마다 화단에 토분에 심어지길 바랬다.

그래서 누가 꽃을보고 좋다고 하면 씨앗를 받아주고 모종을 퍼다 날랐다.

유년기의 그리운 꽃들을 보면 내가 좀 착해 지는 것 같기도 하고 고향을 떠나 도회지에서

바쁘게 살면서 잊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고 싶어질때가 있다.

그러니까 황폐해진 심성이 회복 된다고 보면 된다 살면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마당에 가득한 풀꽃들로 만족해야지 그것도 모자라 우물 둘레에다 앵두 나무를 심어 보라니

어디 시골 폐교에 가서 녹슨 양철 두레박을 구해와서 우물에 걸쳐 놓으라니 고향 가면

고향 들꽃을 몇포기 파와서 화단에 심어보자고 했다.
물론 땅심과 하늘 볕을 받아 잘 자라겠지만 친구는 농사를 대충 하는데도 여러 가지
꽃이며 유기농 야채가 심어 놓기만 하면 우거지게 잘자라는 오지랖 넓은 친환경 적인

품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파트에 살 때 두 마리였던 강아지가 네 마리로 늘어나고 동네에서 버린 장독은

다 끌어다 놓고 그 둘레에다 봉선화를 심었는데 그 꽃 때문에 일상에 지치면서도

여름 한철이 참 행복했다.

나는 땅거미가 지고 여름 저녁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초 저녁을 좋아하는데

저녁 바람 속을 걸어 저녁 미사에 다녀오거나 친구집에 마실 가는걸 좋아했다.

그날도 저녁 바람에 홀려 어디 가고 싶은걸 참고 있는데 친구 한테서 전화가 왔다.

가족 모두 외식을 가는데 우리 가족도 다 같이 가잔다 그런데 일단 자기 집으로

오라고 그러네 생전 외식이라곤 모르는 여편네가 무슨 변덕이 났나?

왠 선심인가 하고 돈을 좀 챙겨 넣고 아이 둘이랑 남편과 같이 갔더니 ,

친구가 젓은 앞치마를 두른채 우릴 반기며 뜰 감나무 밑 투박하게 얼기 설기 만든

식탁으로 안내한다.

그리고는 부엌에서 장만한 음식을 부부가 줄줄이 내어 온다.

자 외식 합시다 돈 안받는 고급 한정식입니다. 많이 자시고 또 생각나면 다시 오세요 한다.

상차림은 돼지 고기 고추장 뽁음에다 상치와 깻닢과 호박잎 숙쌈에다 물고추 갈아 넣고

열무와 얼갈이 배추를 넣고 물기가 자작한 김치가 나오고 된장 찌게와
더덕 장아찌가 나오고

그리고 후식으로 복숭아와 삶은 풋콩과 더운 물에 허브잎을 우린 차가 나왔다.

여름 밤의 참 멋진 외식이였다.


(2005. 06. 16 13:04:37)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옛날우리살아간이야기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