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 월드컵 - 파도타기 기고 /
나는 언제나 ‘스타일리스트’를 동경해왔다. 다락방에서 책을 읽던 시절, 그 때 김승옥과 황석영의 소설은 아름다웠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문득 그들이 파놓은 문장의 깊은 골짜기처럼 검은 하늘에 별들이 점점이 놓여 있었고, 그 별들 사이의 길들이 아픈 마음의 행로를 되물었다. 밤하늘에 번진 스타일리스트의 문장은 단단하고 아름다웠다.
그의 몸짓이 공간을 창조
어떤 인연으로 박찬욱 감독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의 어디쯤에서 ‘스타일리스트’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그때부터 박찬욱 감독의 말이 상당한 부피를 갖기 시작했다. 그는 말했다. “작가는 결국 스타일로 말한다. 내용은 형식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며, 예술가는 바로 그 형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나는 그 말에 아낌없이 동의했다. 오늘의 화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다름아닌 박주영 선수다. 지난 화요일 밤 세네갈과의 평가전. 후반 21분 박주영이 그라운드에 나섰다. 그리고 8분 뒤, 그는 오른쪽 공간으로 달려가는 정경호에게 섬세한 패스를 한 뒤, 재빨리 상대 문전으로 뛰어갔다. 세네갈의 수비수가 박주영을 의식했으나, 박주영은 자신의 존재감을 잠시 그에게 환기시키더니 서너걸음 뒷걸음질쳤다. 갑자기 텅빈 공간이 창조되었다. 때마침 ‘붙이면 젖혀라’는 공식처럼 정경호의 크로스가 올라왔으며, 박주영은 가슴으로 공의 멀미를 가볍게 위로하고는 슬며시 뒤로 물려주었다. 그리고 김두현의 슛, 골인!
10초도 안되는 순간에 보여준 박주영의 몸놀림은 왜 그가 박주영인가를 확실히 보여준 강력한 장면이다. 나는 그에게서 자유자재의 스타일리스트를 발견한다. 골게터의 몸속에는 원초적으로 내장된 특별한 감각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그는 증명해왔다.
그의 육체는 골을 지향한다. 골문을 향한 일방통행로로 그는 달려간다. 그런데 의지 과잉이나 숭고한 노이로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흥미로운 게임을 시작한 어린 아이의 눈매를 떠올리게 한다. 박주영 이전에 축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놀라운 스피드로 직선주로를 달리는 선수도 있었고, 강력한 한방의 골게터도 많았다. 그것 역시 아름다운 ‘또 하나의 바둑’이다. 그러나 추월하는가 싶더니 짐짓 속도를 잠깐 멈추고는 느닷없이 우측 백미러의 한점으로 나타나 순식간에 거침없이 하위 차선의 심장부를 관통해버리는 감각의 스피드는 역시 박주영이다. 일컬어 ‘천부적인 감각’이라고 했던가.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연이은 감독 경질과 베트남·오만 등과의 졸전으로 한국 축구가 동맥경화증에 걸려 신음할 때, 박주영이라는 싱싱한 상상력의 소유자가 등장했다. 그에 대한 호기심은 금새 열광으로 바뀌었다. 이를 ‘박주영 신드롬’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다만 그것이 축구장 안의 일일 뿐인가. 2002년의 광장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이 한반도가 뭔가 대단하게 변할 것처럼 축제를 나눴으나 그 이후로 우리 사회는 탄핵, 교육, 부동산, 전 분야의 양극화 등으로 오히려 더 어수선해졌다. 축구장에서나마 한시름 놓을 수 있었으나 대표팀이 부진했다. 그때 박주영이 나타난 것이다. 아, 저렇게 창의와 상상의 스타일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는 그런 욕망을 박주영에게 투영했다.
저기 우리의 욕망이 뛰고 있다
물론 축구는 축구다. 박주영이 안정환 이천수 설기현 대신 선발로 나설 지는 의문이다. 안정환의 경험과 설기현의 측면돌파는 중요한 자산이다. 박주영이 반드시 선발 주전일 필요는 없다. 그저께 증명하였듯이 후반 교체 투입 뒤 8분 안에 골을 넣으면 되는 것이다. 원컨대 그것이 싱싱한 감각이 빚어낸 아름다운 장면이길 바란다. 우리에게는 그라운드의 스타일리스트가 필요한 것이다.
정윤수/ 축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