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일지 81

2006. 5. 16. 오후 12:21:31

글자
 요한 복음 14장 27-31ㄱ절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1.인사유명(人死留名), 호사유피(虎死留皮)     노성호 신부

‘황산벌’이라는 영화의 결말 부분을 보면 계백 장군이 황산벌 전투에 나가기 전에 사랑하는
부인과 핏덩이 같은 어린 자식들에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라는 말을 하면서 사약을 먹고 먼저 죽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있던 부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고,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는 것이여.”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계백 장군이
명예라든지 자신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사랑하는 가족을
몰살시키면서까지 전쟁에 뛰어들지 않았을 테고, 만일 호랑이 가죽이 별로 귀한 물건이
아니라고 평가된다면, 호랑이는 죽음을 면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계백이라는 인물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고, 호랑이의 가죽도
주가를 올리면서 팔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많은 남성들은 계백과 같은 웅지를
꿈꾸고 있고, 호랑이는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예수님도
평화를 남기기 위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보면 고난과 죽음도 피할 수
있었고, 남들이야 어찌 되든 별로 상관하지 않아도 될 법했는데, 그분은 친히 인류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시고 십자가를 지신 채 골고타에 오르셨으니
말입니다. 인류를 사랑하신 까닭에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시어 우리에게 오신 것도 모자라
당신의 생명과 평화까지도 내주셨으니 말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나중에 죽어서 무엇을 남기게 될까요? 아니 우리는 무엇 때문에 죽게 될까요?

 넓은 신앙

나는 성실한 힌두인임에도 불구하고, 내 신앙에서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와 조로아스터교의 가르침을 발견한다. 따라서 내가 믿는
힌두교는 어떤 면에서는 집합체처럼 보여, 어떤 사람들은 나를 절충주의자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한 사람을 절충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신앙이 없다는 말이지만,
나의 신앙은 플리머스 형제단이나 가장 광신적인 무슬림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리스도교를 반대하지 않는 폭넓은 신앙이다. 나의 신앙은 가능한 타종교에 대한
폭넓은 수용을 기본으로 하는 믿음이다. 나는 광신적인 행동을 한 사람을
매도하기를 거부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그 사람의 관점에서 그 행동을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나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이 넓은 신앙이다. 이 신앙은 어느 정도
난처한 입장에 서기도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그럴지 몰라도
나는 난처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도뿐 아니라 세계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신앙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며, 그렇게 된다면 세계는 오늘보다
살기에 훨씬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나는 타종교에 대한 가장 광범위한 수용을
청하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자기 스스로 종교인의
입장에서 모든 종교를 살펴보기를 촉구한다. 나는 이상적인 나의 인도에 한 종교,
예를 들어 완전히 힌두인만 또는 완전히 그리스도인만 또는 완전히 무슬림만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서로 나란히 타종교들과 함께 일하며
타종교를 인정하는 자세를 갖추기를 바란다.
로버트 엘스버그 | 생활성서사 | <간디, 그리스도교를 말하다>에서

 

 

2.축구 이야기

 

 

 

詩와 축구의 아름다운 만남 .............김화성 기자

 ' 내 공은 한쪽이 찌그러졌다./어렸을 적부터 난 누르고 또 눌렀지만/ 내 공은 늘 한쪽만 둥글어지려 한다" (권터 그라스의 공은 둥글다)

 그렇다. 공은 둥글다. 지구도 둥글다. 그러나 삶은 그렇지 않다. 세상도 그렇지 않다. 둥근곳도 있고 찌그러진곳도 있다. 잘사는 곳이 있으면 못 사는 곳도 있다. 삶은 늘 불완전하다. 세상도 역시 그렇다.

 

 독일이  월드컵(6월9일-7월 9일.12 도시)을 앞두고 "월드컵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있다.

 괴테와 하이네를 배출한 나라답게 "축구와 문학의 만남"이 이뤄졌다. 1999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양철북"의 작가 권터 그라스(78) 와 200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급진 여류작가 엘프리데 엘리네크(59) 가 있따라 축구시를 선보였다.  일제 아이힝어, 올리케 드레스너, 페테르 에스테르하지, 프란초벨, 로베르트 게른하르트, 우어스 버드마이어 등 또 다른 6명의 독일 작가들도 앞 다퉈 축구시를 내놓았다.

 

 이들의 시는 5000장의 포스터로 만들어져 개막전이 열리는 뭔헨과 결승전이 열리는 베를린등 8개 도시의 길거리에 7,8월 두 달 동안이나 나붙었다.  지하철역이나 시내버스 등 곳곳에도 이들 시가 걸렸다  작가들도 각 도시를 돌며 자신의 시를 낭송했다.

 

 이들 시는 축구 명언을 모티브로 해 지은게 특징이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베른의 기적(영화로도 만들어짐) 을 연출한 제프 헤르베르거 서독 대표팀 감독의 명언 "공은 둥글다"도 그중 하나.  당시 서독은 푸스카스가 이끄는 세계 최강 헝가리에 예선에서 3-8로 졌지만 결승에선 4-2로 이겨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2004 유럽축구선수권(유로2004) 에서 홈팀 포르투갈을 1-0으로 누르고 그리스를 승리로 이끈 독일 출신 오토 레히겔 감독의 "경기는 90분 동안 계속된다"도 소재로 쓰였다. "경기는 90분 동안 /계속된다. 90분은/ 얼마나 길까 ? 그것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얼마나 길까? 그것을/ 누가 과연 참을 수 있을까? (일제 아이힝어)

 이 밤에 "진실은 그라운드에 있다" "다음 경기가 늘 가장 어렵다" "게임이 끝나면 모든 것은 게임 전과 똑같다" 등의 명언들도 주옥같은 한 편의 시로 다시 피어났다.  이 중 페테르 에스테르하지의 시 "어느 늙은 축구선수의 노래" 는 삼팔선-사오정-오륙도"로 비유되는 요즘 한국 직장인들의 삶을 얘기하는 것 같아 가슴이 찡하다.  공을 차고 싶은데 공이 없다. 운동장도 없다.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드디어 인생 종료 휘슬이 울린다.

 다음 경기가 늘 가장 어렵다. 아니다 / 가장 어려운 것은 경기가 없을 때다. 경기가 없다 /그래도 경기는 90분 동안 계속된다./공이 없다 그래도 공은 둥굴다/ 그라운드가 없다 .그래도 진실은 그곳에 있다 ?그래 그런 것 같다/ 종료 휘슬이 불면 경기는 끝난 것이다.

 

 늙은 축구선수는 갈 곳이 없다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운동장에 있다. 독일의 극작가 한트 한트케는 "페널티 킥을 마주한 골키퍼의 불안" 이라는 작품으로 "현대인의 삶"을 형상화한 바 있다. 한트케는 "축구공은 불확실한 것. 행복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징"이라고 말한다.

 

 축구시는 친구나 지인들에게 전자 우편 카드로도 보낼 수있다(WWW.ARTE-TV.DE/POESIE 참조) 이 행사를 주관한 독일 정부와 후원사인 아르테 TV 는  독일 여성 작들의 "축구 에세이"축제를 열 예정이다. 축구와 문학이 만나는 나라. 내년 독일 월드컵은 아무래도 詩같은 월드컵이 될것 같다.(펌글)

 

 

 

바보들은 축구를 보면 축구만 이야기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인생도 같이 이야기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축구 알아야 보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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