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성탄이란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으로 인류에게 보내주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모든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으로 태어 나심을 말하며 이를 기념하는 날이 성탄축일 (크리스마스) 입니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루까 2:14)
갑자기 수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느님을 찬양 하였다고 루까복음은 전합니다.
성탄은 모든 사람이 마음에 구원의 희망을 주고 기쁨이 넘치는 즐거운날 입니다.
전례적으로 성탄절(성탄시기)은 12월25일부터 주의공현 대축일(1월6일;한국교회 에서는2일과 8일 사이 주일에 지냄)까지 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기 위하여 베들레헴 외양간을 본 떠 구유를 만들고 성탄미사때 말씀의 전례와 함께 아기예수를 구유에 모시는 장엄한 행열을 하기도 하고 아기 예수께 조배드리며 정성껏 예물도 드리고 신자로서의 새 삶을 다짐합니다. 또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살아있는 상록수에 온갖 은총의 색실과 색등 그리고 세상의 빛을 상징하는 별 등을 장식합니다. 그냥 보기좋은, 화려한, 예쁜 장식이 아니라 그 장식들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현존을 묵상하는것 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산타크로스를 통하여 선물을 줌으로서 예수님은 은총을 주시는 분 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풍습을 이어 갑니다.
나는 성탄절이 되면 늘 생각나는 일이 두가지 있읍니다.
하나는 새벽송을 돌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밤 늦도록 교회에서 성탄장식을 하다가 집에서 쫓겨난 일 입니다.
요즈음은 사회가 복잡해져서인지 성탄절 새벽송을 거의 들을 수 없지만 약 40년 전에는 교회에서 자정예배(그 당시 개신교회)를 보고는 주로 성가대가 주축이 되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빛의 상징, 촛불을 들고 거의 새벽 서너시 까지 가가호호 대문 앞에서 “고요한밤 거룩한밤 …….,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을 부릅니다. 동네 이웃들에게 아기 예수님 오심을 알리는 거지요. 그러면 사탕이나 과자등 먹을것을 주는 집도 있고 또 수고한다며 따뜻한 보리차를내어 주는 집도 있지만 숫제 인기척이 없거나, 난데없이 “잠 자는데 시끄러워” 고함치는 소리, 한번은 찬물 세레를 받은적도 있읍니다. 극히 드문 일이었지만……, 그래서 다음부터는 교회표시(십자가)가 대문옆에 붙어있는 집만 골라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읍니다. 그 당시에는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지만 성탄전야에는 해제되거나 새벽송 다니는 성가대는 통행을 허용했읍니다.
옛날에는 눈도 많이 왔고 유난히도 추웠던 것 같읍니다. 벙어리장갑에 호호 입김을 불다가는습기가 차서 손이 더 시려지기 전에 양쪽 겨드랑이 사이에 넣고서 눈밭길을 뒤뚱이며 몇 시간씩 헤메며 예수님 오심을 알리던 그 시절이 아련히 그립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새벽송은 약 30 년전 휴전선 중동부전선 최전방에서 보내던 군대생활중 부대 군종사병을 겸 했기에 우리 부대 신자들을 인솔하여 마을에 내려가 민간인 교회에서 자정예배를 보고 그 교회 신자들과 함께 영하의 추위속에서 부대장 사택에서 시작하여 영외근무자 집들과 교우들의 집을 돌며 새벽송을 부르던 것 이었읍니다.
수십년전의 일 이지만 마치 엊그제 일처럼 뽀득뽀득 눈 밟는소리가 귀에 쟁쟁거리며 너무나도 그립습니다. 그때 그 시절이……..
우리집은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적인 유교가정으로, 더우기 아버지께서는 한문학을 전공하신 분 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유일하게 어릴 때부터 스스로 교회를 찾은 나는 간혹 형제들 로부터 예수쟁이로 놀림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내가 고등학교 일학년때 맞은 성탄 이었읍니다. 대학입시경쟁이 요즈음 같지는 앉았지만 고2가 되면서 부터는 본격적으로 입시준비를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 해 성탄 이틀을 앞두고 교회에서 밤이 늦도록 색종이를 잘라 체인을 만들고 방울울달고 솜으로 눈을 뿌리고 성극무대장치를 하며 분주하다 보니 새벽2시가 넘어 버렸습니다. 그때 부터 집에 들어갈 일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 했습니다. 교회에서 집은 바로 길 건너 였지만 그렇게 멀어만 보였습니다. 몰래 들어가서 언제 들어온 지 모르게 얼렁뚱땅 넘길 심산으로 까치발까지 했지만 결국 아버지께 들키고 말았습니다. 평소 늘 책과 함께 계시던 아버지는 시조를 즐겨 읊으시는 매우 평온하신 분 이셨습니다. 아마 아버지께 야단 맞은건 내 평생에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이었던겄 같습니다.
“그렇게 좋거든 교회에 가서 살아!!!”. 결국 그 추운 겨울새벽 슬리퍼를 질질 끌며 집에서 쫗겨나 갈 곳이 없어 대문 밖 처마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쁘게 맞이해야 할 성탄을 추위에 떨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체험해야만 하는 어이없는 성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 꺼지지않는 신앙의 불씨가 나를 견디게 했고 시련을 극복하면 신앙의 뿌리는 더욱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으며 바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성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예언자 이사야가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려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7:14) 라고 말한 바대로 이루어진 날이 성탄 축일 입니다.
임마누엘이라 함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천년전 이 세상에 오시어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와 늘 함께 하실 것입니다.
동방박사 세사람은 아기 예수님께 황금(왕께 드리는 선물)과 유황(신, 하느님의 아들께 드리는 선물)과 몰약(죽음을 상징, 예수님의 인성)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우리는 이번 성탄에 아기 예수님께 무었을 선물로 드릴까요?
비록 소나무에 반짝이는 장식은 못 했더라도 우리들의 마음속을 온갖 색등과 별들로 장식하여 환한우리의 신앙의 빛을 밝혀보는 2006년 성탄을 맞으시길 기도합니다.
Beaver Dam에서 권 순직 스테파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