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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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몰루아,루가이드(molua, lughaidh)
축일 : 8월 4일
성 몰루아는 가르타크 출신인데,
어릴 때부터 목동생활을 하였다. 그 후 그는
뱅고르로 가서 성 꼼갈의 지도를 받고
사제가 되었는데, 그의 덕과 능력이 탁월하여
킬러 대수도원장으로 임명되었던 것이다.
임종하는 자리에서 성 몰루아가 제자들에게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그대의 땅을 열심히
개간하시오. 그러면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이
풍성하게 딸것이오. 영혼이 풍성하면 안정이 있고,
안정이 있는 사람에겐 참 신심이 따를 것이며,
참 신심의 목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몰루아는 살아있는 생명이면 무엇이든 죽이지 않았다.
그가 운명할 때 새들이 우짖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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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John Mary Vianney)
축일;8월 4일
이상을 가진 사람은 장애를 극복하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도 과감하게 실행한다.
요한 비안네는 이상을 가진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사제가 되기를 원했으나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못했기 때문에 신학 공부를 잘 해낼 수가 없었다.
결국 라틴어 강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신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나 사제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그는 개인 교수를 찾았다.
책과의 오랜 투쟁 끝에 요한은 마침내 사제
가 되었다. 불가능한 행위를 필요로 하는 상황들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요한이 주임 신부로 있던
아르스 본당에는 편안한 생활에 젖어 신앙에는
무관심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이상은 "일부
악마들은 오로지 기도와 단식으로만 쫓아 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엄격한 단식과 짧은 수면을 통해
자신을 이끌어 갔다.
그는 카타리나 랏사뉴와 베네딕타 라르데트와 함께
소녀들을 위해 섭리의 집을 설립했다.
그들은 이 섭리의 집을 만드는 데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하느님께서 도와 주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요한 비안네의 뛰어난 점은 고해 신부로서의
업적이다. 겨울에도 그는 하루에 11,12시간 동안
성사를 주었고, 여름철에는 하루에 16시간씩이나
고해 성사를 주었다. 만일 그가 사제의 사명에
헌신적이 아니었다면 매일매일 자신을 아낌없이
주는 그런 일은 결코 견디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곧잘, 하고 싶었으나 할 시간이
없어 하지 못한 일들을 하기 위해 은퇴를 기대한다.
그러나 요한 비안네는 신부는 은퇴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의 명성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신자들에게 봉사하는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그는 수면 시간을 짧게 가졌고 자주 마귀의
방해를 받았다.
이상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가
항상 넘치는 힘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설명 ; 물질적 안락에는 강한 애착을 가지면서도
종교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것이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현상인 것 같다.
만일 외계에서 온 사람이 우리를 관찰한다면,
그는 우리가 목적을 향해 가고 있는 순례자라고는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 비안네는
항상 목적을 가지고 여행을 한 사람이었다.
인용 ; 요한 비안네 신부는 전례적인 기도를
권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개인적인 기도는 여기저기 흩어진 밀짚과도 같다.
만일 당신이 그것에 불을 붙인다면 조그마한
불꽃이 일어날 것이지만 밀짚을 다발로 모아서
불을 붙인다면 하늘로 치솟는 기둥 같은
큰 불꽃이 일어날 것이다.
공동 기도는 이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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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골 농부의 아들로서, 1805년부터
1815년까지 사제직을 위하여 공부하였는데,
그의 성적은 매우 부진하였고 또 기약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사실, 다른 어떤 자격보다도
열렬한 신심과 좋은 뜻을 참작한 교회가
그를 사제로 서품하였다. 1818년, 그는
한적한 시골마을인 아르스-앙-동베스의
본당 사제로 발령받았다. 그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이나 봉직하면서
주민들에게 열렬한 신심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설교자와 고해신부로 이름이
퍼져나가니, 시골의 한적한 마을이 순례자들로
북저대기 시작하였다. 만여 명의 사람들이
들이닥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는 하루에
18시간 동안이나 고백소에서 보냈는데,
그의 동료 사제들은 그를 잘못 판단하고서,
무식하고 지나치게 열성적이며 허풍선이라고
힐난하곤 하였다. 이에 대하여 그의 주교는
"저 신부만큼이나 모두 미쳤으면 좋겠다" 고
하고, 그를 옹호하였다. 이렇게 열심한
그 역시 가끔씩 사탄의 유혹을 받기도 하였다.
그의 성품은 지극히 단순하였고, 충고는
간단 명료하였으나 신심이 차고 넘쳤으며,
직선적인 설교를 하였다. 순례자들의 소란,
끊임없는 고백성사 요구 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였던 것이다. 그는 단지
세번 아르스를 떠났는데, 그것은 모두
수도원에 잠깐씩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는 과로로 운명하였다. 1929년,
교황 비오 11세는 성 요한 비안네를
본당 사제의 수호 성인으로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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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이아(Ia)
축일 : 8월 4일
불확실한 근거이긴 하지만,
아마도 이아는 희랍 여인으로서 종의
신분인 듯하다. 그녀는 페르샤 여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데 큰 성공을
거둔결과, 페르샤의 사포르 2세의 크리스챤
박해 때에 체포되었다. 그녀는 한달 동안
감옥에 갇혀 온갖 고문을 당하여 배교하기를
강요당하였으나 죽음으로 신앙을 지키므로,
끝내는 참수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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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시트니(Sithney)
축일 8월 4일
영국 출신으로 브르타뉴(Bretagne) 지방으로
이주한 성 시트니는 그곳에서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에 대한 전설은 세이길(Saighir)의
주교 성 키아란(Ciaran, 3월 5일)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브르타뉴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어느 날
하느님께서 성 시트니에게 나타나시어
젊은 소녀들의 보호자가 되라고 하셨다.
그러나 성인은 다른 일을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왜냐하면 젊은 소녀들이 남편을 구하도록
도와주는 등 수많은 그들의 요구들 때문에
결코 평화스러운 날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여자보다는 차라리
미친개를 돌보겠다고 아뢰었다. 그 날 이후
성 시트니의 우물에서 병들고 미친개들을
낫게 하는 물이 나와 그런 개들을 돌보았다고 한다.
그는 세즈니(Sezni)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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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가비오(Agabius)
축일 8월 4일
성 아가비우스(또는 아가비오)는
이탈리아 베로나 교구의 초기 주교로
믿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다른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그의 실존 여부 또한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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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리스타르코(Aristarchus)
축일 8월 4일
그리스 테살로니카 태생의
성 아리스타르쿠스(또는 아리스타르코)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의 전교여행의 동료
중 한 명이다(사도 20,4; 27,2; 필레 1,24).
그는 에페수스(Ephesus)에서 사도 바오로와
함께 체포되어 같이 투옥되었다.
전승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테살로니카의 초대 주교이며 네로 황제 때에
로마에서 사도 바오로와 함께 참수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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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에우프로니오(Euphronius)
축일 8월 4일
성 에우프로니우스(또는 에우프로니오)가
프랑스 투르의 주교로 재직하는 동안
(556-573년)에 그 도시가 불타 폐허가
된 일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투르를 재건설하는데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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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엘레우테리오(Eleutherius)
축일 8월 4일
성 엘레우테리우스(또는 엘레우테리오)는
타르수스(Tarsus)에서 순교하여 그곳에 묻혔다.
그의 무덤은 유명한 순례지가 되었고,
그의 순교 이야기는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다지 신뢰할 만하지는 않다.
콘스탄티노플에는 그를 기리는 성당이 세워졌다.
볼랑디스트(Bollandists,
성인전집 Acta Sanctorum을 편집하여
간행한 벨기에의 예수회 학자들을 가리키는 말)는
2월 20일에 축일을 기념하는
성 엘레우테리우스 주교 순교자와 그를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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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페르페투아(Perpetua)
축일 8월 4일
성녀 페르페투아는 분명 기혼자였던
사도 베드로(루가 4,38-39)의 아내로
알려져 있다. 일부 자료들에서 사도 베드로의
아내는 요안나(Joanna), 콘코르디아(Concordia),
헬레카(Heleca)로도 불린다. 그런데 보다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따르자면
성녀 페르페투아는 사도 바오로(Paulus)
또는 베드로에 의해 개종한 로마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개종한 후 자신의 남편과 후에
순교한 아들 성 나자리우스(Nazarius)도
개종시켰다. 그녀의 유해는 밀라노(Milano)와
크레모나(Cremona)에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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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테르툴리노(Tertullinus)
축일 8월 4일
성 테르툴리누스(또는 테르툴리노)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 중에 순교하였다.
전승에 의하면 그 후 이틀이 지나지 않아
그는 사제로 서품되었다고 한다.
오늘의 성인(8월4일)
2014. 8. 1. 오전 6:3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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