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7월22일)

2014. 7. 22. 오후 4:46:05

글자

♡7월 22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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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y Magdalen)

축일 7월 22일 

성모 마리아를 제외하고 성서 속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보다 더 영광을 입은 여인은 없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비난받는 수호 성녀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어 드린
무명의 죄많은 여인으로(루가7,38)교회 안에서
끊임없이 전해 내려온 전설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서 학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즉 막달라의 마리아를 두 사람으로 혼동케 하는
성서적 논거는 없다고 지적한다. 마리아 막달레나,
즉 막달라의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일곱마귀를
쫓아 내신 바로 그 사람이었다.

최악의 경우 지독한 마귀에 걸렸던 사람,
어쩌면 중병이 들었던 사람임을 암시한다.
도미니코회의 W.J.헤링톤 신부는
'새 가톨릭 주해서'에서 "'일곱마귀들'이
마리아가 비도덕적인 생활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라고 서술했다. …그녀의
비도덕적인 생활을 언급하는 것은
루가 복음 7장 37절에 나타나는 무명의 여인과
동일하게 여기는 오류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예수회의 에드워드 맬리 신부는
그녀에 대한 후기 서구의 낭만적인 전설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서 주석'에서 그녀는
루가 복음 7장 37절에 나오는 죄 많은 여인과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분수에 지나칠 정도로 예수와 그의 열두 제자를
도와 준 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예수의 모친과 함께 십자가 옆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수 부활을 최초로 알게 된, 선택받은
'공식적인'목격자 중의 한 사람이며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 중의 하나였다.

설명 ; 마리아 막달레나의 '그릇된 정체'는
19세기 동안 계속 묵인되었다. 지금은 그녀가
동일인이 아니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 모두는 우리 죄를 무시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하느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녀와 마찬가지로
예수 부활의 증인들이라는 사실이다.

이야기 ; 오늘날 복음서(요한20,1-2,11-18)는,
마리아가 예수께서 동산에 서 계신 것을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비로소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전해 주고 있다.
갑자기 주님께 대한 그녀의 사랑이 넘쳐흐른다.
(이 축일의 제1독서 아가 3,1-4에
"나는 놓칠세라 임을 붙잡고" 라고 되어 있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붙잡지 말고 어서
내 형제들을 찾아가거라."라고 하셨다.
아마도 완전히 새로운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분이 살아 계실 때에 가능했던
관계보다 더욱더 깊은 신앙 속에 머무르게 하는 관계이다.

성요한은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는 예수의 승천이
부활의 완성임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처음에 사도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부활에 대한 그들의 증언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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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는 복음서에서
“일곱 마귀가 나간 막달라 여자라고 하는 마리아”
(루가 8,2)로 묘사되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그 밑에 서 있었으며(요한 19,25),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일요일 이른 아침에 먼저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마르 16,9),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린 사람도 그녀이다(요한 20,11-18).

복음서에 언급된 또 다른 마리아는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가 7,36-50)와
성녀 마르타(Martha, 7월 29일)의 동생인
베타니아의 마리아, 그리고 클레오파(Cleophas)의 아내
마리아(4월 9일)가 있으나, 위의 죄 많은 여자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서방교회의 전승에서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로 보고 통회와 관상의
이상적인 모델로 믿어왔다.
중세 시대에 있었던 3명의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 속에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사도 성 요한(Joannes)과
약혼한 사이였다고도 한다.
성령 강림 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모님과
성 요한과 함께 에페수스(Ephesus)로 가서 전교하다가
그곳에 묻혔다고 전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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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메넬레오(Meneleus)

축일 7월 22일 

성 메넬레우스(또는 메넬레오)는 프랑스의
앙주(Anjou)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샤를대제(Charlemagne)와 가까운
동맹이었고 항상 전심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했다.
그가 성년이 되었을 때 그의 부모는 청혼이 들어온
영주의 딸과 약혼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오로지 하느님만을 섬기기를 원했던 그는
고향을 떠나 오베르뉴(Auvergne)로 가서
코메리(Cormery) 수도원의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7년 동안 성 에우도(Eudo) 원장의
지도를 받으며 살았다.
그런 다음 그는 클레르몽(Clermont) 부근 메나 수도원을
복구할 원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는 오베르뉴와 앙주에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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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반드레지실로(Wandregisilus)

축일 7월 22일 

성 반드레지실루스(또는 반드레지실로)는
베르됭(Verdun) 인근에서 태어났고,
카롤링 왕가의 창시자인 피핀의 집안이다.
그는 철이 들자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다고베르트(Dagobert) 왕궁으로 보내져서 착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였고, 자신의 뜻과는 반대로
부모에 의해 결혼을 해야 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항상 수도생활을 꿈꾸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안 아내도 그를 인정하여
남매처럼 살다가 각자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처음에 그는 몽포콩 수도원에서
성 발데리쿠스(Baldericus)의 지도를 받다가
완전한 독수생활을 위해 두브 강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여기서 움막을 짓고 5-6년간 철저한
생활을 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다.
그 후 퐁트넬(Fontenelle) 대수도원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는 특히 주민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므로 그는 대수도원의 수도자들보다 인근의
농부들과 지내는 경우가 더 많았고, 그의 높은
인품에 감명한 개종자들이 나날이 늘어났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위로이자 보호자이시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제자들의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반드릴(Wandrill)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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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벤노(benno)

축일 : 7월 22일

벤노는 스바비아의 뢰린겐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성 헤르만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곧 건축술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훌륭한 건축사가 되었는데, 헨리 3세 황제의
"공식 건축사"로 임명되었다. 그의 놀라운
건축술로 지어진 대성당은, 1030년에 시작된
스피어 대성당, 1047년에 착공된 힐데샤임 대성당의
학교가 있다. 그런 혁혁한 공로에 따라 그는
1068년에 오스나부룩크의 주교가 되었다.
그가 주교가 된 뒤에 정치문제에 연류되어
곤욕을 치룬적도 있으나, 그의 올바른 신심과
교구민들에 대한 사랑은 뛰어나서 우러러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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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신티케(Syntyche)

축일 7월 22일 

성녀 신티케는 복음선포에 있어서 사도 바오로의
동료 협력자였다. 사도 바오로는 필립비서
4장 2-3절에서 그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유오디아와 신디케 두 분에게 나는 간청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한 마음이 되십시오.
나와 한 멍에를 맨 내 진실한 협력자에게 부탁합니다.
이 여자들을 도와주십시오.
이 여자들은 클레멘스를 비롯하여 다른 협력자들과
더불어 복음을 전하느라고 나와 함께 애쓴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생명의 책에 올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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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누스 판지(Augustinus Fangi)

축일 7월 22일 

아우구스티누스 판지(Augustinus Fangi,
또는 아우구스티노)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의
비엘라(Biella) 태생으로 고향에 있던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오랜 동안 앓았던 병으로 얻은 그의 놀라운 인내심은
동료 형제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후일 그가 건강을 회복했을 때에는 원장으로
피선되었고, 다소 이완된 규칙을 더욱 엄격히
세우는 등 성공적으로 동료 수도자들을 성덕으로
인도하였다.
또한 그의 설교 역시 뛰어나 시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지만, 그 자신은 지극히 겸손하게 처신하였다.
그는 베네치아(Venezia) 수도원으로 은퇴하여
10여 년을 지내다가, “하느님을 찬미할지어다!”
하는 소리를 되뇌면서 운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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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셉 코메스(Josephus Comes)

축일 7월 22일 

유명한 유대교 랍비인 힐렐(Hillel)의 보조자들
중의 한 명이며 티베리아(Tiberias) 성서 학교의
원장이던 성 요셉 코메스(Josephus Comes)는 랍비
힐렐이 남긴 책들 중에서 몇 권의 그리스도교 서적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에 그는 꿈속에서 예수님을
뵈옵고 "나는 너희 조상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이다. 나를 믿어라"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래도 그는 용기가 없었는데 주 예수의 이름으로
악령을 쫓아내는 힘이 자신에게 생기고 나서부터
차츰차츰 개종할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의 지위가 달소 회당의 율법학자였기
때문에 미처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복음서를 자주 읽는 그를 의심하던
유대인들이 그를 시드누스 강으로 집어던지는 일이
생겼는데, 이 박해로 인하여 그는 마음이 열려
세례를 받았다.
그 후 그는 스키토폴리스(Scytopolis)로 가서
활동하다가 70세의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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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로이드(John Lloyd)

축일 7월 22일 

성 요한 로이드(Joannes Lloyd)는 브리콘셔 출신으로
교구사제이다.
그는 펠린에서 체포되어 웨일스(Wales)의
카디프(Cardiff) 성에 투옥되었다가 순교하였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잉글랜드(England)와
웨일스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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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치릴로(Cyril)

축일 7월 22일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는
티메우스(Timaeus)를 계승하여 280년에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비록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지만 평화로이 선종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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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테오필로(Theophilus)

축일 7월 22일 

성 테오필루스(또는 테오필로)는 황제군의 장교로
키프로스에 주둔하고 있다가 사라센의 침략으로 인해
체포되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함대의 총사령관으로서
끝까지 도망가지 않고 저항하였다.
결국 체포되어 1년여의 감옥생활 끝에 그는 신앙을
부정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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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플라토(Plato)

축일 7월 22일 

성 안티오쿠스(Antiochus, 7월 15일)의 형제인
성 플라토는 부유한 젊은이였다.
그는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Ancyra,
오늘날 터키의 앙카라)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동방교회에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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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필립보 에반스(Philip Evans)

축일 7월 22일 

영국 웨일스(Wales) 남동부 지방의
만머스셔(Monmouthshire) 출신인 성 필리푸스 에반스
(Philippus Evans, 또는 필립보)는 세인트오메르
(Saint Omer)에서 교육을 받다가 20세 때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1675년에 벨기에 남동부 리에주(Liege)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남부 웨일스 지방의 신자들을 사목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다가 글래모건(Glamorgan)의
스켈(Sker)에서 1678년 12월에 체포되었다.

그는 영국 왕을 국교의 최고 수장으로 모시고 교황권을
배격한다는 선서를 거부하여 카디프(Cardiff) 성에
투옥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성 요한 로이드(John Lloyd)를 만났다.
이 두 사람은 티투스 오아테스(Titus Oates) 계획의
일환으로 체포되었으나, 그들의 공범 여부에 대한
증거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기소되어
잉글랜드(England)에서 불법적으로 사제직을 수행한
죄로 카디프에서 처형되었다.
그는 1970년 10월 25일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명의
순교자 중 한 명으로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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