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3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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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시포(Rasyphus)
축일 7월 23일
성 라시푸스(또는 라시포)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초기 순교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판테온(Pantheon)에 유해가 모셔진
성 라시우스(Rasius)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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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로물라(Romula)
성녀 레뎀타(Redempta)
성녀 헤룬도(Herundo)
축일 7월 23일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기록에 의하면
로물라(Romula)와 레뎀타 그리고 헤룬도(Herundo)는
성인으로서 공경을 받았다.
성녀 레뎀타는 성녀 헤룬도의 지도를 받고
수덕생활을 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고, 나이가 많아지자
성녀 로물라를 비롯한 다른 동정녀들과 함께 살기
위하여 팔레스티나(Palestina) 언덕에서 성모 마리아
마요르 성당의 작은 집으로 이주하였다.
이들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던 성 그레고리우스는
그들이 완전한 겸손과 순종을 보였고,
기도 외에는 입을 여는 일이 거의 없었다고 증언하였다.
만년에 로물라는 심한 중병에 걸려 움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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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리보리오(Liborius)
축일 7월 23일
성 리보리우스(또는 리보리오)가
르망의 주교였다는 사실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Martinus)가
그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836년에 그의 유해가
독일 북서부 파더보른(Paderborn)으로 이장되었다.
그에 대한 공경은 교황 클레멘스 11세(Clemens XI)의
명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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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비르지타(Birgitta)
축일 7월 23일
1303년 스웨덴 우플란드(Upland)의 총독이며
부유한 지주인 비르거(Birger)와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인게보르크(Ingeborg) 사이에서
태어난 성녀 비르지타는 12살 되던 해 어머니가
사망하였는데, 그때부터 계시를 체험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불과 14살의 어린 나이로 훗날 네레시아
지방의 총독이 된 18세의 귀족
울프 구드마르손(Ulf Gudmarsson)과 결혼하여
8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들 중의 하나가
스웨덴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이다.
1335년 그녀는 스웨덴의 왕 마뉴스 2세와
막 결혼한 왕비 나무르의 불랑쉬(Blanche)의
시녀가 되었다. 비르지타의 큰딸이 결혼에
실패하고 또 그녀의 막내아들 구드마르(Gudmar)가
1340년에 죽게 되자, 그녀는 노르웨이 트론디엠의
성 올리프 경당으로 순례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궁중을 떠나기로 결심한 그녀는
남편과 함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로 재차 순례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아라스에서 병을 얻었고,
이때 그녀는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의
환시를 보았다.
1344년에 남편이 사망하자 그녀는 알바스트라의
시토회 수도원에서 극도로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4년을 지냈다. 이때에도 그녀는 수많은 환시와
계시를 받았고, 고해신부는 그녀의 모든 환시가
올바르다고 보증해 주었다. 이러한 계시에 따라
그녀는 1346년에 바드스테나(Vadstena)에
'지극히 거룩한 구세주 수도회‘를 세웠고,
마뉴스 왕도 여기에 거처하였다. 이것이
‘삼위일체회’(비르지타회)의 시작이다.
바드스테나는 15세기 스웨덴의 지적인
중심지가 되었다.
그녀는 라트비아(Latvia)와 에스토니아(Estonia)의
이교도들에 대항하기 위해 십자군을 결성하려는
국왕 마뉴스의 지원을 거부하였다. 그녀는 당시
아비뇽(Avignon)에 유배 중이던
교황 클레멘스 6세(Clemens VI)에게 글을 보내어
자신의 환시 내용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교황은 안전하게 로마(Rome)로
돌아올 것이며, 영국과 프랑스의 평화에 교황이
중재자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많은 시간을 로마에서 지내면서 매우
엄격한 생활과 빈민구제에 온 정열을 쏟았으며,
당시의 심각한 교회와 정치사이의 제 문제에 대하여
기탄없는 충고를 하였다. 그리하여 그녀 자신의
엄격한 생활과 성덕, 가난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에
대한 관심 및 교황의 로마 귀환에 대한 노력 등이
로마 전체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녀는 로마 주변의
수도원을 개혁하였고, 그녀의 예언과 고위직책에
대한 탄핵은 유명하였다. 그녀는 교황이 로마로
돌아오는 문제를 위하여 계속 노력하였으나,
우르바누스(Urbanus) 교황만이 잠시 귀향하였고
그의 후임자인 그레고리우스 11세(Gregorius XI)는
여전히 아비뇽에 있었다.
그녀의 구술로 적은 “계시”라는 책에는
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미래의 사건들에 대한
내용으로 당대에 강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그녀의 시성과 콘스탄츠 공의회
(Council of Konstanz)에서 그러하였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녀가 정통 교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역설한 반면, 또 다른 학자들은
그의 체험들은 모두가 진실하며 교리와도
부합된다고 갑론을박하였다. 그녀의 사후
트렌토 공의회(Council of Trento)는 그녀의
“계시”를 세심히 검토하도록 하였는데, 결국
신자들이 읽어도 좋다는 판정을 내렸다.
그녀는 스웨덴의 수호성녀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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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폴로니오(Apollonius) 와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
축일 7월 23일
로마의 순교자인 성 아폴로니우스(또는 아폴로니오)는
화형대에서 화살에 맞아 순교하였고,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는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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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축일 7월 23일
성 아폴리나리스의 이름은 라벤나 도시 근교에 있는
산 아폴리나리스 인 클라세(San Apollinaris in Classe)
대성당 때문에 잘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태어난 사도 베드로(Petrus)의 제자로서 이탈리아
라벤나의 초대주교였고, 또 이 지방의 첫 번째 순교자로
높은 공경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에 대한 자료들이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는 순교 사실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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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안나 혹은 수산나(anne or susanna)
축일 7월 23일
안나(Anna)라고도 하고 수산나(Susanna)라고도
불리는 성녀 안나는 콘스탄티노플 태생으로
일찍이 부친을 여의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딸을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안나는 뛰어난 미모를 갖추었으므로 재산과 지위를
이용하여 결혼하려는 온갖 청혼을 뿌리쳤다.
그러나 황제 집안인 아가레누스(Agarenus)라는
청혼자는 끊임없이 그녀를 들볶고 행패까지
부렸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도망갈 결심을 하였다.
이것이 그녀가 은수자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안나는 우선 레우카디아(Leucadia)로 도망가서,
그곳의 한적한 곳에서 완전한 고독 속에서
하느님만 섬기며 생활하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25세였고 50년 동안 은수자 생활을 하였다.
그녀의 무덤에서 기도하면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즉시 치유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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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요안나(Joan)
축일 : 7월 23일
그녀는 카르나이올라의 시골소녀인데
반나라고 불리웠다. 그녀는 5세 때에 고아가 되어,
오르비에또의 어느 가정에 입양되어 자랐다.
그녀는 양부모가 결혼하라는 제의를 뿌리치고,
성 도미니꼬의 3회에 입회하면서부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고, 가난한 이를 위한 생활에
헌신코자 하였다. 이 때부터 그녀는 수 없이
탈혼을 경험하고, 또 초자연적인 일이 많이 일어났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사후에 일어날 기적을 예언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의 완전한
이탈을 하였고, 지극히 겸손하였으며,
천사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지녔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754년에 승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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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까시아노(John Cassian)
축일 : 7월 23일
그는 쉬시아의 어느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380년경에 친구인 제르마노와 함께 팔레스티나로 갔다.
그들은 베들레헴에서 은수자가 되었다가,
에집트로 가서 아르체비오의 지도를 받으며
은수생활을 한동안 하였다. 400년경, 그는
콘스탄티노블에서 성 요한 그리소스똠의 제자가 되어,
그로부터 부제로 서품받았다. 그후 그는
마르세이유로 가서 일생을 지냈다. 그는
두 수도원을 세웠는데, 이 수도원은 골 지방에
에집트 수덕생활의 정신과 영성을 전달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자기 수도자를 교육시길
목적으로 "수도생활 강의"와 "에집트 수도자에
관한 강의"라는 두 권의 책을 남겼는데,
이 책들이 성 베네딕또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를 통하여 서방 교회에서 수도생활이 활발해지게
되었다.
또한 그는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반대하는
"주님의 강생"에 대한 글을 썼는데, 이것은 후일에
교황 레오(대)가 되신 분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그는 마르세이유에서 서거하였지만, 어떤 분들은
그를 동방 교회의 성인으로 간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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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트로피무스(Trophimus)
성 테오필로(Theophilus)
축일 7월 23일
성 트로피무스(Trophimus)와
성 테오필루스(또는 테오필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로마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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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프리미시바(Primitiva)
축일 7월 23일
성녀 프리미티바(또는 프리미시바)는
초기 순교자로 로마에서 순교한 듯하다.
그녀는 아마도 2월 24일에 기념하는
성녀 프리미티바와 같은 인물로 여겨진다.
오늘의 성인(7월23일)
2014. 7. 22. 오후 4: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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