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7월21일)

2014. 7. 19. 오전 10:10:46

글자

♡7월 21일 오늘의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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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다니엘(Daniel)

축일 7월 21일 
다니엘은 '감사'를 나타내는 뜻

다니엘서는 구약성서에 속한 예언서이다.
히브리어 경전은 다니엘서를 성문서(聖文書)에
포함시켜 에스델서와 에즈라서 사이에
배치시키고 있으나, 70인역(Septuaginta)이나
그 밖의 그리스어 번역본들은 이를 예언서로
취급하여 에제키엘서 다음에 배열하고 있다.

다니엘은 '감사'를 나타내는 뜻으로
아이들이 출생할 때 많이 붙여진 이름이다.
다니엘서의 기록에 의하면, 다니엘은 유대 왕
여호야킴이 바빌론으로 끌려갈 때 함께 갔다.
그는 느부갓네살 왕, 벨사살 왕, 다리우스 왕과
고레스 왕의 치하에서 궁중의 조언자로,
포로로 끌려 온 자기 민족을 위한 예언자로
활동하였다. 다니엘서를 포함하여 구약성서에
담고 있는 다니엘에 관한 보도들은 일관되지
못하며, 역사성도 결여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다니엘은 결코 포로 시대의
역사적 인물로 볼 수 없다.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에서 비로소 형성된 상징적
인물이다. 이 상징적 인물의 기원은 분명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이렇듯 다니엘서의 저자가 정확하게 누구인지는
모르나, 하시딤(Hasidim, '경건한 자들'이란 뜻)
사람들 중 한 사람으로 본다.
하시딤 사람들로 구성된 유태교 일파가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대략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
이전이다. 이들은 율법에 충실했으며,
이방민족들의 영향력을 적극 반대했던 사람들이다.
당초 마카베오 형제들의 반란을 지지했던 것은
사실이나(1마카 2,42; 2마카 14,6), 이 반란이
종교성을 상실한 순수 정치적 실력행사로
판단되는 순간 이들은 거기에서 이탈하여
그들 고유의 행동노선을 밟아 간다.
이들의 직접적인 후예들이 바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다.

다니엘서 저자는 그리스화 움직임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유태인들로
하여금 율법에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자들을
증오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 셀류쿠스 왕들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한 동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며,
박해에 직면해서도 굽힐 줄 모르는 신앙을
고취시키고 있다.
다니엘서 9,4-19절과 3,26-45절이 하시딤 사람들의
정신을 잘 반영해 주는 기도문들이며,
본 기도문들에서 저자는 이스라엘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선성만을 호소하고 있다.
사후(死後)의 상선벌악과 육신의 부활에 대한
교의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표명해 내고 있는 것
역시 저자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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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라우렌시오(Laurence)

축일 7월 21일 

체사레 데 로시는 나폴리(Napoli) 왕국의
브린디시 태생으로 그곳의 콘벨투알 회원으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16세 때에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라우렌티우스(Laurentius, 또는 라우렌시오)란
수도명을 받았다. 그는 신학, 철학, 성서,
그리스어, 히브리어 등 수 개 국어를 파도바(Padova)
대학에서 연구한 뒤에 사제로 서품되었고,
북 이탈리아를 순회하면서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수도회의 여러 고위직을 맡았으나 유대인
개종을 위하여 주로 활동하였다.
또한 그는 독일로 파견된 적도 있으며,
프라하(Praha)와 빈(Wien) 그리고 고리지아에
수도원을 세우기도 하여 이 수도원이 후일에는
보헤미아(Bohemia),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티리아
관구로 발전케 하였다.
그는 루돌프 2세의 요청을 받고 독일 군사지도자들을
격려하여 터키인들과 싸우게 하는 한편,
자신도 종군신부가 되어 전투에 참가하였다.
1602년 그는 카푸친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고,
또 필립 3세를 설득하여 가톨릭 연맹을 만들려는
황제의 의향에 따라 에스파냐로 파견되었을 때
마드리드에도 수도원을 세웠다.

그는 총명함과 인간애와 의무 수행에 필요한
행정적 기술 등을 두루 갖춘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는 동료 카푸친 수사들로부터 1602년에
전수도원의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이 총장직에
있으면서 그는 수도원의 지역적 확장과 성장에
큰 공적을 남겼다. 라우렌시오는 교황 대사 및
평화 중재자로 임명되어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일을 하였고, 그의 조국 나폴리 왕국의 평화를 위해
스페인 왕을 방문하려고 리스본으로 여행을 했다.
그는 리스본에서 1619년 중병으로 일생을 마쳤다.

그는 외교적, 정치적 문제가 있을 때마다 황제 혹은
교황의 특사로서 활약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러는 중에도 그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특히 유명한 것은 창세기와 에제키엘서의 주석서이다.
그는 1881년에 시성되었고, 1959년에 요한 23세
(Joannes XXIII)에 의하여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설명 ; 인간 욕구에 대한 민감한과 성서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그는 20세기 그리스도교인에게
설득력 있는 하나의 생활 양식을 제시해 준다.
라우렌시오는 봉사해 주기를 요구하는 이들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졌고 또한 자기 훈련을 통해서 생활의
균형을 이룰 수 있었다.

인용 ;
그리스도의 지상권에 대한 스코더스파 학자의 가르침.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그분의 모든 행위는
사랑에서 출발한다. 그분은 사랑을 공유함으로써
선을 증명하기를 원하고 계시며, 강생은 바로 그분의
선과 사랑과 영광을 증명해 주는 최고의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창조물 앞에 그리고
그분 자신을 위하여 나타나신 것이다. 모든 것은
그분을 위하여 창조 되었으며, 모든 것은
그분에게 속한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다.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 중에 최초로 태어나신
분 이시며, 온 인류는 창조된 세상과 마찬가지로
그분 안에서 그 근거와 의미를 찾게 된다.
더구나 이것은 아담이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교회 박사인 라우렌시오의 카푸친 교육에 관한
강연회에서' 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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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빅토르(Victor)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성 론지노(Longinus)

축일 7월 21일 

성 빅토르(Victor)는 마르세유에 주둔하던 로마
군인이었다. 열렬한 그리스도인이던 그는 집정관
아스테리우스와 에우티키우스 앞에서도 당당하게
처신함으로써 투옥되었는데, 옥중에서도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론지누스(또는 론지노) 등 3명의 간수들을 개종시켰다.
이들 세 사람의 간수들은 주피터 신상 앞에
봉헌하라는 명을 뿌리치고 순교하였고,
성 빅토르는 참수치명 하였다.
그의 무덤은 프랑스 지방에서도 가장 붐비는
순례의 중심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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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르보가스토(Arbogast)

축일 7월 21일 

프랑크계의 주교인 성 아르보가스투스
(Arbogastus, 또는 아르보가스토)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프랑스의 아키텐(Aquitaine)
지방에서 활동했고, 알자스(Alsace)에서는
나무속에서 은둔생활을 하였다.
어느 날 국왕 다고베르트(Dagobert)가 사냥하던 중,
아들이 멧돼지에게 물려가 찾을 길이 없었을 때
이 거룩한 은수자가 기도하여 그를 되찾음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왕은 그의 성덕을 높이 평가하여 스트라스부르
주교로 임명하였는데, 그는 겸손과 온유로써
교구민들을 지혜롭게 다스렸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뒤에 유해를 자신의 움막에
묻어달라는 유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으며,
그 위에 기념 성당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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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안젤리나(ANGELINA)
 
축일 7월 21일 
 
이탈리아 오르비에또의 몬떼지오베에서
태어난 그녀는 마르쉬아노의 영주
안지오발리와 꼬르바라 백작 가문인
안나의 딸이다. 그녀는 15세 때에
치비뗄라의 백작인 요한 떼르니와 결혼하였으나,
2년도 살지 못하고 과부가 되었다.
이때부터 안젤리나는 재속 프란치스칸이 되어
자기 집을 삼회원의 공동체로 만들어
엄격한 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신적, 물직적 도움을 베풀기 시작하였다.
안젤리나와 동료 3회원들은 보속하는 행렬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행을 행하였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동정을 지키는 성소를
소녀들에게 일깨우는 운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위들은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는데,
나폴리의 왕 라디슬라오는 그녀를 조사하여
유죄로 판명되면 화형을 시킬 작정까지
하였던 것이다. 불과 18세의 과부이던 그녀는
주님의 인도로 아씨시로 가서 그때까지
폐쇄되었던 성 프란치스꼬 율수 3회 수도원을
재건하여 성녀 안나에게 봉헌하고,
안젤리나는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이것이 최초의
율수 3회 수도원이 되었다. 성녀 안젤리나는
폴리뇨 외에도 스뽈레또, 아씨시, 비떼르보 등
11곳에 율수 3회 수도원을 세우고, 비록 작은
공동체이지만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다가,
58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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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오디노(Oddino)

축일 7월 21일 

오디노 바로티(Oddino Barrotti)는 평범한
시골 본당 사제였다.
1360년 그는 이탈리아 피에몬테(Piemonte) 지방
포사노의 고향 마을 본당인 세례자 요한
(Joannes Baptistae) 본당의 신부로 부임하였다.
토리노(Torino)의 주교가 그의 식탁에 고기를
올려놓아야 한다고 명을 내릴 정도로 가난하게 살면서
오로지 양떼를 돌보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꼭 필요한 음식들도 손수 조달하고, 남는 것은
모조리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거나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제공했다.

그 후 그는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면서부터
사제관을 빈곤한 사람들의 휴식처로 제공하였다.
1381년에는 성지 순례를 하였으며,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하여 무료 병원이 건립되었다.
그에게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또 포사노 지방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오디노 신부는
밤낮으로 병자들과 죽어가는 사람들의 침상을
떠나지 않고 돌보던 중 자신도 병에 걸려 운명하였다.
그는 진정한 본당신부상을 보여준 보기 드문
사제로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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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John)

축일 7월 21일 

성 요한(Joannes)은 서남 아시아 메소포타미아의
고대도시인 에데사의 수도승이었다.
그는 성 시메온 살루스(Simeon Salus, 7월 1일)의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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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율리아(Julia)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성 유스토(Justus)

성 유쿤디누스(Jucundinus)

무명의 순교자 4명

축일 7월 21일 

성녀 율리아(Julia)는 프랑스의 트루아에서 태어났다.
처녀였던 그녀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군인들이
테트리쿠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체포되어
전쟁의 전리품으로서 황제군의 장교였던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소유의 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개종시켰고 함께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이때 트루아에서 그들과 함께 참수되어
순교한 이로는 성 유스투스(또는 유스토)와
성 유쿤디누스(Jucundinus)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네 명의 순교자 있었다.
그들의 유해는 모(Meaux) 지방 근처 주아르(Jouarre)의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 모셔져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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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조티코(Zoticus)

축일 7월 21일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는 카파도키아 지방
코마나(Comana)의 주교인 성 조티쿠스(또는 조티코)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몬타누스파(Montanism) 이단에 열성적으로
반대한 유명한 주교로 그들의 오류와 거짓 예언을
단죄하였다. 그는 신앙 때문에 세베루스 황제 때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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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프락세데스(Praxedes)

축일 7월 21일 

성녀 프락세데스는 로마 사람으로 로마 원로원
의원인 성 푸덴스(Pudens, 5월 19일)의 딸이며
성녀 푸덴티아나(Pudentiana, 5월 19일)와는
자매간이다.
그들은 모두 성 베드로(Petrus)에 의해
개종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 푸덴스는 디모테오 2서 4장 21절에 언급된
푸덴스와 같은 인물로 믿어지며,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의 성사록에 그의
축일이 언급되어 있다.

황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그리스도인들을
사냥할 때 성녀 푸덴티아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돈이나 기타 방법으로 매수하여 구출했는데,
마침 성녀 프락세데스도 그녀의 집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성녀 푸덴티아나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용감하게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하도록
권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성녀 프락세데스와
그녀의 아버지 성 푸덴스(Pudens) 그리고
성녀 푸덴티아나는 순교하여 살라리아 가도
(Via Salaria)의 프리스킬라(Priscilla)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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